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페라 플란데런Opera Vlaanderen (플랜더스 오페라, 구 Vlaamse Opera)

벨기에에는 큰 오페라 극장이 세 개가 있다. 브뤼셀에 있는 라 모네 왕립 극장, 리에주에 있는 왈롱 로열 오페라, 그리고 안트베르펜(앤트워프)과 헨트를 중심으로 한 오페라 플란데런Opera Vlaanderen 이다. 네덜란드에 제대로 된 상설 오페라단이 DNO 뿐인 걸 감안하면 벨기에에는 수준있는 상설 오페라단이 꽤 많은 편이다. 오페라 플란데런은 같은 프로덕션을 헨트와 안트베르펜에서 각각 공연한다. 자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있고 꽤 수준 높은 캐스팅을 자랑한다. 간혹 글라인드본 투어 처럼 오페라단이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는 경우는 있지만 오페라 플란데런은 집으로 쓰는 자체 극장이 두 개인 셈이다. 같은 프로덕션을 두 곳에 걸쳐 공연하다보니 프로덕션 당 공연 회수가 증가하고 자연스레 공연 퀄리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 듯 <헬리아네의 기적>은 유럽에서도 쉽게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다. 일단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필요하며 여기에 아주 뛰어난 바그너 가수들까지 갖춰야한다. 이런 작품을 올리는 건 오페라단 입장에서 상당한 도박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 플란더렌에 큰 조사는 안 했었지만, 공연장에 도착해 올해의 시즌 프로그램을 보고 이 극장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발레를 빼면 올 시즌 상영작이 헬리아네의 기적, 도니체티 알바 공작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의 플랜더스 판 원작으로 미완성작), 팔스타프,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파르지팔, 티토의 자비, 도박사다. 분명 베르디, 바그너, 모차르트, 도니체티가 들어있긴 한데 제일 도전적인 작품들만 골라논 것 같은 느낌. 프로그램 정할 때 최소 듣보력 같은 걸 따지나... 회의 중에 "이번 시즌엔 제발 라 보엠 하면 안 될까요?"하면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볼 듯.


이런 극장이니 헬리아네의 기적을 올리는 게 이상해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오페라 플란데런이 헬리아네의 기적을 상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 프로그램 북이 없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꽤 오래 전에도 한번 헬리아네를 상연한 적이 있다. 아마 헬리아네를 두번 이상 상연한 극장을 찾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벨기에 극장이 코른골트에 특별한 애정이나 인연이 있나 생각해보니, 코른골트의 대표작 <죽음의 도시>가 있다. '죽음의 도시'는 바로 같은 플랜더스 지방인 브뤼헤(Brugge)다. 벨기에 소설가 조르주 로덴바흐(Georges Rodenbach)의 소설 <죽음의 브뤼헤>가 원작이다. 이날 헨트를 가며 브뤼헤로 가는 할아버지를 만난 것도 끼워맞추고 싶은 우연이다.


이야기 꺼낸 김에 이 지역의 음악이나 오페라 관련 문화가 범상치 않다는 이야기를 더 해보자. 일단 헨트는 메테를링크의 고향이며 활동지였다. 파리에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본 다음날 메테를링크의 고향에 방문한다니 참 신기한 우연이다. 최근에 또 헨트 출신인을 알게 됐는데 바로 파리 오페라와 테아트로 레알, 잘츠부르크 축제의 감독을 맡았던 제라르 모티에다. 그 외에 '콜레기움 보칼레 헨트'라는 단체명에서 알 수 있듯이 헤레베헤 역시 헨트 출신이며 헨트에서 주로 활동했다. 르네 야콥스 역시 헨트 출신이다. 안트베르펜으로 확장하면 벨기에 지휘자 아웃풋 갑인 앙드레 클뤼탕스가 있고 요새 시대연주로 핫한 요스 판 Immerseel도 있다. 간단하게 왈롱주 리에주와 브뤼셀도 찾아봤지만 플란더렌 지방이 20세기 태생 지휘자가 압도적이다.


