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독일 학회 및 휴가 계획을 짰다.


학회 전에는 라이프치히, 함부르크, 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 드레스덴 정도를 돌고 학회가 끝나면 슈투트가르트 쪽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 바젤 -> 칼스루에 -> 프랑크푸르트 라는 (나름) 정상적인 동선, 차이콥 - 헨델 - 바그너라는 아름다운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런.데.


오페라베이스 이놈들이 칼스루에 공연 날짜를 잘못 표기해놨다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무슨 지크프리트를 월요일에 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공연 거의 없는 월요일에 지크프리트가 떡하니 있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어야 하는데, 하늘이 날 돕는구나 하면서 완벽한 일정이라고 하악댔는데....


그래서

고민 정리겸 적어보는데 혹시나 지나가면서 오지랖 한번씩 부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 어차피 제가 제일 보고 싶은 공연 보겠지만, 혹시 또 아나요. 엄청 합리적인 뽐뿌질이 들어오면 제 마음이 바뀔 지도요.

제 고민을 도와주신다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대신 제가 뽐뿌 받아 그 공연을 보게되면 열심히 후기를 쓰고 있을 거라는 건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24일 토요일

뉘른베르크 아틸라
+ 학회가 에를랑엔이라 엄청 가까움
+ 콘비츠니의 테아터 안 데어 빈 프로덕션
+ 이 날은 정확히 Johannistag, 그리고 여긴 뉘른베르크
- (당연한 거지만) 캐스팅 중에 아는 사람 한명도 없음. 양준모 씨도 안나옴ㅜㅜ


슈투트가르트 스페이드의 여왕: 24일 토요일
+ GMD인 실뱅 캄브를랭, 슈투트가르트 감독 빌러 & 모라비토 콤비
+ 아주 좋아하는 작품 
+ 깨알같이 영상물로 본 몇명 가수도 나옴.
+ 이걸 안 보면 슈투트가르트 오퍼에서는 월요일에 벨리니 청교도를 봐야함
+ 이것 까지 보면 여행 중에 독 이 프 영 러 오페라를 보게 되서 쓸데 없이 뿌듯함
- 학회 일정 다 끝나고 슈투트가르트 가면 공연 1시간 전에 도착이라 아벤트카세로 좋은 자리 구하기 조금 힘들지도


이 날은 학회가 점심 먹고 끝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얼마 없습니다.

드레스덴에서 바인베르크 승객을 공연하는데ㅠㅠㅠㅠ



25일 일요일


칼스루에 지크프리트
+ GMD 저스틴 브라운 지휘
+ 이 사람 지휘가 상당히 재밌다.
+ 평도 좋더라
+ 바그너 바그너 바그너
+ 반지인데도 어차피 작품마다 연출이 달라 한 작품만 따로 떼어봐도 아무 상관 없을 듯
+ 나의 로망 독일 지방 극장에서 바그너 큰 작품 보기
- 그래도 바그너를 하노버에서 하나 보긴 할 예정
- 오케와 가수의 한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바젤 알치나
+ 마르콘과 그의 오케스트라
+ 여행 레퍼토리가 후기 낭만으로 치우쳐있는데 바로크로 균형
+ 이 정도 퀄의 바로크 오페라를 언제들을 수 있을까
+ 케이트 로열, 사바두스, 브란디치 등 상당히 괜찮은 캐스팅 
+ 오펀벨트에서 올해의 오페라 극장 상도 자주 받은 테아터 바젤을 방문할 기회


코부르크 파르지팔
+ GMD 롤란드 클루티히 지휘
+ 독일에서 평범한 극장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음
+ 작은 시골에서 힘겹게 파르지팔을 올리는 감동? 
+ 700석 정도의 작은 극장이라 특별한 경험일 듯
- 700석 정도의 작은 극장이라 오케가 꽤나  구림
- 클루티히가 하필 차그로세크 제자라 2013년 파르지팔 붕어빵 느낌이 날지도


뮌헨 루살카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인데 설명이 더 필요한지?
+ 넬손스 오폴라이스 콤비
+ 아침에 뮌헨 필 우르반스키, 야데레프스키 공연을 볼 수 있음
- 어차피 영상으로 본 연출
- 넬손스는 이미 오페라도 보고 합창석에서도 봄
- 어차피 뮌헨은 12월에 다시 갈 수 있음
- 페스티벌 기간이라 할인도 없고 표값이 좀 비쌈



26일 월요일

이날이 제일 망함ㅜㅜ

슈투트가르트 청교도
+ 어쩌면 내가 벨리니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
+ 역시나 빌러 & 모라비토 콤비의 프로덕션으로 평이 좋음
+ 테너가 나름 잘나가는 편
- 벨리니 벨리니 벨리니
- 슈투트가르트에서 공연을 두번 봐야하나?
- 그게 아니면 차이콥을 포기하고 벨리니를 봐야하나?


