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제리 미술관

2017 유럽 2017. 9. 18. 08:02

아침 공연을 보고나선 오랑제리 미술관에 다녀왔다. 시간이 애매해서 오르세나 루브르는 못 볼 거라 선택했다. 미술관 근처에 식당이 있으면 점심을 먹어야지 했지만 그랑 팔레에서부터 쭉 걸어갔는데 안 나오더라. 식당에 갈 운명이 아닌가보다. 오랑제리 미술관 입구에서 사인을 잘못읽어 말 그대로 건물 한바퀴를 돌았다. 비까지 내려서 쫄딱 맞으며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을 되새겼다. 박물관 매점에서 햄치즈 샌드위치를 사서 먹는데, 파리는 무슨 박물관 샌드위치도 맛있더라. 그냥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어둔 샌드위치를 꺼내 준건데 빵은 쫄깃하고 치즈랑 햄도 진짜 맛났다.


모네 수련을 보면 얼마나 걸릴지 감이 안와서 지하에 있는 쥘리암 컬렉션부터 봤다. 르누아르의 그 유명한 피아노 치는 아이 그림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별로 안 넓어 보이길래 천천히 느긋한 템포로 자세히 관찰하며 감상했다. 그림 10여점을 찬찬히 관찰하니 1890년대 르누아르와 1910년 정도의 르누아르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겠더라. 그렇게 보고나니 한 40분 쯤이 지났는데, 벽을 넘어가니 내가 본 그림의 10 배 정도가 남아있었다. 이 반전은 뭐죠... 세잔의 붓터치가 신기해서 한참 쳐다보니 남은 것들은 정말 볼 시간이 없더라.



모네의 수련 연작. 사진으로 볼 때는 그 공간이 무슨 우주선 마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직접 가보니 사람들 가득 차있어서 그런 환상은 없더라. 자연광으로 조명이 돼있어 구름이 끼면 전시장이 어두워진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어떻게 감상해야할지 감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림을 아주 천천히 뜯어보며 붓 터치의 길이는 어떻게 되는지, 꽃을 그렸다면 어떤 꽃들이 몇송이나 있는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자세로 서있는지, 손을 포개고 있다면 어느 손이 위에 올라와있는지, 피아노의 융은 어떻게 덮여있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 사용된 물감의 색이 어떻게 다른지 등등 내눈으로 찾을 수 있는 건 모두 뜯어본다. 멀리서 봤을 때 색이 어떻게 합쳐져 보이고, 가까이서 보았을 때 유화 물감이 어떻게 떡져있는지 등을 천천히 발견해나간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보아도 모두 뜯어볼 수 없을 테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가 주는 '인상'이었다. 가장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계측하기 어려운 대상이기에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 혼란을 겪었다. 


미술관에서 작품 사진 찍어봤자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다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놨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 자체를 찍는 욕심은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모네 그림을 보고는 정말 열심히 찍었다. 내 능력으로 감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너무 막막해서 그랬던 것 같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