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바쁘다. 블로그에 글을 쓴지도 너무 오래됐다. 하지만 생각이 많을 땐 글을 써야한다.

오늘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당 모 의원과 국립오페라단, 그리고 사단법인 대한민국 오페라단 연합회(민간오페라단 연합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오페라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이라는 행사가 있어서 다녀왔다. 일정이 바빠서 그냥 가지 말까 고민을 하다가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평일 낮에 하는 이런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겠나 싶었다. 

심포지엄에 있었던 일들을 비판하고자 글을 쓴다. 발언하였던 발제자와 토론자 중 어느 한 개인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그 분들 이름이 나온 포스터 등은 따로 공유하지 않는다. 심포지엄 마지막 차례에 직접 발언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참석하신 분들이라면 내가 누구인지 알 것이니 적당히 필터링해서 쓴다. 뒤에 일정이 있어 내 발언을 끝내고 곧바로 나왔지만 거의 마무리되는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0. 국회의원도 문체부 직원도 없는 심포지엄
이 심포지엄의 목표가 무엇이었나. 이런 탁상공론을 통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정책 입안자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었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민주당의 두 의원은 축사를 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곧바로 퇴장했다. 마지막에 자유토론으로 발언하셨던 민간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 분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며, 문체부 직원 역시 중간에 퇴장했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을 주관하여 국회 의원회관에 자리를 마련하고 언론의 보도기회라도 준 것 역시 큰 역할일 수 있다. 하지만 축사 이후에 바로 퇴장은 내 상식 선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도 다 일종의 쇼일 뿐인가. 바쁜 사람이고 이것저것 일이 많겠지만, 최소한 나중에 기록이나 보좌관을 통해서 내용을 살펴보겠다라는 말이라도 해줬다면 상황이 나았을 테다. 심포지엄 후반에 발언한 토론자들은 여기에 들어줄 정부 관계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답답해했다. 

 

1. 오페라계 인사들끼리만 모여서 무슨 도움이 되나?

심포지엄을 들으며 답답했던건, 도대체 이 심포지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였다. 이 점은 토론자들 역시 언급했다. 이런 포럼 심포지엄 자주했는데 변한게 뭐냐, 이런 탁상공론으로 바뀔 수 있는게 뭐냐.

구성을 보아하니 당연히 발전에 도움이 안 되겠더라. 발제자 토론자 참석자들 거의 대부분 오페라 제작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어느 누구하나 이 사람들한테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페라계를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진단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음악기자 출신의 발제자 분이 그나마 커뮤니티 바깥의 사람이었겠지만 어차피 다들 서로서로 아는 사이 아니던가.

가장 황당했던 건 모두들 정부의 지원이 많아져야한다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 오페라 제작은 돈이 많이 들고 인건비가 많이 들고 순수 예술이니까. 국가 교육과정에도 오페라가 더 많이 들어가야하는 걸 당연하게 이야기했다. 자신들은 대한민국 오페라 부흥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왜 국가나 기업이나 도와주질 않느냐는 논지가 상당히 많았다. 창작 오페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창작 오페라가 정말 필요한지,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창작오페라 진흥을 위해 국립오페라단이 1시즌1작품 씩 의무적으로 해야한다 등등.. 오페라는 어렵지 않다, 상류층의 취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뮤지컬은 좋아하는데 오페라는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다, 교육을 통해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 등등...

이런 상황에선 생산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오페라에 대한 국가 지원을 늘려달라 라고 말했을 때, 문체부 담당자가 있으면 우리나라 예술 장르 중에서 오페라가 차지하는 지원 비중은 얼마고, 일반 국민들이 즐기는 비율은 무엇이고, 그러저러하니 오페라만 지원을 늘릴 수는 없다- 라는 이야기를 해줄 테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국악 대신 오페라를 지원해줄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이라도 반문했을 테다. 메세나 후원단체 관계자가 있으면 오페라 후원해서는 별로 효과가 없더라, 다른 장르 후원해주는게 더 이득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테고. 하물며 뮤지컬 발레 오페라 많이 보는 관객들이라도 데려와서 앉혀놨으면 왜 오페라 안 보러가는지 이유라도 들을 수 있었을 테다. 왜 지금 한국 오페라가 망해가는지 이야기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구동성으로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앓는 소리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2. 영양가 없는 해외 사례 분석

해외 오페라 극장의 예산이나 재정구조를 분석한 것은 내용이 상당히 많았고 흥미로운 통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통계 자료에서 유의미한 해석을 찾아볼 수 없어서 듣고 있자니 답답했다. 방대한 데이터들을 그저 읽기만 하고 지나가고 어떤 시사점도 주지 못했다. 

