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나폴리로 내려왔다. 죽기 전에 나폴리를 보라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지만 궁금했다. 사실 요즘의 나폴리는 나폴리 자체보다는 나폴리 근교의 관광지로 더 유명한 듯 하다. 가까운 거리에 폼페이 유적지가 있으며 절경으로 유명한 카프리, 소렌토 - 아말피 해안도로 등이 있다. 나폴리로 떠나기 전날 나폴리에 가서 무얼 할까 아내님과 고민했다. 그렇게 폼페이 다큐멘터리도 보고 아말피 해안과 카프리 섬 가는 법을 찾아보느라 4시간 동안 고생하다 늦잠을 잤다. 아말피냐 폼페이냐! 고민 끝에 결국 너무 피곤해서 둘 다 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나폴리가 볼 게 없는 건 절대 아니다. 마피아 때문에 치안이 안 좋다, 길거리가 지저분하다는 말이 많아 나폴리에 가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길거리가 지저분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로마보다 소매치기 문제가 심할까 싶었다. 일단 관광객의 비율이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소매치기 하기 좋은 곳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면서 관광하느라 정신없는 랜드마크 주위일텐데, 일단 나폴리에는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같은 랜드마크가 없다. 성이 몇개 있긴 하지만 사람이 붐비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나폴리의 특색은 강렬했다. 아내님은 골목길을 지나다니며 무슨 동남아에 온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창문마다 큼직한 발코니가 설치돼있고 가파른 언덕길에는 스쿠터가 끝도 없이 지나다닌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호텔까지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투머치토커였다. 휴가 온 거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어딜 갈 생각이냐고 질문했다. 카프리에 갈까 생각중이라니 겨울에 카프리는 볼 게 없다면서 아말피가 훨씬 좋다는 거다. 아내님은 아아 그렇구나 하면서 경청했지만 나는 이 때부터 이 아저씨가 약 팔려고 작정했구나 싶었다. 결국 호텔 까지 20분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끔찍이도 길게 느껴졌다) 내내 아말피 해변도로를 따라 왕복 투어를 하는데 200유로만 주면 된다고 홍보했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한다는 걸 알고 같은 설명을 또 이탈리아어로 똑같이 반복하더라. 호텔에 내리는 순간까지 관심있으면 꼭 연락달라고 핸드폰 번호까지 적어줬다. 이것이 남부 스타일입니까.

나폴리에서 제일 불편한 건 교통이었다. 나무위키에도 잘 나와있던데, 도시가 큰 것에 비해 대중교통이 잘 돼있는 편이 아니다. 구글맵 켜서 찾아보면 도보로 30분, 버스타면 28분 이런 식이다. 점심 먹고 주세페 사마르티니의 베일을 쓴 예수상을 보러 갔다가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근처에 벨리니 광장도 있더라.



하지만 나폴리에는 피자가 있다. 반죽이 얇은 로마식 피자와 달리 나폴리의 피자는 풍성히 부풀어오른 도우가 쫄깃쫄깃한 맛을 내준다. 나폴리에서 네 끼를 먹었는데, 네 끼 모두 마르게리타를 먹었다. 그 동안 마르게리타는 그냥 무난하고 기본적인 피자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폴리에서 먹은 마르게리타는 그냥 완전 무결한 무언가였다. 여기에 감히 다른 토핑을 얹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적당히 덩이진 치즈와 토마토의 시큼달콤한 맛이 입에 퍼질 때만큼 행복한 게 없었다.  죽기 전에 나폴리를 가라는 건 분명 피자 때문이었을 거다.  나폴리의 레스토랑에는 보통 마르게리타 피자가 여러 종류로 있다. 같은 마르게리타지만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졌다.  비싼 재료를 쓴 마르게리타라고 해봤자 10유로도 안하는 가격이지만 말이다. 베수비오 화산 근처에서 나는 토마토 (산 마르차노)가 들어간 마르게리타는 진짜 완벽하다. 토마토가 그렇게 맛있는 재료라는 걸 흠뻑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나폴리를 살짝 둘러봤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서 쉬기 전에 해안가를 갔는데...


나폴리 볼거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별 거 없을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다. 나폴리 만을 둘러싼 경치는 정말로 아름답다. 태양은 강렬했고 해안선을 따라 늘어져있는 건물들 역시 절경이었다. 



여행 내내 쉬는 날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나폴리에서는 그냥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아말피나 카프리 정도는 갔을 지도 모르지만 비가 꽤 오기로 예정돼 있었다. 카프리 섬에 배타러 갔다가 비 때문에 못 돌아오는 것 만큼은 꼭 피하고 싶었다. 대신 그 동안 못잔 잠도 푹 자고 호텔 바로 근처에 있는 대형서점인 라 펠트리넬리La Feltrinelli에 갔다. 이탈리아에서는 대형 서점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점을 둘러보는 것 역시 재미있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점에서 자기계발서와 수험서 등의 비중이 상당히 높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장 메인은 소설이었고 미술 음악 영화 요리 등에 대한 크고 아름다운 책들이 많이 있었다. 안에는 카페도 있는데 따로 구분된 영역이 아니라 서점 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있었다. 우리 둘은 카푸치노를 시켜 각자 들고간 책을 읽었다. 

