라라랜드 유감

잡담 2016. 12. 19. 17:54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왔다. 영화 리뷰는 안 써왔지만 음악 영화이다 보니 짧게나마 써보고 싶은 말이 있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 생각나는 대로 갈긴 글이라는 걸 감안해주시길.


이동진 평론가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의 높은 평가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못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특별히 잘 만들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눈에 띄는?


음악 영화를 음악 극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평가기준은 음악이 극의 진행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나이다. 마치 오페라의 역사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다툼이었 듯이, 음악 영화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상업 영화 중에 가장 훌륭한 음악 영화로는 비긴 어게인을 꼽고 싶다. 비긴 어게인은 음악을 노래하는 모든 장면이 극의 진행의 일부가 되었다. 노래는 인물이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 표현해주는 수단이었고, 반대로 이야기 안에서 노래는 더욱 빛나기도 했다. 그렇기에 비긴 어게인이 그렇게 많은 음악 장면을 포함하고도 상당히 알찬 플롯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감독의 전작 원스가 비교적 단순한 플롯에 음악적 장면을 위주로 흘러가는 바로크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면 비긴 어게인은 푸치니나 슈트라우스의 작품에 비할만 하다.


위플래시 역시 좋은 예시다. 두 미치광이가 음악을 만들어가는 살벌한 과정, 그리고 그 맥락의 끝에서 폭발하는 마지막 시퀀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극의 현실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뮤지컬 영화다. 때문에 음악이 나오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극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음악 영화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긴 하다.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즉 뮤지컬 영화의 관점에서 보나 음악 영화의 관점에서 보나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라라랜드에서 아쉬운 것은 이 뮤지컬 시퀀스가 플롯의 진행과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핵심 플롯인 '꿈을 쫓는 두 예술가'라는 컨셉 안에서 뮤지컬 시퀀스는 오히려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뮤지컬 시퀀스가 등장하는 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만이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 어느 순간도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되지 않는다. 감독은 이 두 연인의 낭만적인 순간에만 뮤지컬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이 꿈을 좇는 예술가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의 마법처럼 달콤한 순간에만 뮤지컬이 등장하는 건 감독의 의도가 분명하다. LALALAnd, 노래하는 세상은 아름답고 몽환적이다. 노래는 낭만적인 것이며, 반대로 낭만적이지 않을 때 노래할 순 없다.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처럼 청구서를 받는 건 별로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의 슬픈 순간을 함께할 수 없다면 도대체 음악극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화는 낭만적인 일을 낭만스럽게 표현할 뿐이다. 오히려 차가 꽉 막힌 고속도로를 신나게 뒤집어 놓는 오프닝 시퀀스가 가장 낭만적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곧 여주인공이 특별한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감독은 재즈 덕후다. 남주는 온갖 캐릭터성을 부여받는다. 전통 재즈를 미친 듯 사랑하고,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만나볼 가치도 없고, 자신은 예술가이기에 남들의 명령을 받지 않으며, 재즈 클럽을 삼바와 타파스 파는 집으로 바꾼 것에 분노하며,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열 꿈을 가지고 있다. 반면 여주는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고 있는 배우 지망생이며, 그걸로 끝이다. 어렸을 때부터 대본을 썻고, 배우인 이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외의 다른 특성들이 없다. 남자 주인공이 재즈를 왜 좋아하며 어떤 재즈를 싫어하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되는데 비해 여주는 그런거 없다. 

여주에게 재즈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남주의 모습이 전형적인 맨스플레인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여주는 남주에게 조언언할 게 없지만 남주는 여주에게 직접 대본을 써보라는 조언을 한다는 것과 같은 건 차라리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뒤로 갈 수록 심각해진다. 여주가 무슨 내용으로 1인극을 했는지 감독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여주가 극을 준비하는 과정도 짧게 요약되며, 마찬가지로 이 장면에서 음악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며 설레는 모습이나, 실패해서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 음악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여주는 음악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이 불쌍한 여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줘보라고 하는 마지막 오디션에서마저 자기 이야기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고작 꺼내는 이야기가 자기 이모의 이야기다. 이 때 처음으로 여주의 꿈과 음악이 결합하지만, 울림을 줄 수 있을리가 없다. 극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가장 아쉬운 장면이 바로 여기다. 극이 뒷받침 되지 않는 음악은 호소할 수 없다. 내내 연애질하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자기 인생을 바꿀 오디션에서 꿈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응원한다? 


이 영화는 음악극의 전통에 입각해 플롯의 신선함은 철저하게 개나 줘버린 작품이다. 그 점에 대해선 차라리 별 불만이 없다.  클리셰와 우연으로 점철된 진행에서 보여주는 대책없는 뻔뻔함은 귀엽게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버리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일관되게 터무니 없는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도 아니고 기쁠 때만 음악을 가져다 쓰더니, 음악이 빛날 맥락마저 삭제해버리다니. 뮤지컬 영화라고 하기엔 음악이 소외되고, 음악 영화라고 하기엔 플롯이 일차원 적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자신이 예찬하는 '꿈을 좇는 젊은 예술가'의 이야기를 너무나 간편하게 소비해버리는 방식에 기분이 나빴다. 



전체적으로 공감이 많이 되는 허지웅의 씨네21 평론 중 일부다. 

사실 나는 마지막 시퀀스를 보기 전까지는 거의 이 영화를 싫어할 뻔했다. 물론 <라라랜드>는 즐겁기 짝이 없고 따라 부르고 싶은 음악이 함께하며 같이 추고 싶은 춤으로 가득했다. 뮤지컬영화에서 완전무결한 내러티브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게 고전 뮤지컬영화의 재현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라라랜드>의 갈등 구조는 지나치게 쉽고 편하다. 그 ‘지나치게 쉽고 편한’ 내러티브가 안일한 연출이나 각본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 감독이 철저하게 의도한 그림이라는 게 시종일관 너무 빤하게 드러나서 영화를 보는 동안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오로지 마지막 엔딩 시퀀스에서만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서 빛을 발한다. 뮤지컬 무대에서도 실현이 불가능한, 일반 영화에서도 다 담아내지 못할 그 환상성을 완벽하게 뿜어낸다. 그 마지막 장면 하나 만으로 이 영화를 칭찬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이 앞의 장면들이 너무 아쉬운 것이다. 최고의 걸작이 될 뻔 했는데 자빠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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