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인드본의 모차르트는 보증 수표.


제목을 뭐라고 써야할까 한참 고민했다. 제일 흔한 번역은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나 탈출일텐데, '후궁으로부터의'란 말이 번역투라 싫다. 유괴나 납치냐 탈출이냐 도주냐도 이야기가 많지만 Entführung의 뜻 중에서 굳이 abduction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elopement의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정작 오페라 안에서 Entführung이라는 단어를 쓰는게 오스민이라 탈출이나 유괴로 번역하겠다고 해서 어색한 건 전혀 아니다. 차라리 마탄의 사수 처럼 굳어진 표기가 있으면 모를까, 참 난감한 제목이다.


내가 블로그 태그를 정리하다가 깨달은 건데 블로그 질 시작하고 나서 모차르트 오페라를 단 두 편밖에 안봤다. 두 편!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벨리니도 세 편을 봤는데! 이게 오페라 본다는 사람이 맞나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좀 가졌다. 여러분 전 절대 모페라를 싫어하지 않아요.


마침 글라인드본의 후궁 탈출을 꼭 보고 싶었기에 타이틀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훈련소 가기 전날 후궁 탈출을 볼까 바인베르크를 볼까 하다가 고민하다 결국 후궁 탈출은 비닐만 벗긴 채 못보고 4주가 지나갔다. 내 싱숭생숭한 마음이 반영된 것일까, 바인베르크는 물론이고 후궁 탈출 역시 억압과 자유를 다루고 있다. 


글라인드본 명가수 인터미션 시간에 같이 수다 떤 할머니께 지금 까지 본 공연 중에 뭐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 2015 글라인드본 후궁을 꼽으시길래 블루레이 나오자 마자 구매했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나는 글라인드본에서 똥을 만들어서 블루레이로 냈어도 샀겠구나. 여튼 빈할매 만큼은 아니겠지만 글할매의 내공을 믿어보기로 했다.


최근 나온 안드레아 셰니에에서 맥비커의 재능을 칭찬했는데 이 후궁 탈출은 셰니에 때보다도 한 수 위가 아닌가 싶다. 18세기 터키를 배경으로 하여 모든 의상과 무대가 전통적으로 보이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다. 일단 예쁘다. 아니 왜 우리나라 오페라단은 전통적으로 해도 저런 퀄리티를 못 만들어내는 건지 따지고 싶을 정도다. 그래 돈이 없어서겠지... 솅크나 제피렐리 같은 자연주의와는 다르다. 무대 구조물은 하나하나 굉장히 신경쓴 것이 티가 난다. 국립오페라단 토스카의 흰색 벽이 싸구려로 느껴진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른 구식 연출과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조명일테다. 흡사 자연광을 쓴 것처럼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한다. 무대라기보다는 현실, 혹은 영화처럼 느껴진다. 


맥비커의 최대 장점은 무대 위에 등장하는 주변인물 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일텐데 아쉽게도 후궁에는 그런 능력을 자랑할만한 장면이 별로 없다. 하지만 몇 안되는 합창 장면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뽐낸다. 또한 징슈필인 만큼 연기 지도도 끝내준다. 크리슈토프 로이의 리세우 공연에서 모든 대사가 너무 무겁게 처리되어 보는 이를 힘들게 하는 데 비해 맥비커의 연출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며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다고 가벼운 연기는 아니다. 벨몬테가 콘스탄체의 사랑을 의심하는 장면은 상당히 진중하고 섬세하게 처리되어 자연스레 몰입하게 만든다.


이 연출의 방점을 찍는 건 단연 파샤 젤림 역할의 프랑크 소렐Franck Saurel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젤림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맥비커의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덜 정치적으로 만들고 인간 개개인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선 젤림이 멋있어야 한다. 젤림이 기똥차게 멋져야 콘스탄체가 젤림을 거절하고 끝내 벨몬테에게 충실한 것이 의미가 생긴다. 맥비커는 이걸 훌륭히 꿰뚫어봤다. 젤림이 콘스탄체한테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콘스탄체에게 몰입하면 이야기가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결국 서방 인물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젤림이 너무 매력적이라 다들 젤림에게 감정이입하면 어떨까. 젤림에게 흔들리지 않는 콘스탄체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데다 저렇게 멋지고 다 가진 남자가 사랑을 얻지 못하면 얼마나 슬플까라는 생각도 든다.


