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아닌 녹음 리뷰. 

리카르도 잔도나이Riccardo Zandonai를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이름도 처음들어본 작곡가였다. 몇가지 공연 중에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작품. 다른 후보로는 코블렌츠에서 하는 마르슈너의 뱀파이어Vampyr 가 있었다. 이 작품도 만만치 않은 듣보력을 자랑하는데, 이 쪽은 그래도 유튭에 영상도 조금 있고 카프리치오에서 낸 스튜디오 레코딩도 있다. 

무려 카우프만이 캐스팅 된 녹음이다! 꽤나 이름값 있는 베이스 프란츠 흐발타도 등장하는 녹음이다. 녹음 연도는 아마 2000년인 듯. 이게 음반 캐스팅 아니라 주식이었다면 참 돈이 많이 됐을 텐데...


그런데 코블렌츠 까지 가기가 너무 멀고, 저 작품이 처음에 들을 때는 간지가 폭발하는데 결국 비슷한 음악이 계속 반복되길래 그냥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하는 잔도나이 공연으로 마음을 바꿨다. 


잔도나이는 1883년 출생 1944년 사망한 이탈리아 작곡가다. 위키에 따르면 마스카니의 애제자였다. 재밌는 일화가 소개돼있는데, 푸치니가 투란도트를 완성 못하고 죽어갈 때 마지막을 완성해줄 작곡가로 출판사 리코르디가 고려했던 후보 중 한명이었다. 푸치니 본인과 토스카니니 역시 잔도나이를 지지했나보다. 그런데 푸치니 아들놈이 잔도나이가 너무 유명했기에 자기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묻힐 수 있다며 거절하고 알파노로 결정한다. 결국 21세기에 와서 알파노는 '아 그 투란도트 완성한 사람?'으로 남고 잔도나이는 듣보잡이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다.


잔도나이는 다수의 오페라를 완성했는데 그 중에선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가 가장 유명한 듯 하다. 메트 레바인 지휘 도밍고 주연의 영상을 포함해 DVD도 두 개나 발매됐다. 줄리에타와 로메오는 그 다음 정도의 인기인 듯.


작품은 3막, 2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는 이탈리아 판 이야기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구노의 작품보다는 벨리니의 <카풀레키와 몬테키>와 비슷한 점도 있다. 하지만 결국 제목이 <줄리에타와 로메오>이기 때문에 둘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게 등장한다. 둘 사이를 가로막는 사람으론 줄리에타와 같은 집안 사람인 테발도가 나온다.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흔한 영어 리브레토 하나도 없다. 대신 임슬프에 보컬 스코어가 있길래 보컬 스코어를 봐가며 감상했다. 그간 공부해온 이탈리아어 실력과 음악의 분위기로 눈치를 살피며 두뇌 풀가동하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롬줄 내용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결국 로메오가 테발도를 찔러 죽이고 나중에 줄리에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뛰어가지만 또 타이밍이 엇갈리는 익숙한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다 연애타령 할 때 부르는 가사는 시대를 불문하고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익숙한 단어들만 등장한다. 




애플 뮤직에는 1955년 밀라노 녹음밖에 없지만 유튜브에는 1961년 볼로냐 공연도 있다. 이 쪽은 컷트가 됐는지 1시간 37분. 음질이나 연주 모두 볼로냐 쪽이 훨씬 낫다. 악보 보면서 듣기에는 컷이 없는게 편해서 55년 녹음을 들었지만, 이건 뭐 30년대 녹음 만도 못한 상태를 들려준다. 또한 줄리에타 역 가수가 너무 나이든 소리를 들려주고 잔도나이의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듣기가 너무 힘들다. 


포스트 베리스모 시대의 작곡가로 레스피기를 연상케하는 독특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모티프들이 있지만 바그너보다는 푸치니의 활용에 가깝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운 편이고, 몇몇 평론가들은 힌데미트의 분위기와도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1막과 3막의 듀엣은 상당히 긴 편인데, 오프스테이지의 합창을 함께 섞는 것도 특징이다. 

악보에는 아주 상세한 표시들이 들어있다. 대부분의 가사에 지문이 포함돼있고 악상 표시, 템포 변화 표시도 매우 자세한 편이다. 예를 들어 3막에 줄리에타가 로메오를 세 번 연달아 부르는 파트는 피아노, 포르테, 포르티시모로 변해가며 여기에 크레셴도 표시까지 따로 들어가있다. 잔도나이가 자기 음악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악보에 있는 지시를 효과적으로 소화하기만 해도 음악이 입체적으로 들릴 테다.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승마 장면이라고 옮길 수 있는 Cavalcata다. 줄리에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로메오가 말을 타고 달려가는 장면으로 3막 안에서 간주곡 역할을 한다. 

이 음악에서 이탈리아 파시즘 사회를 예견하는 듯 하다는 설명도 읽었다. 오페라가 전체적으로 노래로 꽉 차있기 때문에 이렇게 한 곡으로서 투티가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가 로메오가 절규한 뒤에 이 음악이 등장한다. 앞서 로메오의 절규였던 Giulietta mia!를 합창이 외치는 것도 포인트. 


가장 유명한 아리아라고 하면 로메오가 죽기 전에 줄리에타에게 부르는 "Giulietta, son io"가 있다. 카우프만이 베리스모 앨범에서 녹음한 적이 있다.

이 아리아에서도 오케스트라 반주와 화성의 진행이 익숙한 베리스모 작품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 3막에서 노래꾼이 로메오에게 줄리에타의 죽음을 알려주는 노래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다. 


중반까지만 해도 구린 연주와 녹음 때문에 작품에 애정이 안갔는데 3막에서는 여러모로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연 리뷰를 찾아봤더니 상당한 호평이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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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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