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공연 일정을 찾아보니까 오전 11시에 봄제를 하더라. 티켓 오픈이 계속 안 열리길래 뭔가 했는데 무료공연. 알고보니 라프필 80주년 기념으로 그런 것 같다. 


소개에 나온대로 해설이 있는 음악회였다. 음악 해설가로 유명한 장프랑수아 지겔이 해설하는 "오케스트라의 열쇠" 시리즈의 일환이었다. 사실 전혀 모르고 갔는데, 갔다와서 후기 쓰려고 찾아보니까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정명훈 때부터 라디오 프랑스와 이 시리즈를 진행했다고 한다. 피아노 전공이라 피아노도 직접 치고 오케스트라가 파트별로 시연도 하면서 연주한다. 보면서 저렇게 시시콜콜 시켜먹으면 연주자들이 귀찮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워낙 인기있는 해설가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 대단하다보니 지휘자나 오케스트라나 같이 잘 맞춰주는 것 같다.

 문제는 당연히 불어로 한다는 거다. 하핳하. 불어 공부 나름 하고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밖에 없다. 대충 나온 내용을 되짚어보면 초연 때 이야기, 각 장면에 대한 내용, 복조성 화음, 불규칙 리듬, 네 음만을 이용한 멜로디, 강세변화를 사용한 선율 변화, 복잡한 투티에서 각각의 파트군이 맡은 역할 등 아주 다채롭고 깊이있는 내용이었다. 대본을 따로 인쇄한 것 같지만 대부분 전혀 보지 않고 청중을 바라보며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선율의 강세만 바꿔서 새롭게 변주한다는 내용을 설명할 때는 유명한 가요 선율 같은 걸로 직접 예시를 보여주더라. 전체 내용은 별로 이해 못 했지만 아주 수준 높은 해설가라는 건 알 수 있었다.

30분 정도 설명하고 1부를 쭉 연주하고, 다시 30분간 2부를 설명하고 2부를 연주했다. 1, 2부 연주는 한번에 감상했으면 좀더 좋았겠지만 그렇다면 1시간 연속으로 해설해야할 테니 이렇게 한 것 같더라. 


아침 11시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 안된다는 걸 함부르크에서 배웠다. 이번에도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웬걸, 엄청 잘 하더라. 해설 중간중간 계속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직접 연주하며 시범을 보여주는데 다들 아주 성실히, 그리고 깔끔하게 잘 해내서 놀랬다.


미코 프랑크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공연은 대전에서도 봤었다. 그 때도 역시 잘하네 싶었지만, 오늘 보니 탁월한 음색에 감탄이 나왔다. 홀의 음향도 울림이 너무 많지 않아 전반적으로 모두 또렷하게 잘 들리면서 건조하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건 목관 파트였는데, 봄제에서 목관을 투티에서까지 이렇게 또렷하게 듣는 건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곡이지만, 음색이 이렇게 새롭게 들릴 수 있다곤 상상을 못 했다.

미코 프랑크 입장할 때 틸레만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미코 프랑크의 해석은 극적인 과장은 없었지만 투티에서 비교적 빠른 템포로 진행해 날렵한 모습을 보여줬다. 금관과 타악기의 소리가 너무 크지 않도록 조절하며 그 자리를 현악기와 관악기로 채운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막힘없이 easy-going 하는 스타일에 대해서 아쉬움도 조금 있었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탁월하게 제어해내는 능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티큘레이션을 맞추는 것도 너무 짧거나 길지 않은 중간길이에서 함께 통일하는 걸 보고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독일식 파곳 대신 프랑스 바순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콘트라바순도 콘트라파곳이랑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 사진은 트럼펫 퍼스트를 맡은 알렉상드르 바티. 난간 때문에 초점이..... 앞에 앉아있는 바순의 모습이 파곳과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진다. 현악기의 날카로운 앙상블도 좋았지만 목관 앙상블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돋보였다.

아침 11시에 오케스트라 상태가 메롱인 건 그냥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의 문제였나보다. 요새 올라오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내한 공연 후기에서도 오케 수준이 지적이 많이되는데, 오페라 오케스트라들의 수준이 유명한 콘서트 오케스트라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다. 소화해야하는 레퍼토리가 달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기본적인 기량의 문제일까. 영국에서도 런던 심포니의 공연 퀄이나 런던 필하모닉의 글라인드본 반주에 비했을 때 로열 오페라의 반주가 아쉬운 순간이 많았다. 


해설이나 연주나 이런 퀄리티를 편하게 무료로 들을 수 있다니 부럽다. 특히나 이런 해설 방식은 시스템적으로 도입해볼 수 있는 거라기보단 특출난 개인의 능력에 의지하는 거기 때문에 더 부러웠다. 



메종 드 라디오는 객석 끝과 무대의 길이가 극단적으로 짧은 특이한 홀이다.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음향이 안좋을 수가 없는 구조라고 해야하나.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울림이 내 취향에 딱 맞았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