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선방


국립오페라단이로 시즌제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해 단위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올해의 첫 공연인 만큼 힘 꽤나 넣었을 것이라 기대했다.


왜 팔리아치와 외투인가? 적당히 유명하면서 적당히 신선한 작품을 골라 “예술적 안목”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종종 시도하는 조합이니 ‘터무니 없다’라는 평가는 피할 수 있으면서 좀 있어보이는 선택으로 비춰지고 싶었을 테다. 나도 외투를 처음본 게 독일 굿 임링에서 팔리아치와 커플링된 공연이었다. 이번 국오 공연은 이 커플링을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더블 빌을 공연할 때 어떻게든 작품을 하나로 이어붙이는 게 대세가 된 건가 싶다. 최근 리뷰한 ROH의 다미아노 미키엘레토의 연출이 대표적인 예시일 테다. 그리고 더블 빌을 엮어보겠다는 욕심이 괜찮은 연출을 망친 주범이기도 했다. 오늘도 비슷했다.



연출의 핵심 부터 짚어보자. 두 작품을 어떻게 결합시켰는가. 팔리아치는 유랑 극단이 아니라 마치 브로드웨이 최고의 쇼 컴패니 같다. 1막에서 팔리아치를 환영하는 합창은 레드 카펫에 등장할 슈퍼스타들을 기다리는 장면이 된다. 이 합창의 화려함을 생각한다면 보잘 것 없는 유랑극단이 아니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단체라는 설정도 괜찮아 보인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외투의 하층민의 삶과 대비가 되기 때문이다. 팔리아치는 하층민이 아니라 이제 상류층으로 표현된다. 팔리아치의 화려함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종교적 겅건함과도 좋은 대비를 이루는데, 이를 외투의 ‘하층민의 고단한 삶’과도 대비를 시키는 것이다. 한경일보 리뷰가 카니오가 인기 스타가 되어버려서 공감하기 힘들다라는 비평을 했는데, 연출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여된 평이다. 베리스모는 인기 스타를 다루면 안 된다는 건 근거도 없고 편협한 이야기다.


문제는 그런 대비를 이루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굳이 팔리아치와 외투를 스까먹자고 우기는 부분에 있다. 1막 마을 사람들의 합창 후 네다의 분장실로 무대 전환이 이뤄질 때 한 여인이 아이를 데리고 백스테이지를 찾아온다. 직원에게 사정해서 백스테이지를 아이에게 구경시켜주는 것이다.


이 여인과 아이는 간주곡에도 다시 등장한다. 역시 만만한 게 간주곡이다. 팔리아치 극단의 객석에 네다가 혼자 앉아있다. 무대를 둘러보던 여인은 네다에게 다가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사인을 요청한다. 


문제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단서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북에는 써놨지. 하지만 연출은 프로그램 노트 없이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관객이 외투와 팔리아치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 인물을 조르제타와 그 아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없다. 외투에서 묘사되는 조르제타와 미켈레의 아이는 요람에 있을 만큼 작은 아기로, 걸어다닐 만한 아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요람이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둘의 아이가 꼭 아기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지만, 관객 입장에서 기본적인 배경 지식만으로 팔리아치에 등장하는 여자가 조르제타라고 추측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다미아노 미키엘레토의 연출을 살펴보자. 비록 썩 좋은 결과라고 평가하진 않지만, 최소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무대에 등장하는 여자가 팔리아치의 네다라는 단서는 충분히 준다. 팔리아치 포스터를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네다에게 반하는 남자면 실비오겠지 뭐. 하지만 이번 페데리코 그라치니의 연출엔 그런거 없었다. 관객들은 외투 후반부에 미켈레와 조르제타가 아기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서야 주황색 패딩을 입은 아이를 보고 아 팔리아치에 나온 인물이 조르제타였구나 알 수 있다.


의도는 알겠지만 프로그램 북 없이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연출은 감점이다. 같이 본 여친님은 쟤는 도대체 왜 나왔을까 이해를 못 했다고 한다. 차라리 체르냐코프 처럼 대놓고 무대 위에 프로젝터로 컨셉 설명을 해주던가. 


