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와 가까운 도시 중 이 날 흥미로운 오페라를 하는 곳이 뒤셀도르프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별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그 동안 독일 오페라 극장들을 여기저기 다녔지만 아마 메이저 극장들이 있는 곳 중에서는 이 라인강 쪽 도시들을 놓쳤기 때문에 마침 잘 맞는 일정이었다.

도이체 오퍼 암 라인은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에 극장을 두고 있다. 안트베르프와 헨트에 극장이 있는 플란더스 오페라와 비슷한가 싶기도 하지만 거기는 정확히 같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한 프로덕션을 두곳에서 연주하는 것에 비해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는 오케스트라도 따로 있고 프로덕션만 공유하는 정도인 듯 하다. 이 날 공연의 반주도 뒤셀도르프 심포니가 맡았다.

 

지휘나 연출이나 가수나 작품이나 별다른 예습도 하지 않고 찾아갔다. 다행히 이 작품의 내용은 너무도 단순해서 예전에 한번 본 기억만으로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연출이 꽤나 흥미로웠다. 1막에선 이스라엘인들을 광부 노동자, 팔레스타인인들을 자본가로 묘사하여 종교적인 갈등을 자본주의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이 때 이스라엘인을 노래하는 합창단원 몇명의 표정이 잘 살아있어서 단순한 장면인데도 힘있고 진실되게 전달됐다.

다곤의 사제들은 매춘부로, 달릴라는 그들의 포주 처럼 등장하여 노동자들을 상대로 영업한다. 이런 1막의 흐름은 꽤나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2막은 합창단이 나오지 않으니 연출의 특별한 점은 더 없었지만, 긴 테이블을 중앙에 둬서 동선을 지루하지 않게 짰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충격적인 것은 2막에서 상송이 머리가 자르고 잡힌 뒤 3막이 시작되기 전에 고위사제가 상송의 눈을 뽑는 고문 장면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고위사제가 즐거운 마음으로 상송을 끔찍하게 고문하는 모습은 자칫 잊기 쉬운 작품에 내재된 어둡고 폭력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공연을 본지 오래 돼서 바카날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종교의식을 어린아이까지 데려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제대로 주었다. 

오페라 마지막에 상송이 회개하여 마지막으로 다시 힘을 얻어 신전의 기둥을 부숴 신전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장면은 음악적으로나 연극적으로나 그에 걸맞은 임팩트를 만들기 어려운 장면이다. 작품 내내 힘을 잃지 않던 연출도 이 난제 앞에선 별다른 해답이 없었다. 그저 무대 전체가 땅으로 서서히 꺼지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으니 조금 김이 샜다.

가수들이 전반적으로 무난했는데 달릴라 역의 가수는 메조인데도 저음이 약해서 소리가 잘 안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상송은 어려운 역임에도 시원하게 잘 불러줬고 고위사제는 크랜츨레가 생각날 만큼 연기나 노래가 좋았다.

인상 깊었던 건 지휘자였던 마리 자코였다. 젊은 여성 지휘자인데 전날 예르비를 들으면서 답답했던 마음을 씻겨줄 만큼 생동력있고 극적인 프레이징을 보여줬다. 너무 극단적이거나 튀려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하지만 무심하지 않게 지휘하는 미덕을 보여줬다. 이 오페라의 하이라이트인 2막의 달릴라 아리아 몽쾨르 아 타 부아에서 오케스트라의 부풀어오르는 프레이징은 아주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었다. 오케스트라가 만하임에 비해서도 때깔이 훨씬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연출이나 지휘, 그리고 가수 까지 모두 맡은 바 소임을 잘 해준 모범적인 공연이었다. 아주 탁월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이 맛에 오페라 본다라고 할 장면들이 곳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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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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