음반이나 영상물도 몇개 남겼다. 그 레퍼토리도 범상치 않은데, 로시니 <세미라미데>, 로시니 <오텔로>, 도니체티 <알바 공작>, 카발리 <일 자소네>(이아손), 생상스 <삼손과 달릴라>다. '우린 듣보만 판다'가 이 곳의 모토인가 보다.


2. 헬리아네의 기적

<헬리아네의 기적>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링크한 글에서 설명한 대로 이 작품은 낭만주의의 황혼을 담고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막이 시작하면 이방인이 감옥에 갇혀있다. 이방인은 행복이 없는 이 땅에 행복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간수가 이방인이 왜 투옥됐는지를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통치자는 감옥을 찾아와 난 힘든데 넌 왜 행복 같은 걸 이야기하냐며 내일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한다. 통치자가 퇴장한 후 헬리아네가 감옥으로 찾아온다. 헬리아네에게 반한 이방인은 연애백단의 멘트를 자연스럽게 쏟아내며 헬리아네 역시 이방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방인은 헬리아네에게 머리카락을 보여달라, 발을 보여달라 하더니 기어이 알몸까지 보여달라고 한다. 헬리아네는 마지못해 수락한다 (옷을 벗는 순간 하늘에서 어린이 합창이 "사랑하는 자들 신성하다"라고 노래한다). 헬리아네가 퇴장하고 나서 통치자가 다시 등장해 이방인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자기 아내인 헬리아네를 유혹하게 도와주면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그 계획이란 게 참 황당한데, 어두운 밤에 통치자인 척 하고 헬리아네에게 가서 밀어를 속삭여 마음을 빼앗아 헬리아네가 자신의 말에 복종하게 도와달라는 거다. 그럼 너 역시 헬리아네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나체를 보게 될 것이라 제안한다. 통치자님 소라넷 하세요??  이 더러운 계획을 문 밖에서 듣던 헬리아네는 방으로 들어오는데, 문제는 알몸인 채로 등장한다는 거다. 이상한 걸 눈치챈 통치자는 둘을 체포하라고 한다. 

2막 통치자는 헬리아네를 간통죄로 재판에 세운다. 헬리아네는 자신이 그를 찾아갔고 그의 요구에 따라 옷을 벗었다고 말한다 (이 때 부르는 노래가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Ich ging zu ihm). 하지만 그를 사랑한 적은 없다고 잡아뗀다. 통치자는 이방인을 데려와 실토하게 만들지만, 이방인은 헬리아네와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다. 둘만 남은 이방인은 헬리아네를 살리기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칼로 자결한다. 이방인을 추종했던 백성들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통치자는 그들의 분노를 달래는 한 편 헬리아네의 죄를 어떻게든 묻고자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다. 이방인은 헬리아네를 위해 죽었고, 헬리아네는 순결한 사람이니 헬리아네가 신의 힘을 빌어 이방인을 살려내는 기적을 행할 것이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공표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헬리아네는 결국 이를 수락한다.

3막. 사람들은 헬리아네가 기적을 일으키려한다는 것을 비웃는다. 이때 1막에 나왔던 간수가 등장해 헬리아네가 자신의 아이의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을 행했다고 말한다 (이 때 합창단이 갑자기 태세전환해서 부르는 찬양의 신성한 노래가 압권이다). 헬리아네는 대중 앞에서 나타나 기적을 행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결국  못 하겠다며 자신은 이방인을 사랑했었다고 실토한다. 민중들은 분노하여 헬리아네를 화형대에 세우려 한다. 헬리아네를 진짜 죽게 할 생각이 없었던 통치자는 헬리아네를 다가가 자신에게 돌아오면 저들을 멈추겠다고 이야기한다. 헬리아네는 단칼에 거절한다. 통치자는 결국 헬리아네를 살리길 포기하고 사람들은 화형대를 세우려한다. 이 순간, 죽은 자가 돌아온다. 헬리아네와 이방인은 서로를 바라본다. 헬리아네는 이방인을 삶이든 죽음이든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눈치리스 통치자는 "그럼 죽어!"라고 헬리아네를 찌른다. 헬리아네와 이방인은 함께 천국으로 나아간다.