간주곡에 다른 작품 이야기하는 것의 위험성은 저번 리뷰에도 충분히 길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 연출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네다와 조르제타의 만남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비극과 미래에 일어날 비극이 맞닿는 부분이었다. 네다와 조르제타를 한 가수가 맡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종의 타임 리프물에서 나올 법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외투에서도 팔리아치와의 연관성을 계속 가져가려고 한다. 외투에서 갈등의 핵심은 조르제타가 원하는 삶과 현실의 괴리다. 푸치니는 대놓고 음악으로 표현해놨는데, 극 맨 처음부터 등장하여 전반에 흐르는 강물의 선율에서 느끼는 노곤함과 조르제타가 파리를 그리워하는 노래의 대비를 생각해보라. 외투 첫 선율은 아무리 들어도 정감이 가지 않는다. 마치 푸치니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써놓은 것 처럼 말이다. 황량함과 고통이 담겨있다. 외투의 전반적인 음악 대부분이 그렇다. 오직 조르제타의 아리아만 찬란하게 빛난다.


그런 괴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라치니는 조르제타에게 끊임없이 팔리아치 쇼의 환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게 감점 요인이었다.


내 느낌적 느낌으론 김학민 단장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대목이었다. 환상을 보여주는 건 괜찮은 연출일 수 있지만 무용수와 타데오, 아를레키노 등의 촐싹 맞은 행동은 작품과 너무 따로 노는 부분이었다. 반대로 조르제타의 환상이 음악으로 직접 표현되는 아리아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물론 난입하는 환상들의 동선 센스를 봐서는 아리아에서 아무 짓도 안한게 차라리 다행이긴 하겠지만, 조르제타가 꿈꾸는 환상을 그렇게 강조하고 싶었다면 아리아에서 최소한의 조명효과라도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연출은 연출가의 의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조르제타는 화려한 삶을 꿈꾼다. 그는 1년전에 봤던 팔리아치 쇼의 환상을 본다” 라고 의도한다고 관객들이 다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다. 관객들이 그 환상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관객들이 조르제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조르제타가 미켈레를 놨두고 루이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그렇게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한 일인가? 팔리아치의 뜬금없는 등장은 오히려 조르제타라는 인물을 이야기에서 더욱 겉돌게 만들며 관객과 괴리시키진 않는지? 글쎄, 난 환상을 보는 조르제타에 딱히 공감할 수 없었다. 조르제타가 꿈꾸는 삶이 팔리아치가 보여주는 환상의 삶인가? 그냥 평범한 서울 라이프를 원하는 것 같은데. 거기다 그 공연 봤으면 그 쇼가 어떤 꼴 났었는지 알 거 아냐. 조르제타가 파리의 공기만이 자신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는 건 쉽게 공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팔리아치가 보여준 환상에 빠져있다는 건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하나는 과연 조르제타가 꿈꾸는 환상을 그렇게 강조할 만큼 다른 파트에서 일관성 있게 최선을 다했냐는 것이다. 예컨데 프루골라의 노래를 들어보자. 프루골라는 도대체 왜 뜬금없이 등장하는 걸까? 그는 조르제타가 꿈꾸는 삶과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은 늙어서 힘도 없고, 자신은 여기저기 물건이나 주워다니는 신세다. 그렇기에 프루골라의 노래는 상당히 기괴하다. 

웃겼던 건 이 대목에 프루골라가 조르제타에게 멋스러운 털 목도리?와 선글라스를 건내준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만 한다’라는 표현은 좀 우습지만, 조르제타의 괴리를 설명하려면 이 장면에서 프루골라가 조르제타에게 건내는 것들이 최대한 지저분해야 하지 않을까?



세세한 것으로 들어가보자. 팔리아치의 무대는 세련됐다. 팔리아치의 입장 장면도 음악에 어울리게 화려했다. 그 정도 톱스타에게 관객이라는 사람이 ‘토니오가 네다 꼬실려고 하잖아’라고 놀릴 수 있겠냐만 뭐 그 정도는 그렇다고 치자. 퇴장하고 이어지는 합창 장면에서 무용수들이 앞에서 춤을 추는 건 너무 한국 연출 같았다. 합창단이 노래 부르고 있는데 무대전환해서 강제로 퇴장시키는 것 역시, 나름 좋아하는 합창 파트를 너무 쉽게 넘겨버리는 것이 아닌가 좀 아쉬웠다.


네다의 분장실은 좋았지만, 극을 보는 내내 과연 저 좁은 분장실과 출입문이 하나 밖에 없는 구조에서 실비오가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계속 궁금해졌다. 결국 까보니 그 거구의 카니오를 네다가 붙잡는 사이 실비오가 도망친다는 황당한 동선이었다. 뭐 사소한 거긴 하지만 신경 좀 쓰지.