독일 극장들은 재정 자립도가 낮다. 미국 극장들은 티켓 판매와 민간 후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건 해외 오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정보이다. 그런데 이들의 구조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나? 독일 처럼 오페라 천국을 만들기 위해 공적 자금을 그만큼 투여할 명분이나 여유가 우리나라에 있는가? 민간 후원이 매우 활성화된 미국의 사례를 우리나라에 도입할 수 있는가? 둘 다 불가능하다. 

발언 내용 중엔 기본적인 논리도 갖추지 못한 분석이 있었다. "재정자립도가 높은게 좋은 게 아니다, 낮아야 정부 지원이 더 많아지는데 우리나라는 예술의전당도 그렇고 자꾸 재정자립도를 올리려고 한다." "도시 인구당 오페라 티켓밀도를 계산해보면, 독일은 3~4명에 1장이고 도쿄는 110명 중에 1장이다. 서울은 몇일 것 같나. 1000명 중에 1장일 것이다. 일종의 로또 티켓이다. 1명이 티켓을 사면 999명은 못 산다는 이야기다. 뭐 물론 그 분들이 티켓이 있다고 살지 안살지는 모르겠지만..."  "2018년 한국 오페라계 총관객수가 14만명이네요. 우리나라에서 14만명은 적어도 한번은 오페라를 봤다는 거죠"
이럴 때 쓰는 말이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라는겁니다. 

나는 당연히 극장 주도의 제작환경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쏙 빠지고 대부분이 재정 문제였다. 우리나라가 오페라에 대한 지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작은건 당연하다. 그런데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이 오페라에 돈 많이 쓰는 게 우리나라랑 무슨 상관인가? 이런 이야기를 오페라 인들끼리 모여서 공유하는게 어떤 도움이 될까? 이런 자료를 통해서 문체부 관계자나 다른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중요한 이야기는 빠졌다. 국가가 오페라에 투자해서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우리나라가 유럽 국가만큼 오페라에 투자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해외 극장들은 관객을 유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해외 극장들이 신작 오페라를 소개할 수 있는 여건은 무엇인가?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미국의 민간 후원과 유럽의 공적 후원을 부러워하기만 한다면 한국 오페라계의 발전에는 답이 없다.

 

2.1 결국 나오지 않은 한국 국립오페라단과 비정상적인 형태

국립오페라단은 예술가 상근직원이 단 한명도 없는 국내에서도 유일무이한 국립 예술단일 것이다. 오페라 팬들이야 이제 이게 익숙해졌지만,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국립오페라단에는 어떤 직원들이 있을 것 같냐고 물어봐라. 성악가 한명 반주자 한명 지휘자 한명도 없는 단체가 어떻게 국립오페라단인가. 극장도 없어, 오케스트라도 없어, 합창단도 없어, 성악가도 없어, 지휘자도 없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단체다.

100년 뒤의 미래를 생각한다고 했을 때 지금의 국립오페라단 구조는 답이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지 않나? 매 공연제작 경험이 과연 충실하게 쌓여가고 있는지,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형태인지, 다음 공연이 저번 공연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퀄리티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보장이 없는데 무슨 발전이 있나. 

하지만 아무도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예술의전당과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오페라단은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나보다. 워낙 어려운 문제라 이야기를 안 꺼내나 싶기도 하지만, 정부 예산 늘려달라는 이야기는 많이하면서 왜 국공립단체 통폐합을 통한 정상화는 이야기하지 않지? 다들 자기 밥그릇과 위치는 확고하게 지키고 싶어서일까.