몇가지 연상되는 작품들을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시마노프스키의 <로저 왕>이다. 로저 왕 초연이 1926년, 헬리아네의 기적 초연이 1927년이다. 무명의 목동이 디오니소스적 가치로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죄로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 그리고 왕비가 그 이방인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점, 종교적인 기적이 등장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와도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권력자와의 결혼 생활에서 즐거움을 잃은 여자, 그 여자와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남자, 불륜 행위와 발각, 자신의 부인을 처벌하는 남편. 재밌는 점은 두 오페라에서 모두 남편이 부인에게 진실(La vérité, Die Wahrheit)을 말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본인 정신건강에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꼭 "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라는 말을 부인에게 직접 듣고 싶은가 보다. 두 여주인공의 이름 Melisande와 Heliane의 모음이 정확히 일치하는데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묘한 공통점이다. 기독교의 기적이 일어나는 부분은 내용이나 음악에서 피츠너의 <팔레스트리나>가 떠올랐다. 하늘에서 부르는 합창이 오페라의 시작을 맡고 중요한 부분마다 등장하여 하늘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한다. 3막의 합창은 음악적인 면에서 투란도트의 1막 합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코른골트의 오페라는 어느 오페라들보다도 같은 동기의 반복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듣다보면 나왔던 음형이 계속 등장한다. 이렇게 단순한 패턴을 울궈먹으면서 2시간 40분 정도의 오페라를 만들어내는 것도 능력이다. 음악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인다. 한템포 쉬어가는 서정적인 파트에서는 달콤한 낭만성이나 거룩한 느낌이 가득넘쳐 듣는 사람의 감정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바그너로 치면 반지의 구원(Redemption) 모티프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 같은 낭만성이 이 작품에선 내내 흐른다. 코른골트가 사용하는 화성은 종종 조성의 극단까지 간다. 하지만 대체로 빠르고 리드미컬한 부분에서 그런 복잡한 화성을 사용하고 서정적인 장면에서는 불안한 화성을 기피한다. 때문에 강렬한 혼돈과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내는 한편 그런 암울한 시대에 꽃피는 이방인과 헬리아네의 사랑을 숭고할 만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다. 자주 반복되는 주요 라이트모티프와 독특한 낭만성 덕에  <헬리아네의 기적>은 처음 접했을 때 매력을 느낄 만한 포인트가 다양한 작품이다.

누군가 분명히 약점으로 꼽을 만한 것들도 있다. 코른골트 오페라의 음악은 나쁘게 말하자면 신파적인 면이 있다. 과도하게 아름답다고 해야하나. <죽음의 도시>를 예로 들자면 작곡가의 인생곡인 Glück das mir verblieb의 아름다움을 오페라 마지막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 처럼 활용한다. 여주의 죽음 장면에서 선율 회상이 쓰이는 건 라트라비아타나 라보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죽음의 도시> 만큼 길게 활용되지는 않는다. 약간 치트키 같다고 해야할까. 코른골트는 바그너 보다 선율다운 선율을 훨씬 더 자주 사용하고 슈트라우스에 비해서도 마찬가지다. 슈트라우스가 말과 음악의 조화를 고려할 때 코른골트는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의 아름다운 울림에만 신경썼다고 비약할 수도 있을 테다. 슈트라우스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선율을 잠깐 보여줬다가도 절대 오래 들려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헬리아네의 기적>에서 3막 간수 장면은 짧은 음형을 장면 내내 울궈먹으며 반복해 발전시킨다. 슈트라우스가 대사 한줄 한줄에 음악이 반응한다면 코른골트는 긴 호흡의 선율이 이미 존재하고 거기에 가사가 붙는 느낌이다. 오로지 모티브의 반복적인 발전과 음악의 진행으로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겠다는 생각 같다. 