극중극에 무대 맞은편에 객석이 등장한다는 건 확실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었다. 중간에 관객들이 광대 가면을 쓰는 장면은 미키엘레토 연출의 하위호환이었다. 결국 똑같은 컨셉인데 미키엘레토 쪽이 타이밍이나 시각적 연출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극중극은 브로드웨이 쇼 느낌이 나게 만들었는데 진부하지 않아 좋았다.


외투의 무대에는 상징인 배가 없어서 좀 당황했다. 프로그램 북에 회전 무대는 감옥처럼 반복되는 조르제타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양심도 없는 소리다. 감옥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면 좀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야지, 무대가 회전한다고 ‘오오오오 저것은 쳇바퀴 처럼 반복되는 일상!’ 이럴 거라 생각하는 건가. 거기다 별로 회전 무대의 장점을 잘 살린 편도 아니었다. 건물 안이나 밖이나 분위기나 기능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대 자체의 퀄리티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무대도 사실적이고 인물들의 동선도 자연스러운 편이었다. 배의 세부적인 묘사도 의외로 멀리서 보기엔 훌륭해보였다. 사소한 거지만 조르제타가 잠자러 갈 때 문 닫고 들어가서 미켈레가 ‘옷도 안 갈아입고 잠도 안 들고 있다’라는 대사가 좀 이상해졌다. 뭐 투시 능력이라도 있나. 거기다 내 자리에서만 안 보였는지 모르겠는데 조르제타와 루이지의 신호인 성냥불도 없어졌다. 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시시콜콜 대본에 적힌 대로 하길 원하는 인간이었냐 싶지만 이왕 평범하게 할 거면 좀 디테일까지 말이 되게 하면 좋잖아. 성냥불 안 쓴 건 예술의 전당도 불태워먹은 국립오페라단의 막강한 화력 때문일 것 같은데 그러면 led라도 쓰던가. 요즘 촛불도 led가 대세던데.


전반적으로 디테일한 연기지도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 걸 할 줄 알았으면 실비오가 나 잡아봐라 하고 여유있게 도망치는 일도 없었겠지.



음악적인 면은 연출보다 아쉬움이 좀 더 남는 편이었다. 주세페 핀치 지휘의 코심은 상당히 안정적이고 무난한 반주였지만 너무 무난한 게 문제였다. 물론 이전의 국오가 섭외한 한국 지휘자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반주였지만 카타르시스와는 거리가 먼 연주였다. 예컨데 팔리아치에서 합창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트럼펫의 선율을 과도하게 억제시켰고 2막 극중극 시작전 합창의 마무리도 좀 더 과장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가장 큰 아쉬움은 두 작품의 피날레에서 남았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는 결국 살인이고 이 때 터져나오는 파를라토의 대화체 대사와 비명이다. 투리두가 죽었다고 소리치는 장면, 카니오가 실비오를 찔러죽이기 전에 하는 대사, 조르제타가 루이지의 시신을 보고 지르는 비명이 바로 그 예시다. 이 장면은 소름이 끼쳐야만 한다. 음악의 흐름으로 만들어지던 오페라에 음악이 아닌 현실이 튀어나와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카니오의 파를라토는 물론 la commedia è finita 도 너무나 쉽게 끝나버렸고, 조르제타의 비명은 비명이 아니라 그냥 고음 발성이었다. 연극적이지 못하니 음악적이지도 못했다. 팔리아치는 그나마 무난한 편이었지만 외투는 조르제타의 비명 아닌 비명과 핀치의 노잼 지휘로 어떤 카타르시스도 주지 못하고 황급히 끝나버렸다.