 

3. 공적 자원 투입을 당연시 여기는 풍조

오페라 관련자들이 공적 자원에 기대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단순히 오페라 제작을 위한 지원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까지 오페라 부흥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클래식 좋아하고 오페라 좋아하니 정부가 더 많은 지원 해주는 건 땡큐다. 하지만 오페라를 더 많이 지원하는 것이 공공의 선이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물론 나는 정부의 오페라 지원이 내 생계와 관련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오페라계 사람들에겐 당연히 오페라 지원 확대가 유토피아를 향한 한 걸음이겠지. 하지만 희망사항과 그걸 설득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일이다. 다들 정부 지원은 당연한 공리처럼 생각하고, 21세기에 문화 산업의 가치가 어떻고 하는 허황된 말로 지원의 명분을 퉁치고 있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서 정부의 돈을 더 적극적으로 타와야한다는 내용의 발언도 있었다. [산림청에 강연을 나갔었는데 산림청의 예산이 몇조더라, 거기랑 또 뭘해볼 수 있지 않겠냐, 이번에 대전에서 사이언스 페스티벌을 하는데 이거 문체부에서 할 수 있는건데 "카이스트랑 과기부 애들"이 예산을 다 가져갔다. 4차 산업혁명에 관련된 정부 예산이 많으니 또 그쪽으로 뭘 해볼 수 있다]

나중 자유토론에 내가 발언하면서 "카이스트랑 과기부 애들"이 예산 가져간다는 발언은 부적절하다고 말하며,  좀 말을 순화하기 위해 내가 거기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돌이켜보니 그냥 '왜 우리 이름 들먹이냐' 정도로만 받아들여진것 같다. 나도 웃으면서 말실수 정도로만 지적했지만 사실 들었을 때 꽤나 화가 나는 발언이었다.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 예산을 왜 오페라 단체가 욕심 내는거지? 사실 나도 이번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그 행사하겠다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몇명인데,  왜 그 예산을 오페라계가 가져갈 권리가 있는것 처럼 생각하지? 

민간오페라단 단장의 발제 후반의 내용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정부 눈먼돈 타먹는 팁 공유였다. 융합 콘텐츠를 만들어놓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원이 있으니 뭐든 가져다 붙이는 행태. 이런 새로운 콘텐츠 제작이 새로운 관객을 유입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이런 행태가 비단 오페라계에만 있는게 아니다. 과학기술계, 스타트업들 중에서도 정부 눈먼돈만 노리고 연명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명'할 뿐이다. 정부의 지원도 처음 얼마 동안이지, 지원받는동안 최소한의 자생력도 얻지 못 한채로, 우리는 순수예술이니까 지원해줘야해! 라는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다.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를 받기위해 자연대에서 얼마나 고생하는가? 지원받은만큼 실적 내놓기 위해 대학원생들은 또 얼마나 고생하나? 과연 오페라단은 국가의 지원을 받은 만큼 좋은 실적을 내었는가? 정말로 오페라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걸 입증하였는가? 일반 국민들이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느끼는 만큼 오페라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는가? 이런 것에 대한 질문 없이는 답이 없다.

 

4.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고민이 없는 심포지엄

정부와 기업들이 오페라에 후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보러오는 관객이 없기 때문이다. 관객이 늘지 않는데 정부와 기업의 후원만 늘어서 뭐하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아보이지만,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더 해달라는 건 남들한테 부탁하는 거고, 공연을 더 잘 만들어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건 자신들이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개선시킬 수 있는 사항인데 왜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나? 3시간 가까운 발언 시간 중 관객에 대한 분석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독일에선 어린이 오페라 같은 걸 매년 한다, 교육과정에서부터 오페라를 가르쳐야 한다 정도밖에 없지. 

왜 보러오는 관객이 없냐? 공연 퀄이 불만족스러우니까 그렇지. 국립오페라단이 파르지팔을 할땐 평일 공연 뺀 남은 이틀은 매진이어서 추가 티켓도 오픈했다. 공연이 좋으면 사람들이 보러 온다. 대한민국 오페라는 현재 국내의 오페라 팬들 마저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오페라 관람 쪽으로 유명인사들, 예컨데 박종호 씨나 유정우 씨만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자신, 혹은 지인이 한국 오페라는 안 본다고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다.