때문에 이 작품의 약점으로 꼽히는 리브레토 역시 코른골트에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다. 깊게 고민하지 않고 던져보자면, 코른골트가 호프만스탈의 리브레토에 음악을 붙일 수 있었을까 한다면 아니라고 본다. <헬리아네의 기적> 같은 작품에 호프만스탈과 슈트라우스가 보여주는 종류의 '고민'이나 불안이 없다. 코른골트가 고민없이 이 작품을 썼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작품을 대하면 이 작품이 다른 독일 후기낭만 오페라와 달리 이탈리아 오페라 마냥 물 흘러가듯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장면은 왜 들어갔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거의 없이 이야기 진행이 중심 플롯에 충실하다. 어려운 해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어째서 이 기적이 일어났는지 여러가지 해석을 고민할 필요 없이 천사의 소리가 말해준다. "사랑을 위해 죽은자 다시 일어나리".


하지만 이런 것들이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기하는 만큼 새로 생기는 게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마치 푸치니와 슈트라우스의 결합을 보는 것 같다. 독일적인 문법으로 만들어낸 이탈리아 오페라, 혹은 푸치니 오페라라고 해야할까. 물론 이야기의 소재 면에서 푸치니와 닮은 점은 없지만 관객으로서 느끼는 오페라의 흐름이 닮아있다. 음악이 어느 순간에도 과도하게 진지하거나 불안해지거나 어려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오페라 같고, 단순한 음형이 한 장면 내내 혹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발전하는 것은 명백히 독일적인 특성이다. 이런 독일 후기낭만의 어법으로 관객들이 별다른 고뇌없이 감상할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코른골트는 독특한 입지를 확보한다.


전곡반은 딱 하나 있다. 오케스트라 파트의 난이도가 워낙 어려워 레코딩의 반주는 완벽하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캐스팅 역시 전반적으로 나의 취향에 쏘옥 맞는 편은 아니다. 물론 이보다 더 나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작품의 전곡반이 하나 뿐이라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음반이다.

유튜브에 전곡 공연영상이 있다. 지휘자에게 준 출연자용 녹화본을 직접 올린듯. 아마도 2010년 체코 브르노 극장 공연인 듯 하다. 브르노에서 왜 이런 작품에 도전했는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코른골트 고향이 브르노다. 극장의 이름에 비해 오케스트라 반주를 비롯해 공연 퀄리티는 꽤 뽑아주지만 역시 캐스팅이나 녹음 상태가 성에 차지 않는다. 연출도 좀 구리다. 그래도 중간에 영상과 음향이 깨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비정발 영상물 치고 훌륭한 퀄리티라 충분히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번역은 커녕 원문 리브레토도 못 찾았다. 다행히 IMSLP에 보컬 스코어가 있다. 피아노 리덕션이기에 망정이지 풀 스코어였으면 어느 정도 길이였을지 감이 안 온다. 시놉시스를 참고하니 독어 가사를 보며 적당히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듣다보니 리브레토는 필수인 것 같았다. 보컬 스코어에 나온 가사를 보며 일일이 번역도 해보고, 저 유튭 영상에 자막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당연히 내가 그런 시간이 날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CD를 사서 딸린 독어-영어 리브레토를 구해야겠다 싶었다. 근데 또 한국에는 음반 재고가 잘 없어 바쁜대로 HMV에서 시켰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리 될 줄 알았다고, 결국 내가 출국할 때 까지 CD는 못 왔다 엉엉.. 더 웃픈 건 돌아와서 CD를 열어보니 pdf 리브레토만 지원된다는 거고, 알고보니 CD실물 따위 없어도 그냥 데카 홈페이지에 로그인만 하면 리브레토를 다운받을 수 있다는 거다. 

돌아와서 혹시 내가 놓친 중요한 포인트들이 있을까 리브레토를 다시 읽어봤지만 진짜 별거 없다. 그냥 시놉시스에 있는 내용을 길게 주저리주저리 늘려놨고 특별히 놓치지 말아야하거나 여러 해석이 있을 법한 가사는 찾지 못했다.


