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겐츠는 야외 무대에서보다 실내 극장에서 더 재밌는 작품을 많이한다. 돈은 야외 오페라로 벌고 예술적 자아성취는 실내 극장에서 하는게 틀림 없다.

프란코 파초Franco Faccio의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생경할 테다. 나도 몰랐다. 심지어 이 블루레이를 사고 나서도 몰랐다. 라이만이 오페라 <리어>를 쓴 것 처럼 이 햄릿 역시 현대작곡가가 쓴 오페라려니 했다 (그건 브렛 딘의 햄릿이었다).  그런데 웬걸, 파초는 1840년에 태어나 1891년에 사망한 이탈리아 작곡가로 베르디와 활동시기가 완전히 겹친다. 도대체 베르디가 활동한 시기에 다른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은 뭘하고 살았을까, 어떻게 베르디 강점기가 가능했는지 항상 궁금해했는데 바로 그 중간에 낀 작곡가를 찾은 거다. 계산해보면 베르디보다 27년이나 늦게 태어났지만 10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부코가 초연된게 1843년이고 팔스타프가 초연된게 1893년이다. 파초가 태어났을 때부터 베르디는 이탈리아에서 알아주는 작곡가였고 파초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베르디는 말년의 작품을 남겨놓고 있었다.

베르디와 동시대 작곡가가 햄릿을 원작으로 오페라를 남겼다. 이것만 해도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인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아믈레토>의 대본가가 바로 베르디-셰익스피어 오텔로와 팔스타프의 대본을 맡은 아리고 보이토라는 점이다. 이쯤되면 보이토는 정말 19세기 이탈리아의 셰익스피어 최고 전문가라고 할만하지 않나. 이 아믈레토가 1865년에 초연됐으니 보이토의 대본 경력 중에서도 초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보이토의 작품 답게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별 왜곡 없이 잘 오페라에 녹여냈다. 이건 거의 비슷한 시대에 똑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토마의 오페라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토마의 햄릿에는 원작팬들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장면들이 여럿 등장할 만큼 원작과 다른부분이 많지만 파초/보이토의 햄릿에는 그런 점들이 없다. 햄릿을 읽은 지 꽤 오래됐지만 내가 기억하는 주요 사건들, 유령과의 만남 / 곤자고 연극 / 클라우디오 살해 실패 / 실수로 폴로니어스를 살해 / 무덤가에서 요릭의 해골을 들고 독백 / 오필리어의 장례식 / 레어티즈와의 결투 등 굵직한 부분들이 모두 빠짐없이 등장한다. 

음악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 흥미롭다. 이탈리안 답게 귀에 잘 꽂히는 선율들이 자주 등장한다. 오페라를 시작하는 전주의 선율부터가 섬세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느낌을 줘서 마음을 뺏겼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진행이 정형화 돼있지 않다는 점도 재밌다. 즉 카바티나와 카발레타 세트로 이루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음악을 가져다 붙인 느낌이다. 극의 플롯과 음악의 우선순위 다툼에서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오페라 치고는 독특하게도 플롯이 먼저 오는 느낌이다. 한 아리아 안에서의 구조를 보더라도 전형적인 모습보다는 가사를 따라 자유롭게 흐르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To be or not to be에 해당하는 Essere o non essere 아리아 역시 반복되는 구조나 뚜렷한 멜로디가 없이 가사에 맞는 음조를 읊조리는 느낌을 준다. 이런 점들을 보면 동시대인 바그너의 작품과도 닮아있다.

브레겐츠 투란도트에서 보았던 파올로 카리냐니가 지휘를 맡았고 테너 파벨 체르노흐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체르노흐는 러시아 쪽 레퍼토리에서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준 가수인데 목소리가 상당히 호소력 있어 매력적이다. 다른 가수들은 모두 무난한 활약을 보여준 것으로 기억한다.

 

낙소스에서 같은 공연의 실황을 음반으로도 내놓아서, 영상을 보고 난 뒤에도 생각날 때 몇번 틀어두었다. 무언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 때문에 호기심이 계속 가는 작품이다. 시간이 된다면 영상을 다시 한번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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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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