[뮤지컬 티켓과 비교해서 뮤지컬은 이렇게 잘 팔린다. 솔직히 뮤지컬 중에 오페라보다 형편없는 것들 많지 않냐.] [지방 공연은 퀄리티가 떨어질 거라는 편견이 있다] 이런 말들을 듣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힌다. 오페라계는 자기 객관화가 안 돼있는 것인가. 

티켓 판매 비중이 높은 외국 오페라단들은 공연 끝나면 이메일로 공연 어땠는지 설문조사 참여해달라고 메일 보낸다. 독일 극장들이야 그렇지 않지만 ROH, 글라인드본이나 LA오페라 들은 다 이런거 물어본다. 국내 오페라단들이 관객들 반응 본적 있나? 루살카 연출이 얼마나 구렸는지 점수로 평가받아본적 있나? 

왜 관객들이 오페라를 찾지 않는지 제대로 된 분석이 없으면 백날 정부 민간 후원 이야기해봤자 늘어날 리가 없다. 

 

5. 대다수 국민과 멀어진 현실인식

결국 공적 자원 투입을 당연시 여기는 풍조가 왜 나오는가? 현실 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발언들을 들으며 난 이 분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놀랐다. 오페라는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데 관객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 과연 관객들의 연령층과 수입과 직업과 교육환경 등을 분석했어도 똑같은 말이 나올까? 

왜 박찬호 박세리 같은 스포츠 스타의 활약은 보도하고 해외에서 활약하는 성악가의 활약은 보도하지 않느냐니? 이탈리아에선 저녁 시간대에 오페라를 보여주는데 왜 한국은 새벽2시에 보여주냐니? 퀴즈쇼에서 학생들이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작곡가랑 제목을 몰라서 틀리더라, 교육이 참 문제다라니? 일반인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나도 더 어렸을 때 오페라 보는거 비싸지 않은 취미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니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오페라를 즐긴다고 스스로를 상류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수없겠지만, 내가 즐긴다고 해서 남들도 누구나 그걸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누구나 오페라를 들을 수 있지만, 누구나 오페라를 접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얻을 순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는 문화생활의 계급화를 무시하는 것도 눈가리고 아웅이다. 내가 LA에 갔을때 뼈저리게 느꼈는데, 버스와 길거리에 있는 수많은 라틴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오페라 극장 관객석에선 놀랄만큼 찾아보기 어렵더라. 

평생 음악수업 받고 음악가들 사이에 둘러쌓이고 음악을 생업으로 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국민에게 오페라라는 것이 어떻게 들릴 지 조금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오페라 하시는 분들이니까 가끔 만나는 다른 분야 사람들도 대놓고 이상하게 말하진 않겠지.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오페라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오페라의 미래도 밝진 않을 것이다.

 

6. 내가 했던 말, 하고싶었던 말

자유 토론 시간에 몇가지 내용을 말했다.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한 내용도 있어 여기에 다시 적어본다. 발언시간에 제대로 말하지 않은 내용은 괄호처리했다. 

100년 뒤 미래를 논한다고 하는데, 지금 국립오페라단의 구조로는 미래가 없다. 해외 사례는 물론이고 국내 사례 중에서도 예술가 없는 국립 예술단이 말이 되는가. 물론 행정직이 해야할 일들이 있지만 상근 예술가가 없는 예술단은 도저히 상식에 맞지 않는다. 민간 오페라단도 비슷하다. 결국 단장 이름 하나밖에 없는데, 관객들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오페라단의 다음 공연을 가겠는가. 내가 본 해외의 민간 오페라단들은 최소한 지휘자 예술감독이 있고 고정된 극장이 있었다. 이 지휘자가 만드는 오페라면 다음에도 괜찮겠지라는 확신과 신뢰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민간오페라단에서 만든 작품 하나가 좋았다고 그 다음 작품이 좋을 거라는 확신? 없다. 물론 거르는 오페라단이 있고 괜찮은 오페라단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지휘자도 다르고 연출도 다르고 캐스팅도 다 다르지 않나. 단장들이 그 오페라 만드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돈 구하고 전체 제작과정 조율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관객들이 제일 관심있는건 예술적 퀄리티가 보장이 되는가다. 사람들이 영화보러갈 때 감독이랑 출연진 보고 가지 제작자 보고 가나? 