3. 공연

300그램 스테이크 15분 컷에 성공하고 허겁지겁 오페라 극장으로 달려갔다. 다른 오페라 극장들과 달리 건물의 외관이 평범하고 입구가 뚜렷하지 않아 살짝 헤맸다. 


1층 제일 뒷자리에서 찍은 사진. 1층 좌석 수가 정말 얼마 안된다. 


자막이 네덜란드어로만 나온다. 네덜란드어를 전혀 모르지만 들리는 독어 가사와 대조하다 보니 몇개 단어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사고 내 자리를 찾아갔다. 예매하면서 고민 끝에 발코니 3층 사이드 좌석을 샀다. 독일 오페라 여행을 다니면서 알게 된 건 말굽형 극장 윗층 사이드가 음향이 아주 탁월하다는 점이다. 하노버 극장이 전형적인 말굽형 극장인데 내가 들었던 가장 탁월한 오페라 음향을 거기 꼭대기 사이드에서 경험했다. 헨트 오페라도 같은 구조로 보였고, 사이드 끝이 아닌 이상 시야가 가리는 일도 별로 없을 테다. 티켓값도 아끼면서 괜찮은 음향도 찾을 만한 자리면 여기가 좋겠다 싶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하하하하하하 역시 오페라 짬밥이 어디 안 갑니다! 헨트 오페라 극장은 중간 사이즈로 전날 보았던 바스티유 대운동장과 완전히 다른 음향을 들려줬다. 가수들의 소리는 마치 코앞에서 듣는 것 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가수들이 소리를 크게 지르는 순간에는 오케스트라도 덮어버릴 정도였다. 여섯명의 재판관이 노래하는 소리는 오케스트라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충분히 블렌딩 되지 않고 들린다는 점은 아쉬웠다.

무대에는 3차 세계대전 이후라도 된 것 같은 분위기의 배경이 펼쳐진다. 즐거움과 웃음이 사라진 세상을 보여주기엔 적격이다. 저번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라 푸라 연출 <화형대의 잔 다르크>와 많이 닮았다. 

1막에서부터 주역 세 명이 제대로 활약했다. 이방인 역은 실연에서 부르기 무척 까다로운 역할이다. 특히 1막에 무대에서 한번도 퇴장하지 않은 채 계속 노래해야하며, 바그너 헬덴 테너의 목소리로 디오니소스의 활기를 표현해야한다. 브르노 극장 영상에서는 1막 뒷부분 부터 테너의 목소리가 점점 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 날 헨트 극장에서 노래한 가수는 완전히 달랐다. 이렇게 괜찮은 헬덴 테너가 있었나 싶을 만큼 강렬하고 자신감 넘치는 이방인을 보여줬다. 고음에서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헬리아네와의 만남에서도 로맨틱한 음성으로 노래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데 이날 이방인을 부른 가수는 이안 스토리Ian Storey로 바렌보임 & 셰로의 라 스칼라 <트리스탄>을 부르고 노세다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그리고리를 부른 가수였다. 트리스탄에서야 발트라우트 마이어가 워낙 압도적이니 큰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노세다 고두노프에서는 시원시원하고 힘있는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통치자 역할을 맡은 바리톤은 토마스 토마손Tomas Tomasson으로 최근 발매된 바렌보임 <파르지팔> 영상에서 클링조르를 맡았었다. 악역에 특화된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른 역할이었다면 비브라토나 프레이징 스타일이 멍청하게 들리는 느낌이라 아쉬웠겠지만 통치자 처럼 비열한 역할에는 최적이다. 아마 악역 중에서 이아고 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클링조르 처럼 불쌍한 것도 아니고 이 통치자 만큼 순도 높은 찌질함으로 가득찬 역할도 별로 없을 테다. 통치자에 비하면 골로는 순정남이지 아주.