프랑크 소렐은 그걸 연기와 근육으로 만들어낸다. 콘스탄체와 첫 장면에서부터 표정에서 구애의 절실함에 뚝뚝 묻어나온다. 모든 장면에서 콘스탄체를 힘으로 얻고자하는 욕망과 그 절제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2막에 고문 아리아 장면에서 상의 탈의 후에 보여주는 근육은 아마 오페라 문대에서 나오는 나체 중에 가장 강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쓰고보니 살로메에서 요하난 목자르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이것도 맥비커잖아? 맥비커는 분명 남성 근육질 몸매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 것 같다. 젤림은 이렇게 무대 위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이자 동시에 사랑에 빠진 순정남 이미지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3막 피날레에서 벨몬테를 용서하고 콘스탄체를 떠나 보내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연기는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기에 떠나보내는 인간의 훌륭한 표본이다. 저렇게 멋진 남자를 거부할 수 있다니.... 

(추가:  "맥비커는 분명 남성 근육질 몸매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 것 같다."라고 쓰면서 게이인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진짜 게이 맞다. 왜 모르고 있었지...)


맥비커는 이렇게 특별한 해석을 집어넣지 않아도 극 자체가 관객에게 다가가게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극이 자연스럽게 살아 움직인다. 가상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현실을 보여준다. 놓치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장면은 2막 오스민과 블론데의 이중창이다. 블론데가 오스민을 인형옷 입히듯 가지고 놀다가 오스민이 화를 내니 부엌 안에서 부부 싸움이라도 하듯 온갖 물건을 집어던진다. 그런데 행동이 과하지 않고 가사에 어울리며 무대 위에서 에너지가 폭발한다. 이 이중창을 단순히 터키와 영국의 다툼이 아닌 보통의 부부싸움 처럼 표현한 센스는 또 어떤가! 


티치아티와 계몽주의 오케스트라는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대전 공연와서 말아먹었던 계몽주의 오케스트라지만 글라인드본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시대 악기의 가볍고 산뜻한 음색에 풍성한 음향까지 놓치질 않는다. 티치아티는 이 음색을 자연스럽게 밀어붙이며 질주한다. 타악기를 때려대는 데도 두려움이 없다. 반주 역시 시원하게 뻗어 나가며 동시에 섬세하게 톤 조절을 한다. 기똥찬 모차르트 해석까진 아니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연주라고 해두자.


가수들은 글라인드본 답게 무난하게 괜찮다. 페드리요 역의 브렌덴 군넬Brenden Gunnell과 오스민 역의 토비아스 케러Tobias Kehrer가 상당히 탁월한 노래와 연기를 보여준다. 벨몬테 역의 에드가라스 몬트비다스Edgaras Montvidas는 벨몬테를 맡기엔 목소리가 살짝 두꺼운 편인데, 그래도 서정적인 노래에서 프레이징을 곧잘 표현해냈다. 콘스탄체 역의 샐리 매튜스Sally Matthews는 무난한 목소리에 상당히 아름답게 울리는 고음을 들려준다. 블론데 역의 노르웨이 소프라노 마리 에릭스몬Mari Eriksmoen은 전형적인 수브레트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여기에 자연스러운 연기까지 블론데로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게 괜찮아 보이지만 심각한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출연진의 독일어 딕션이 네이티브와 꽤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노래할 때와는 다르게 대사를 할 때는 당연히 네이티브인지 아닌지가 크게 차이날 수밖에 없다. 캐스팅 이름 한번 안보고 대사 치는 것만 들어도 네이티브인지 아닌지는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글라인드본이나 맥비커는 이 점이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주역 5명 중에 오직 페드리요와 오스민만 독일인으로 캐스팅하고 나머지는 모두 비독일인이다. 심지어 젤림 역 프랑크 소렐 역시 프랑스인이다. 소렐 정도 비주얼에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으며 오페라 경험이, 특히 맥비커와 작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희귀하다는 걸 고려하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렐의 독일어가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대사가 많은 페드리요와 오스민이 독일인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 독일어 대사가 못들어줄 정도 까진 아니지만 민감한 사람들은 꽤나 거슬릴 거다.


그래도 현재까지 나온 블루레이 중에서 후궁 입문용으로 가장 추천할 만 하다. 리세우 공연의 담라우와 페레탸트코가 정말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출의 대중성에서 보자면 맥비커가 로이를 가뿐이 앞서간다. 한스 그라프가 지휘한 잘츠부르크 공연은 범작이니 별로 논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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