두번째, 왜 관객들이 한국 오페라를 보러 안 오느냐, 공연장이 쓸데 없이 크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2200석이고 외국에도 그렇게 큰 극장 많다고 하지만, 말굽형 극장에서는 좌우에 엄청나게 많은 시야장애석들이 있고 그걸 다 합해야 예당이랑 비슷한 수준이다. 예당 오페라극장 그 2200석을 국립오페라단도 다 못채워서 4층 비워놓고 2,3층 사이드, 별로 시야장애석도 아닌 그 좌석들 티켓 오픈 안한다. 그런데 그 큰 홀을 아무나 살릴 수 있나? 세계적인 성악가 몇명 빼고 예당 4층까지 어떻게 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나. 결구 1층 관객도 4층 관객도 서로 불만족스러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큰 홀에서 세계적인 성악가를 듣는것도 좋지만 작은홀에서 괜찮은 성악가를 듣는 건 더 좋다. 유럽에 가면 소극장 오페라를 꼭 본다. 작은 홀에서 충분히 연습한 성악가의 오페라를 보고 있으면 내가 이맛에 직접 공연장 와서 오페라 본다는 걸 깨닫는다. 오케스트라 쓸 필요도 없다. 연습 안한 오케스트라보다 괜찮은 피아니스트가 반주하는게 훨씬 더 음악적이다. 

[화려한 무대나 의상도 필요없이 탄탄한 연출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소극장 오페라 한다고 하지만 음향이 괜찮은 공연장도 별로 없고, 소극장일 수록 준비도 대충한다. 소극장 오페라를 한다는 건 객석이 적은 대신 그만큼 오래 상연해야한다. 한번 연습하고 30번 공연하는 뮤지컬이랑, 한번 연습해서 각 캐스팅이 1번이나 2번 공연하는 오페라를 볼 때, 누가 더 완성도 있게 연습하겠나? 그런데 소극장 오페라이면서도 상연횟수도 적은 건 딱 그정도 관객만 끌어들일 공연으로 제작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캐스팅당 한번씩 공연하는 오페라들 보면 이거 그냥 성악가들 실적 쌓기용으로 밖에 안 보인다. 오페라 제외하고 다른 무대 작품들,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그런 식으로 공연하는 거 없다. 심지어 국립창극단도 오페라단에 비해서 공연 길이가 훨씬 길다. 프로덕션 상연 횟수는 관객 입장에서 보았을 때 공연의 퀄리티를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장치다. 여기에 소극장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려면 성악가들의 연기가 잘 돼야하는데 우리나라 오페라 연출은 연기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하지 않나. 

관객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오페라 한번도 못들어본 학생들 내가 한 학기 동안 수업해서 같이 오페라 관람하러 간 적 있다. 민간 오페라단 공연도 있었고 대전예당 제작이나 국립오페라단 공연도 있었다. 갔다오면 애들이 좋았다는 것도 있지만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매우 많다. 오페라 한 두번 정도 미리 듣고가기만 해도 애들이 누가 노래 못 불렀고 연출이 뭐가 이상한지 다 안다. 유럽에 작은극장에서 오페라 보면서 나는 오페라 데리고 간 학생들이 생각났다. 그 친구들을 이런 공연에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 티켓값이 3배 4배여도 기쁜 마음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을 거다. 이 공연을 즐길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오페라 극장들에서 하는 공연은 그런 마음으로 데려갈 수가 없다.