헬리아네를 맡은 가수는 리투아니아 출신 소프라노 아우슈리네 스툰디테Aušrinė Stundytė였다. 다른 두 주역에 비하면 약간 아쉬웠는데 비브라토 때 음정이 약간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토마손과 스토리는 극의 흐름 안에서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데 헬리아네는 무언가 캐릭터가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다.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지만 필요한 요건들을 완전히 채워서 자신의 것으로 뿜어내는 단계에 살짝 못 미친 인상이다. 그래도 상당한 성량과 무거운 음색에 비해 나이들어보이지 않는 목소리로 이 역할을 맡기에 적당했다.

이렇게 외부 가수들을 캐스팅하는 시스템에선 조연과 주연의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확실히 세 명의 주연과 다른 주요 조연 (간수, 메신저, 재판장)간의 무게감 차이가 느껴졌다.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딱 조역 급 캐스팅이라고 해야할까. 


1막에서 간수 장면과 통치자-이방인 장면은 집중력이 좋았지만 헬리아네-이방인의 장면은 섬세한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다. 헬리아네 역 소프라노의 문제도 있었지만 기대했던 알렉산더 요엘Alexander Joel의 반주가 내가 원하는 만큼 조여주지 못했다. 함부르크 나비부인 영상에서는 이 지휘자가 부드럽고 레가토로 이어지는 사운드를 잘 뽑아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난한 악보 리딩에만 집중한 건지 오케스트라가 충분히 치고나가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요엘은 대체로 흐름이 끊기지 않고 물 흐르듯 진행되도록 했다. 그래서 극적인 과장이라든가 강렬한 한방이 조금 모자랐다. 금관은 충분히 강렬했지만 홀의 울림이 잔향이 심한 편은 아니라 때론 코른골트의 오케스트레이션이 값싼 음향 효과처럼 들리기도 했다.

헬리아네가 옷을 벗고 나체가 되는 장면은 간단하게 겉옷을 벗는 것 정도로 표현했던 것 같다. 정말 별게 없어서 오히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천사의 목소리를 부르는 합창단을 위해 발코니 4층에 설치된 모니터. 

모든 막간에 인터미션이 있었다. 2막의 무대 역시 1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품 전체에서 Ich ging zu ihm이 특별히 유명하지만 직접 오페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니 이 부분의 임팩트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죽음의 도시> Glück das mir verlieb은 노래가 시작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지만 Ich ging zu ihm은 그런 효과는 없다. 물론 아리아가 낭만적이며 멋진 선율로 가득차있지만 원래 이 오페라 자체가 그런 분위기로 돼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곡만 특별히 유명하기엔 이 작품 전체가 충분히 아름답다는 이야기일 테다.

3막은 폭발적인 합창이 등장한다. 합창단원을 대충 세어보니 45명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별히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극장의 음향이 워낙 사람 노래에 맞춰져 있어서인지 정말 귀청 떨어질 것 같은 음량을 보여줬다. 오케스트라가 뭘 하는지 제대로 안 들릴 정도로 불렀다. 까다로운 합창이지만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고 하나된 소리를 들려줬다. 아마 그 정도로 시원하게 소리 지르는 합창을 다시 경험하긴 힘들 것 같다. 연출가 역시 합창단원에게 복잡한 동선을 주문하지 않고 정면을 보고 적당히 줄을 맞춰 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중간 중간 효과적인 동작들을 넣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역시 이방인이 부활하는 장면이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연출을 선택했다. 음악이 순간 바뀌며 이방인의 부활을 알리는 순간 무대 뒤편에서 관객석 쪽으로 엄청난 양의 라이트를 동시에 켰다. 모든 관객들이 눈이 부셔 무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그 순간 뒤편에서 이방인이 등장했다. 조명의 변화는 관객들의 머리에 강렬히 각인된다. 영상으로 보았으면 그저 단순한 트릭에 불과했겠지만 직접 극장에서 볼 땐 일단 신체적인 반응 때문에 그 순간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방인이 무대 앞으로 조금씩 걸어나오자 민중들이 털썩 무릎을 꿇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였다.

