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지금 영국입니다. 1년 만에 다시 런던에 오게됐네요. 발표준비하랴 예습하랴 바빠서 며칠간 블로그에 글을 못 올렸습니다.  

앞으로 며칠간 공연 후기를 쓰게 되겠네요.



공연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니 거의 11시 반. 내일 학회는 9시부터 등록 시작이니 타임어택으로 써야할 것 같다.

런던에 다시 왔다. 외국에 나가면서 갔던 도시에 1년만에 오는 건 처음이다.


학회 일정이 잡히고 공연각을 열심히 쟀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6월달에 독일 한바퀴 돌고나서도 공연 목록을 보면 마음이 혹한다. 취리히에서 마테이와 브레슬릭이 오네긴을 올린다는 걸 보고 눈이 회까닥 돌아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었다. 그 때 고려했던 생각했던 일정이 금요일 암스테르담 DNO 운명의 힘, 토요일 카디프 WNO 호반시나, 일요일 취리히 오네긴이었다. 런던 - 파리 - 암스테르담 - 카디프 - 취리히로 5개국 수도 오페라 찍고 다닐 기세였음.


그래도 정신줄을 붙잡아 나름 가장 짧은 일정을 만들었다. 어차피 일찍 가봤자 시즌 시작전이라 프롬스 밖에 안한다. 로열 앨버트 홀은 별로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학회 하루 전날 빠듯하게 도착했다. 빠듯하게 도착하지만 당연히 공연은 봐야했다. 셰익스피어나 뮤지컬도 좀 고민했지만 늦게 도착할지도 몰라 적당히 늦어도 괜찮은 마술피리를 골랐다.

맥비커의 프로덕션은 오래도 살아남았다. 이제 탄탄한 스테디셀러라 적당히 불러도 표가 팔리나 보다. 캐스팅에 아는 이름이 한명 밖에 없었다. 오늘 공연이 시즌 프리미어여서인지 객석이 가득찼다.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본 오페라가 코민 지휘의 돈 조반니였고, 가장 최근에 본 공연이 예당 마술 피리였으니 여러모로 비교가 됐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생각해보다 만족스러웠다. 일단 이전에 본 ROH 두 공연보다는 퀄리티가 좋았다. 하나는 오페라고 하나는 발레였는데, 레오 후세인이 지휘한 에네스쿠 외디프는 생각보다 반주가 구렸다. 다음날 발레 공연은 오케스트라가 맛탱이가 갔나 싶을 정도로 구렸고. 지휘자 줄리아 존스Julia Jones는 영국의 여성 지휘자로 울름, 다름슈타트, 바젤 등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일했다. 서곡은 조금 무난했지만 전반적으로 아티큘레이션을 짧고 간결하게 통일한 것이 내 취향이었다. 가수와의 호흡도 좋고, 템포변화의 폭이 넓어 즐거운 부분이 많았다. 템포가 빨라지는 부분의 진행이 자연스러운 점도 노련미가 보였다. 대변인 장면에서도 다채로운 늬앙스를 보여주며 4분음표의 느낌을 다양하게 살려낸 것도 확실히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외에 막의 피날레나 타미노와 파미노가 시련을 통과하는 장면의 음악은 빠른 템포와 분명한 프레이징으로 처리했다. 종종 1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선율을 한 풀트만 연주하게 해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냈다. 내 자리에서 바이올린이 전혀보이지 않아 확실하진 않지만, 혼자 내는 소리는 아니었고 여러명이 내는 소리도 아닌게 2명 정도가 연주한 듯. 그 외에 파파게노의 종소리를 예쁜 첼레스타가 아니라 쇠소리가 섞인 악기로 연주한 것도 별미였다. 