가수들 역시 아쉬웠다. 임세경은 멜리가 나오는 가면무도회에서 한 번 본 적이 있고 그 때 리뷰는 블로그에도 옮겨놨다. 요약하면 성량 엄청 크고 저음이 인상적인데 비브라토가 크고 발음이 뭉게진다는 평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리아가 아니라 흘러가는 노래가 더 많은 오늘 공연에서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았다. 당시에 멜리 옆에 있어서 발음이 티가 많이 났던 것에 비하면 오늘은 훨씬 나았지만, 그럼에도 노래가 어색한 부분이 종종 있었다. 여전히 비브라토가 심했고, 가사와 상황에 맞는 발성을 한다기보단 대부분의 파트를 자신이 잘 내는 발성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이었다. 전 성악 한번 배운 적 없으니 가수 본인이나 팬 분들은 그냥 성알못이네 ㅉㅉ 하고 지나가시면 됩니다. 템포도 엇나갈 때가 가끔 있었는데, 지휘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고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렬하게 쏘아붙이는 저음은 인상적이지만 그걸 아직 완벽하게 컨트롤 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상황에 맞게 목소리가 바뀌는 게 아니라, 그냥 노래 음역 따라서 의도치 않게 바뀐다고 해야하나. 한 프레이즈에서 낮은 음만 갑자기 튄다건 하는 부분은 아쉬웠다. 성량과 고음 등이 워낙 탁월한 가수라 좀 더 세련되지기만 하면 좋을 텐데 아직은 아쉬움이 많다. 


칼 태너는 상황이 심각했다. 처음부터 좀 불안하긴 했지만 마지막 퇴장 하기 전 a venti tre ore! 에서 모든걸 쏟아붓어 꽤 괜찮은 모습을 보이나 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호객 대사에 모든 걸 쏟아부은 칼 태너는 그후 본게임에서 거짓말 처럼….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아주 답답하고 안 나오는 걸 겨우 짜내는 듯 불편해보였다. 덕분에 카니오가 깽판치는 마지막 장면은 노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Recitar에 끊임없이 나오는 혀트릴 r을 단 한번도 들을 수 없었다. 를를르르르레치타르와 르를리디가 간지인거늘! 인터미션 20분 쉰다고 맛 간 목소리가 돌아올리는 없고 역시나 소리가 제대로 안 나왔다. 


토니오 역의 박정민은 조연을 맡거나 민간오페라단의 작은 공연 정도에서 주역을 맡으면 상당히 괜찮은 가수다. 셰니에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었다. 리골레토를 많이해서인지 절름발이 흉내도 잘 내더라. 프롤로고는 무난하다 싶었는데 네다와의 장면에서 괴물 같은 토니오의 모습이 아쉬웠다.


오히려 실비오 역의 서동희가 의외로 괜찮은 노래를 들려줬다. 베페-틴카-노래팔이 역의 민현기도 무난하게 잘 해줬다. 


미켈레 역의 최웅조는 무난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는데 연극적으로 가사를 곱씹으며 흡입력을 만들어주는 경지까진 아니었다. 프루골라 역 백재은은 비중에 비해 실력이 가장 아쉬운 편이었고 노래 스타일도 역할에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았다. 

합창단은 의외로 잘해줬다. 의외로. 팔리아치 합창이 쉽지 않다는 걸 생각했을 때 나름 잘해줬다.


총평: 컨셉은 그럴싸하나 컨셉 전달력이 부족한 연출. 개폭망 롬줄에 비하면 낫지만 여전히 아쉬운 반주, 이름값에 비해 아쉬운 가수.


여담: 누가 말하길 외래어 표기법에 신경쓰는 인간은 할 짓 없고 비생산적이라던데 내가 딱 그렇다. 인물 표기법이 맘에 안 든다. 넷다, 조르젯타, 벱페. 이탈리아어 중복자음은 nn과 mm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쓰는 게 원칙이다. 저걸 적용 안 하면 옛날 사람들이 쓰던 롯시니, 리골렛토 같은 표기가 되고 푸치니도 풋치니가 되고 팔리아치는 팔리앗치가 된다. Beppe가 벱페면 Giuseppe는 주셉페여야 하는데 주세페 핀치라고 써놨더만. Nedda는 넷다고 Taddeo는 타데오면 뭐 어쩌자는 건지. 짧게 소리가 나는 거랑 받침이 있는 거랑은 다르다. 물론 Nedda에서 e가 짧으므로 네다 보다는 넷다가 좀더 발음이 비슷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건 단모음 장모음 구별 표기법이 없는 한글 잘못이지. 



여담2: 국립오페라단 깔 일이 한두개이겠냐만, 그렇게 많은 직원을 두고 홍보를 오알못 오페라 캐스터들에게 맡겨놓는 작태는 한심하기 그지 없다. 아를레키노를 할리퀸이라고 적어두질 않나, 레온카발로를 Cavallo, Leon으로 만들어놓질 않나. 오페라 캐스터 애들은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걸 직원이 감수도 안 하면 안 되잖아.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