다시 등장한 이방인 이안 스토리는 흡족스러운 노래를 들려줬지만 결국 오페라를 끝내는 건 오케스트라였다. 요엘은 끝까지 스코어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지는 정도의 에너지만 유지하고 오케스트라를 더 몰고 가지 않았다. 이럴 땐 파파노를 데려와서 입 뻐끔뻐끔 거리며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남은 소리 하나까지 빼와야 제맛인데 말이다.




지휘 스타일이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흡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이 공연이 다이나믹 레이블로 발매되거나 2018년에 도이체 오퍼 베를린에서 올리는 공연이 영상으로 꼭 발매되길 기도해본다. 


4. 옛날 음악, 옛날 극장

보통 인터미션 때 극장 여기저기 찍기에 바쁘지만 이번엔 인터미션이 두번 이었기 때문에 로비에서 적당히 음료도 사 마셨다. 로비를 돌아다니며 이 극장의 역사를 느끼게 됐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헨트에서 오페라의 시작은 무려 1698년 성 세바스티안 장인조합 극장(De schouwburg van de handboogschuttersgilde Sint-Sebastiaa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극장은 륄리의 오페라 <테세>와 같은 작품을 상연했고 1715년에 무너진다. 그 후 새로운 성 세바스티안 극장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지금 남아있는 건 1837~1840년에 완공된 대극장Grand Théätre이다. 벨기에가 네덜란드에게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어진 극장인 셈이다. 

그 전날 본 바스티유 극장과 비교하면 헨트의 극장은 훨씬 더 작고 낡았다. 바스티유 극장을 지었던 20세기 파리의 경제력과 건축 기술은 19세기 헨트의 자본이나 건축가들에 비할 바가 못됐을 테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으로서 가치는 헨트의 극장이 훨씬 뛰어나다는 건 논쟁의 여지도 없다. 바스티유 극장이 더 나은 것은 오로지 무대와 피트와 객석의 규모일 뿐이다. 

이 글을 쓰며 코른골트의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듣고 있다. 코른골트의 답없는 화려함과 과도한 낭만이 담긴 음악과 이 극장은 놀랍도록 잘 어울린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황금시대를 보는 것 같다. 이젠 어느 누구도 저렇게 화려한 벽면 장식과 샹들리에를 달지 않는다.

21세기에는 이런 사치스러운 극장을 다시 짓지 못할 테다. 우리 시대에는 우리 시대의 미학이 있고, 19세기의 화려한 극장을 모방해서 짓자는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모방하더라도 결코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할 거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어느날 한국의 어떤 갑부가 자기 돈으로 19세기 유럽의 극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극장을 만들더라도 사람들은 감탄은 커녕 비웃기만 할 것이다. 21세기의 작곡가가 모차르트와 베토벤, 브람스와 말러 스타일의 곡을 쓸 지식과 능력은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곡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 처럼 말이다.

오페라 극장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예전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는 몇 안되는 특별한 장소다. 또한 왕궁이나 궁전과 달리 모든 사람들이 100년 전의 사람들처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기도 하다. 아마 유럽의 교회나 성당 정도가 비슷한 예시가 아닐까. 이런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는 것은 마치 왕궁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생활을 경험하는 것과 비교할만 하다. 

그리고 이런 극장이 있기에 이 곳에서의 오페라 문화는 다른 지역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이 아무리 돈을 많이 써서 좋은 가수들을 데려오더라도 절대 가지고 오지 못할 것이 바로 이런 극장의 뛰어난 음향과 화려한 분위기, 그리고 곳곳에 깃들여있는 오랜 역사다.

오페라가 그렇게 오래된 음악이 아니며 요즘에도 계속 변화하고 살아있는 음악이라고 외치고 다녔었다. 하지만 바스티유 다음날 이런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고나니 오페라 역시 옛날 극장이 더 어울리는, 어쩔 수 없는 옛날 음악이구나 싶었다. 


오페라 극장이 이렇게 장식과 샹들리에와 회화로 가득찬 시대가 있었다. 오페라에 있어서 벨 에포크는 이 때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런던 - 파리 - 헨트 여행도 끝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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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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