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칼럼니스트 김인겸 씨가 네이버 블로거 BBfan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지금 이 글의 초본을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린 것이 작년 8월 31일이었다. 그리고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법적 결론이 나왔다. 사이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두 건에 대해 모두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발단이 된 것은 BBfan님이 김인겸 씨의 프로그램 노트에서 자신의 블로그 글과 매우 유사한 내용들을 발견하였고, 이에 대해 항의하는 글을 작성한 것이었다. 김인겸 씨는 이에 대해 해명 혹은 사과 없이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그리고 김인겸 씨는 기어이 BBfan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해당 블로그 글 역시 네이버에 게시중단 요청을 넣어 내려놨다. 후에 관련된 게시글들이 다시 복구되어 현재는 모두 열람 가능하다.
예전에 이 사태에 대한 내 의견을 글로 정리했었다. 한동안 비공개로 올려뒀는데 다시 공개로 바꾸었다. 표절로 의심하는 점들과 김인겸 씨가 해명해야할 것들에 대해 정리해 두었다. 두 당사자의 이름을 익명 처리할까도 고민했지만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름이 모두 나온 해당 네이버 블로그의 글을 직접 링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일단 그대로 밝혀두었다.
작년 8월에 지금 이 글을 쓰기 전 내가 지적한 사항들에 대한 답변을 김인겸 씨에게 메일로 직접 부탁하였다. 하지만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이에 대한 개인적 의견 표명은 당분간 보류합니다." 라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도 의견 표명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이 문제를 제기하는 포인트는 김인겸 씨가 자신의 글에 대한 표절 의혹에 '개인적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전의 글에 쓴 것 처럼 김인겸 씨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리사이틀 프로그램 노트에 쓴 글 중 BBfan님의 개인적인 해석이나 정보의 편집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강하게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BBfan님은 당연히 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수 있고 김인겸 씨는 자기 이름으로 나온 글에 대해 최소한의 해명이나 변호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혹시 몰라 거듭 강조하지만, 난 "김인겸 씨가 표절했다"라는 것이 기정 사실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표절했을 것이라고 볼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으니 본인이 해명해야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심지어 어떻게 어떻게 해명할 수 있는지 까지 내 글에서 직접 예시로 써놨다. 그리고 반대로 김인겸 씨의 무단 인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과연 그게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심각한가도 특별한 의견이 없다. 내가 법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애초에 BBfan님 역시 법적인 책임을 물으려고 글을 쓴 게 아니니까. "그냥 가져다 썼는데, 큰 잘못이라고 생각 안 했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테다. 아니면 법원에서 "통상적으로 프로그램 노트는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으므로 블라블라" 라고 판결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판결은 프로그램 노트의 창작성을 후려치는 것이니 문제가 된 글은 물론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그램 노트 전반에 참 비극적인 일이겠다.
이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같은 일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표절에 대한 의혹을 고소로 맞대응하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누군가 공연 프로그램 노트를 쓸 때 다른 사람의 글을 적당히 가져다 쓰는게 당연시 될테다. 피해자가 이에 대해 항의하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공개적으로 항의하면 바로 고소 때리고 덮으면 된다. 참 쉽죠? 검찰이나 법원이 무혐의 혹은 무죄 판결을 내리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고소라는 것 자체가 당사자를 매우 피곤하며 피폐하게 만드는 행위이니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자신의 글을 표절해가더라도 공개적으로 항의하기를 망설일 수 있다.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적당히 짜깁기 하는 글이 시장을 점령할 것이다.
우리나라 음악 칼럼계에서 표절 의혹은 여전히 자주 발생한다. 최근에도 모 발레단 공연 프로그램에서 표절이 있어 이슈가 됐다. 그 외에도 대전예당 웹진에서 네이버 블로그 글의 내용을 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무슨 글인지도 모른채 일단 대전예당 웹진을 읽어보았는데 표절 의혹이 있는 글이 무엇인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현실도 이런데 표절 의혹을 고소로 대응하는 일이 일반화된다면 앞으로는 비슷한 표절이 얼마나 더 많아지게 될까.
때문에 김인겸 씨가 표절의혹에 고소로 대응한 것은 표절 의혹 건과는 별개로 지탄받아야하는 행동이다. 자신이 정말 표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면 똑같이 글로 주장하면 될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건전한 음악 칼럼 생태계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한다. 글의 가치와 창의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기 글의 창의성을 주장할 때도 존중해줘야 한다. 자신에게 법적 대응을 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표절 의혹을 법적대응으로 짓밟으며 자신 스스로가 발 담고 있는 창작의 세계에 어떤 악영향을 주었는지 돌이켜봐야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사건은 우리가 좌시하지 말아야 할 문제다. 이것은 한 사람의 명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음악 칼럼의 수준에 대한 논쟁이고, 그 논쟁을 법의 이름으로 입막음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이다.
추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던 공연의 기획사인 빈체로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얽힌 공연의 기획사인 마스트미디어는 제대로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것이 표절인지, 표절이 아닌지, 표절이 맞다고 생각해 유감이라고 말했으면 앞으로 조치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야할텐데 인정하는 척 해놓고 1년이 지나도록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다. 글을 의뢰한 기획사 역시 논란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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