가수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타미노는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라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냥저냥 무난하게 내준듯. 자라스트로와 파파게노는 무난함에서 조금 아쉬운 정도. 밤의 여왕은 사비느 드비에일이 맡았다. 밤의 여왕 아리아를 자주 부르기도 하고 대표작인 모차르트 앨범에서도 이 곡을 수록했다. 음반에서의 해석과 상당히 비슷했다. 그 콜로라투라 패시지에서 확실한 헤어핀을 보여주며 다이나믹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독어 네이티브가 아니고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운 점이 큰 단점이다. 노래 다 잘해놓고 Rachegötter를 외치는 순간 너무 깬다. 저렇게 예쁜 목소리로 복수의 신을 부르다니...

반면 파미나는 2막에서 꽤나 무서운 노래를 들려줬다. 2막의 자살쇼를 꽤나 그럴싸하게 만드는 변화였는데, 드라마티코의 향기가 꽤나 나왔다. 자기가 죽겠다고 하는 순간에 자살 못하면 자라스트로라도 죽일 기세더라. 거의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은 모습이었음. 

파파게노는... 당장 킨리사이드 데려와라ㅜㅜ 굳이 킨리가 아니라 최근에 본 우경식 씨와 비교해도 아쉬운 가수였다. 목소리나 연기나 가벼운 파파게노였다. 물론 사람들을 터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정도 못하면 파파게노 접어야죠. 이게 불쌍한 게, 킨리사이드가 처음 이 프로덕션의 파파게노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그 뒤에 바리톤들이 죄다 자기한테 안 맞는 몸개그에 도전해야한다는 거다. 그거 연출이 시킨게 아니라 킨리사이드 지가 한걸 거라는 심증만 있었는데 프로그램 노트에 나와있더라. 이번 파파게노를 맡은 로드릭 윌리엄스가 "이거 다 킨리사이드 때문임ㅗ 파파게노 몸쓰는 거 거의다 킨리가 맘대로 한거임. 그놈은 몸이 인도 고무로 돼있나봐. 무슨 바닥에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튀어올라와"라고 말해놨다. 1막에서 새잡는 몸개그하려고 가수들 무릎 보호대 한다고... 

제일 안습인 게 2막에서 파파파파 이중창 부르는 부분. 거기서 킨리사이드가 한손으로 점프하는 장면이 진짜 인상깊은데, 쟤가 저렇게 하고 나서 그 뒤로 파파게노 맡은 바리톤들이 다 그걸 따라했어야 했나보다. 근데 보통 가수가 공연 때 전력질주해서 한손으로 뜀틀 넘듯이 넘는 게 쉽겠나. 적당히 뛰어서 두손으로 짚고 살짝 뛰어올라 무릎으로 겨우 착지하고 서서히 미끄러져서 소파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아니 그렇게 어색하게 할 거면 하지마ㅋㅋㅋㅋㅋ 아니 왜 뚫린 쪽 놨두고 굳이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가니ㅠㅠ



재연출하면서 바꾼 장면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시야제한석이라 연출읜 거의 못 봤다. 처음에 앉았을 때는 무대 7~80% 정도는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무대 면적 중 절반은 일반관객에게 사각인 배경이었다. 실제 무대의 50%도 채 안 보인듯. 무대에 여러명 있을 때 한명이라도 안보이면 뭔가 안보이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체감상 가수를 제대로 본 시간은 20~30% 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래도 소리는 아주 좋았다. 말굽형 극장 사이드가 은근히 음향이 개꿀인 것 같다. 가수들 목소리와 오케스트라가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좌석은 13파운드였는데 프로그램 북이 7파운드였다. 영국답게 프로그램 노트 퀄리티가 매우 훌륭하다. 거기다 독일에서 산 프로그램 노트랑 달리 읽을 수도 있다!!!! 아무 할인도 없이 저런 소리 들을 수 있는 좌석이 13파운드면 꿀 맞는듯. 돈 아낄려고 한 건데, 근데 급하게 시간맞춰 대충 들어간 라멘 집에서 라멘이랑 커피 하나 시키니 20유로 나왔다ㅜㅜ


여행 일정에서 무난한 스타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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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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