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친한 형이 만하임에 거주하고 있어 바덴바덴에서 같이 공연을 보고 만하임으로 향했다. 정작 이 날 만하임에서 공연을 볼 때 형은 쾰른으로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공연을 보러가셨지만... 나중에 이 공연을 안 따라간 걸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얀손스 옹 명복을 빕니다..

 

이날이 "모든 성인 대축일"이라 휴일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비교적 긴 작품인 무영녀를 상연할 수 있던 것 같다. 만하임에도 학생 당일 할인 티켓이 있는데 이제 내가 그 나이 상한선을 넘게 됐다. 어떻게 하면 문제없이 학생티켓을 살 수 있을까 하면서 생년월일 나온 신분증을 다른데 두고 왔다고 해야하나 한참 잔머리를 굴렸다. 막상 들어가서 학생 티켓 산다고 하니까 10유로라면서 학생증 달라는 소리도 안 하더라. 역시 서양인들은 동양인 나이를 전혀 가늠 못하나보다..

만하임 극장은 특이하게도 로비에서 먼 쪽 출입구일 수록 무대와 멀어지는 형태이다. 즉 로비 벽 바로 뒷편이 무대 뒷편인 셈.

빈에서 무영녀를 두번 본지 네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워낙 대단한 공연이었기에 만하임에서 비슷한 정도를 기대할 순 없고 그냥 만하임 극장이 어떤 느낌인지 한번 경험하고 온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에 운이 좋으면 연출에서 뭔가 특별한 게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휘를 맡은 알렉산더 소디는 단 에팅거를 뒤이어 만하임의 GMD를 맡고 있는 지휘자였다. 

 

좋아하는 작품을 한번 다시 듣는 것은 아주 좋았지만 아쉬운 점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수들은 황제를 제외하고 모두 나무랄 데 없었지만 오케스트라는 한계를 많이 보여줬다. 관악기는 상당히 선전했지만 현악기는 곳곳에서 음정이 불안했는데, 특히 첼로 솔로와 악장 솔로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음정을 심하게 틀리는 실수들이 이어졌다. 2막의 황제 장면 간주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 여기서 그 첼로 솔로의 불안함과 실수는 감흥을 와장창 깨뜨릴 정도였다. 이 작품이 워낙 어려운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빈틈을 처절하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지휘자 소디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발휘하기 보다는 오케스트라 교통 정리에 집중해야하는 판국이었다. 그래도 틸레만의 지휘와 비교해서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어 즐거웠다. 틸레만이 오케스트라에서 강력한 포르티시모를 뽑아내는 걸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늦추는 반면 소디는 투티를 통해서 오케스트라를 하나로 응집시키려는 듯 했다. 덕분에 틸레만에겐 기대할 수 없는 거칠고 야생적인 반주를 들을 수 있었다.

연출 역시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독일이라고 한들 취향에 맞는 연출을 만나기란 쉽지 않구나 다시 느꼈다. 만하임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힘 프라이어의 만하임 반지가 생각나는 연출이었다. 연극적이기 보다는 상징적이었는데, 무대를 특별히 바꾸지 않고 전체를 회전시키거나 천장에 해당하는 거대한 구조물을 조정해가며 장면을 바꾸었다. 바락과 비슷한 복장을 입은 사람이 전령이라도 된것 마냥 황제의 집을 어슬렁거리는데 전반적으로 연출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겠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렇다고 전위적이거나 도발적인 장면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수들은 전반적으로 선방했지만 역시 황제 역할은 가수의 실력 차이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나보다. 모두 처음 들어보는 가수였지만 아주 익숙한 이름이 한 명 있었다. 바락의 부인 역할을 맡은 캐서린 포스터였다. 이 캐서린 포스터를 비롯해 여자 주역 삼인방은 아쉽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바락을 맡은 가수는 처음에는 목소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난하게 잘 소화해냈다. 나중에 보니 캄머쟁어 칭호를 받은 가수였는데, 다른 극장에서 보던 캄머쟁어들에 비하면 특출나게 돋보이는 느낌이 없어 아쉬웠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