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떠오르는 지휘자인 프랑수아자비에 로트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로트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진 않았다. 몇번 이름은 얼핏 들은 것 같지만 일본 쪽이었나, 떠오르는 젊은 지휘자 순위를 매겼을 때 높은 순위에 든 것을 보고 실력이 남다른 지휘자인가보다 했다.


로트가 젊은 지휘자라고?? 놀라는 분들이 있겠지만 젊다의 기준이 50세 미만이었던 것 같다.

1971년생 로트 

1972년생 쿠렌치스.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넓은 레퍼토리를 시대악기 단체로 연주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두 지휘자. 놀랍지만 한 살 차이입니다. 심지어 로트는 11월 생이고 쿠렌치스는 2월 생이라 몇달 차이도 안남ㅋㅋㅋㅋㅋ 쿠렌치스 처럼 록스타 마인드로 살면 세월도 피해갈 수 있나....


로트는 시대연주 단체인 레 시에클(Les Siècles, 영어로 옮기면 the centuries. 세기를 넘나드는 레퍼토리를 표방한 걸까)을 창단하여 여러 녹음을 남겼다. 바덴바덴 SWR 오케스트라와 슈트라우스 교향시를 녹음한 것 역시 주요 음반으로 꼽힌다.



공연은 베베른의 파사칼리아로 시작했다. 첫 피치카토가 좀 불안했는데 그려려니 하면서 들었다. 각각의 변주에서 목관악기의 기량이 충분히 잘 드러났고 금관의 깔끔하면서도 뻗어나가는 소리는 곡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예상했던 대로 빌데 프랑의 협연보다 로트의 반주가 더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베바협이 즈나이더와 파파노의 런던심포니 공연이었는데 이 공연과 협연자와 지휘자 모두 크게 상반되는 스타일이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처럼 기교적으로 화려한 곡도 아니며 장대한 드라마라고 할 것이 별로 없는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가. 즈나이더는 이 작품을 기교적이며 화려하게 만드는 데 애썼고 프랑은 반대로 곡의 특징을 그대로 표현하는 해석을 선보였다. 프레이즈의 정점에 해당하는 부분을 대체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처리하며 전체적인 프레이징이 여유롭게 들리게 했다. 즈나이더는 반대로 그런 부분에서 강한 포인트를 주며 역동적인 느낌을 넣으려고 애썼다. 즈나이더의 연주를 듣고 나선 베바협이 이렇게 기교적인 작품이었나 놀랐다면 프랑의 연주를 들으면 역시 베바협은 단아한 작품이구나라는 인상을 준다. 프랑이 이 작품을 모나리자의 미소에 비유한 것 역시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라할 수 있다. 이 해석은 연주 전반에 나타난 것은 물론 카덴차 선택에서도 드러났다. 1악장에서 일반적인 크라이슬러 카덴차인가 싶더니 정말 기교 한번 보여주지 않고 트릴로 넘어갔다. 거의 '카덴차 시작했다~ 카덴차 끝났다~' 수준. 베바협을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랑의 해석이 매력적으로 들렸겠지만 베바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싫을 법한 해석이었다. 그렇다고 또 기교적으로 완벽한 연주였냐 하면 일단 첫시작 옥타브부터 망했으니...


반면 로트의 반주는 파파노의 근육질 베토벤의 피로감을 싹 씻겨주는 연주였다. 단순히 비브라토를 절제하고 내추럴 트럼펫을 썼다는 절충주의 연주 특유의 음색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로트가 가져가는 아티큘레이션 역시 특이했는데, 1악장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네 음 모티프를 그때 그때 다르게 연주했다. 대체로 시대연주 스타일이 아티큘레이션을 짧게 가져가는 게 보통이지만 로트는 오히려 어떤 부분에선 거의 레가토에 가깝게 꾹꾹 누른 테누토를 보여주며 의외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팀파니를 화성음에 구애받지 않고 강렬하게 사용한 것은 일반적인 절충주의 연주에서도 쉽게 듣기 힘든 독특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 보여준 모습도 상당히 독특했다. 가디너의 브람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로트의 브람스 역시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도입부에서 1&2 호른과 3&4 호른이 사이좋게 번갈아가면서 삑사리를 낸 건 아쉬웠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잘 설계된 연주였다. 로트의 스타일 중 가장 독특했던 부분은 성부 간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내는가 이다. 로트는 수많은 성부가 개별적으로 잘 들리도록 여러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줬다. 일단 전반적으로 어택만 강조하는 아티큘레이션을 사용해서 리듬파트가 상당히 또렷하게 들림에도 선율 파트를 덮어버리지 않도록 했다. 또한 현악기가 선율을 연주하고 관악기가 코드를 부는 파트에서 코드를 단순하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나믹의 변화를 뚜렷하게 줘서 관악기가 연주하는 코드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움직이는 전경이 포인트이긴 하지만 원경 역시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며 시선을 뺏어가는 느낌이었다. 여러가지 소리가 섞인 상황에서 소리에서 음고나 음량에 변화가 있냐 없냐는 사람이 특정 소리를 얼마나 잘 인지할 수 있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각각의 파트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소리가 상당히 입체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었는데 1악장이나 2악장에서 특히나 이런 매력들이 잘 표현되었다. 반면 4악장은 대체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듯한 앙상블, 그리고 금관이 모든 걸 덮어버리면서 진부한 스타일이 돼버린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앵콜로는 말러 5번 아다지에토를 연주했는데, 무대에 하프가 놓여져있던 이유를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다지에토 같은 작품을 공연이 끝나고 앵콜로 연주하는 데는 상당히 피곤한 일일텐데도 집중력이 흐뜨러진다는 느낌이 없는 훌륭한 연주였다. 투어 프로그램에 말5가 껴있었기에 가능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다.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만큼 특별한 사운드와 해석을 들려준 연주였다. 앞으로도 로트의 활동이 아주 기대된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