직접 오페라 만들고 소극장 오페라도 해보신 분들도 있는데 내가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거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해외 극장 영상물 보는 대신 직접 극장에 찾아오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달라] 

 

세번째로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 관련 발언이 부적절했고) 정부예산 받는건 좋지만 그 예산 받겠다고 이상하게 끼워 맞추지 말어달라. 여기에 그 공연 출연한 교수님도 와계셔서 말씀드리기 좀 조심스럽지만, 동네 문화재단에서 음대생들이 돈 조반니 올린다고 하길래 가봤다. 그런데 원로예술인지원사업 선정작이라고해서, 원로 성악가들을 억지로 끼워넣었다. 억지로 끼워넣으려고 새로 대사도 썼는데 그 대사가 너무 수준이하였다. (내가 이 공연 리뷰를 블로그에 올리진 않았는데, 진짜 공연 보고나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빡쳐서 문화재단에 항의하고 그 위에 지원사업 선정 담당 재단까지 연락해서 항의했고 A4로 썼다. ) 성악가 분들이 연기만 하면 그건 또 얼마나 어색하겠나. 그 공연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좋은 작품 만드라고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건데, 그 지원 받겠다고 오페라를 도살한거 아니냐. 

 

(아래 글은 그 공연을 선정해서 지원해준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에 보냈던 내용이다. 이런 블랙 컨슈머같은 클레임 때문에 성동문화재단이 빡쳐서 다시는 오페라를 상연하지 않을까봐 인터넷에 올리진 않았는데, 오늘 심포지엄을 보며 이런 병폐가 우리 문화계에 만연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전문을 올린다. 성동문화재단 관계자는 내 항의에 상당히 기분나빠하며 '원로예술인사업 지원을 받기 위해서 공연 내용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못박아 말하였지만, 이 날 심포지엄에서는 내 발언에 대해 관계자분이 성동문화재단에서 먼저 사업비를 받기 위해 이런 수정을 제의했다고 답변해주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지만 난 성동문화재단이 계속 한양대 학생들과 작품을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항의 때문에 사업이 엎어지면 그것대로 문화계의 현모습을 보여주는 거일 거고.)

돈조반니 후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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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여기 와계신 신임 단장님과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작년 국립오페라단 코지판투테 사건 때 너무나 상처받았고 배신감을 느꼈다. 오페라 중간 30분을 잘라버리고 관객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고 아무도 무대 위로 나와서 사과하지 않았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이날 빡친 감정은 여기에 있다. 이 일은 결국 예당 측의 무대 관리 실패 책임이라는 것과 당시 30분을 자르자는건 연출가의 의견이었다는 답변까지 들었다. 공연 다음날 전화로 항의했었고 코지판투테 4회 공연이 모두 끝나면 다시 정식 사과문을 올리겠다고 했지만 결국 초기에 올라왔던 아주 간략한 사과문만 남고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국립오페라단이라는 단체가 오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페라 관객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그때 알았다. 그래서 그 뒤로 국립오페라단 공연 안 보고 있다. 다시는 이런 상처 주는일 없으면 좋겠다.
[여러가지 분노가 있었지만, 작품의 Integrity 따위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30분 자른 것을 최대한 숨기려고 급급해보인 것이 가장 빡친 부분이었다]

[민간오페라단 단장들과 성악가분들이 고생해서 제작비 아끼고 후원금 얻어와서 내가 더 싼 티켓으로 볼 수 있는것 잘 알고 감사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금전적, 교육적 지원만 바라고 있어서는 절대 발전이 있을수가 없다. 객석이 차야 후원이 생길 것 아닌가. 관객들이 무엇에 실망하고 있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아달라. 남의 지갑에서 돈 꺼내고 시간을 꺼내오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관객들도 오페라가 비싼 공연이라는 걸 직시하고 돈을 더 내는걸 당연히 여기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지만, 그건 관객들한테 가서 할말이지 여기서 할말은 아니지 않나.]

 

 

다음에 이런 심포지엄을 다시 한다면, 대한민국 오페라 공연 졸라 구리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한명 정도는 섭외하고, 우리나라 문화예산 분배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하고, 사회 후원 담당하는 기업 인사도 한명 데려와서 왜 오페라에 후원을 안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오페라 만드는 사람들끼리, 그것도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서 백날 이야기해봤자 발전 못한다.

 

일개 관객으로서 국내 오페라 제작자 분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부족하나마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서 시간을 낸 보람이 있었다. 심포지엄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내 이야기를 하고 간단히 답변만 들은 채 곧바로 퇴장했어야 하는 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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