프랑크푸르트 바이글레 지휘 (알테 오퍼. 프로그램: 거슈윈 쿠바 서곡, 히나스테라 하프 협주곡, 알슈 이탈리아로부터)
+ GMD 바이글레 지휘를 볼 수 있음
+ 첫날 프랑크푸르트 공연을 보긴 하겠지만 이 오케 오펀벨트에서 올해의 오케스트라 상도 받음
+ 나름 유명한 알테 오퍼에서 공연 보기
- 알테 오퍼 음향은 사진만 봐도 구릴 것 같음
- 실제로 구리다고 함


프랑크푸르트 베툴리아 리베라타 (모차르트 오라토리오를 무대 연출로 공연)
- 음악을 들어봐도 아직은 별로 안 끌림.
- 여행 막공으로 보기에 좀 짧아서 아쉬움 


뮌헨 슈타츠테아터 돈조반니 (게르트너플라츠테아터. 바예리셰 슈타츠오퍼 아닙니다)
+ 모페라 하나 보고 갑시다
+ 여기도 나름 A2급 오케스트라
+ 유서깊은 퀴빌리에 극장에서의 공연 
- 마 돈조 마이 봤다 아이가

아니면 이렇게 된 이상 프랑스나 스위스로 간다!

리옹 도니체티 Viva la mamma (le convenienze ed inconvenienze teatrali)
+ 로랑 펠리의 도니체티 희극!
+ 파트리샤 치오피
+ 로랑 나우리
- 기차표 가격이???
- 다음날 프랑크푸르트 비행기 타러 테제베 타고 돌아가야함 
- 이 경우 일요일은 무조건 바젤

제네바 노르마
+ 빌러 & 모라비토 프로덕션
+ 그래도 청교도보단 노르마..?
- 벨리니 피해서 도망치는데 또 벨리니요??
- 빌러 모라비토는 본진인 슈투트가르트에서도 볼텐데..
- 일단 스위스는 비쌉니다.
- 학생할인도 25% 밖에 안 해줌...
- 프랑크푸르트 돌아가는데 6시간



어떤 계획을 짜도 내 상상 속에 있던 슈투트가르트 스페이드여왕 - 바젤 알치나 - 칼스루에 지크프리트의 완벽함을 이길 수가 없어서 슬픈 밤입니다 흑흑

결국 여행의 나름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 알치나와 지크프리트가 충돌하며 내게 멘붕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대선 후보 고르기가 이것보다 쉬울 듯.

대선 후보는 여기저기서 자료도 많이 주고 검증도 많이 해주는데 이건 나 혼자 검증해야하잖아?



웬만하면 칼스루에 버리고 바젤을 가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저스틴 브라운의 지휘가 정말 심상치 않다.



사실 지휘자의 아이디어만 좋으면 오케의 사운드가 구린 것도 크게 상관 안하고 거친 느낌 그대로 즐기는 편인데 저스틴 브라운과 칼스루에의 연주가 딱 그렇다. 연주가 뭐 막장 급인 것도 아니고 (코부르크는 좀 오케 소리가 심각하더라) 금관 파워도 좋고 현악기도 곧잘 하는 편인 것 같다. 지휘자가 칼스루에에서 오랫동안 바그너를 해와서 합도 잘 맞는 것 같고. 아티큘레이션 조절이 매우 탁월하며 짧은 발췌지만 1막 전주곡에서 저음현의 넘실거리는 다이나믹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이끌어내는 집념이 엿보인다. 애플 뮤직에 올라와있는 말러 9번도 상당히 독특하며 흥미로운 연주다.

영국 출신 어드밴티지인지 영국에서 발행하는 Opera 2016년 1월호에도 인터뷰가 꽤 길게 실렸는데, 베토벤-바그너에 대한 동경과 칼스루에의 바그너 전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칼스루에의 바그너 전통은 상당히 오래됐는데, 헤르만 레비 - 펠릭스 모틀과 같은 1세대 바그네리안부터 요제프 크립스, 요제프 카일베르트 같은 쟁쟁한 지휘자들이 이 곳의 감독을 맡았었다. 브라운이 파르지팔을 지휘했을 때 누군가 연주 시간을 재보더니 레비의 연주 시간과 가장 비슷했다고 알려줬댄다 ㄷㄷ



물론 좋은 연주를 보고 싶지만, 내 기억에 남는 특별한 공연이 되는 것과 연주자가 유명한 것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영국 여행에서 명가수도 좋았지만 술집에서의 팔스타프는 더더욱 잊을 수가 없다. 뮌헨 식당에서 본 라보엠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저 지크프리트를 보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르콘 알치나를 놓치기도 아깝다. 마르콘 알치나의 단점으로 생각할 만 한 게 별로 없다. 내가 뭐 드림팀 캐스팅만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사실 이 알치나 공연이 내가 아는 이름 제일 많이 나온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 보면, 아무리 알치나가 아름답다 하더라도 지크프리트를 다 보고 났을 때의 감격과 알치나를 보고 났을 때의 감격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지크프리트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된다.

취리히의 루이지와 뮌헨의 넬손스를 버리고 마르콘으로 마음을 굳히기 위해 열심히 자기 세뇌를 했었는데ㅋㅋㅋㅋㅋ 결국 독이 돼서 돌아왔다.

아몰랑 이게 다 오페라베이스 때문이야 망해버려라



여기까지 제 넋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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