잠깐 커피 이야기를 하자. 카푸치노 시키니까 옆에 있는 아저씨가 혼잣말 처럼 "이 시간에 카푸치노를 마시다니 역시 여행자들이군" 이라는 식의 말을 했다. 이탈리아 문화를 공부하면 가장 먼저 배우게되는 것 중 하나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유 들어간 커피를 아침에만 마신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설명을 들었는데 아침 이후에 마시기에는 우유는 너무 무거운 음료라고 느낀단다. 그 뒤에 정 우유를 넣어 먹고싶으면 마키아토 정도? 그렇다고 해도 카페에서 아예 안 파는 건 아니다. 다만 오후에 카푸치노를 마시는 걸 이상하게 본다는 게 정말이구나 싶었다. 존맛 카푸치노를 1.2유로 정도면 마실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일종의 복지인 것 같다. 커피가 2유로 넘어가는 걸 본적이 없다. 심지어 라 페니체 극장 안에서도 1.5유로 정도였던 것 같다. 분명히 두잔을 시켰는데 독일 커피 한잔값이 나오길래 내가 가격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카푸치노가 1유로 선인 것까지 본 것 같다. 또 거의 대부분의 카페가 디카페인(데카페이나토) 커피를 판다. 마치 독일 어디서든 무알콜 맥주를 쉽게 주문할 수 있어 알콜 때문에 술 못마신다는 말이 안 나오는 것 처럼, 이탈리아에서도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못 마시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빈의 카페가 유구한 역사와 사회적 역할, 빈 특유의 커피 메뉴, 디저트 등으로 유명하다면 이탈리아는 값싸고 맛좋은 커피를 언제나 간편하게 전해주는 곳이라고 할까. 물론 이탈리아에도 베네치아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역사 깊은 카페들이 있지만, 빈과는 다른 느낌으로 생활화 되어있는 것 같다. 빈의 카페가 사교의 장이며 자기 사적 영역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이탈리아 카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커피 그 자체다. 우리도 한국 돌아온 뒤 이탈리아의 카푸치노가 계속 생각나 비알레티 모카포트를 구입했다. 둘다 라테 류를 더 좋아해서 핸드드립을 사기에는 살짝 망설여졌는데 이 기회에 맛난 커피를 잘 마시고 있다.



남부 이탈리아의 '느긋함'이라는 걸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분명히 그런 것 같다. 공연도 오후 8시 시작으로 이번 일정 중 가장 늦게 시작했다. 오페라가 8시에 시작하는 건 그럴 수 있다. 라 보엠은 짧으니까. 문제는 식당들이 죄다 저녁에는 7시 ~ 8시에 오픈한다는 것이다. 보통 식당에서 밥먹으면 1시간 정도는 잡는 게 좋기 때문에 오페라 시작 1시간 전에 식당에 들어가는 건 절대 좋은 계획이 아니다. 결국 테이크아웃으로 종이에 피자를 싸주는 가게에 가서 먹었다. 마르게리타 하나가 2.5유로길래 조각으로 나올 줄 알았더니 한판 그대로 나오더라.


나폴리의 오페라 극장은 산 카를로 극장이다. 1737년 완공되었고, 지금까지 정규 공연장으로 쓰이는 오페라 극장 중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당연히 현재 모습은 1737년 그대로는 아니고 화재로 인한 손실과 2차대전 중 폭격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한 모습이다. 위키에서 읽던 중 충격적이었던 것 중하나는 원래 3285석 규모였는데 안전 상의 이유로 1387석으로 줄였다는 것이었다. 이 극장에 3000명이 들어가려면 도대체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섰던 거지;;


산 카를로 극장은 궁전과 붙어있기 때문에 외관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궁전 건물 중 일부인 줄 알아서 지나쳤는데 그게 산 카를로 극장이었다. 비도 오고 해서 결국 외관 사진은 한장도 못 찍었다. 아래 사진은 위키피디아 펌. 


극장은 작지 않은 편이다. 유럽 오페라 극장의 모태가 된 극장으로 전형적인 말굽형 극장이다. 티켓값이 싼 편은 아니라 조금 안 좋은 자리로 앉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대 쪽이라 시야가 많이 가렸다. 




프로그램에는 산 카를로 극장의 라 보엠 공연 기록이 모두 올라와 있다. 툴리오 세라핀, 베니아니모 질리, 마리오 델 모나코 같은 전설적인 이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극장에서 보엠을 처음 올린 건 1896년, 즉 토리노에서 초연하던 바로 그 해부터였다. 토리노에서 초연된지 한달 뒤에,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라보엠을 공연한 곳이 바로 이 극장이다.

산 카를로의 로비에는 파이시엘로와 치마로사의 조각상이 있다. 나폴리는 이들 작곡가와 함께 한 때 유럽 오페라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통일 이후 북쪽의 밀라노 등에 밀리기 시작하고 점차 하향세를 밟게 된다. 페르골레시의 주요 작품은 거의 모두 나폴리에서 초연됐다 (당시에는 산 카를로가 생기기 5~10년 전이다).  파이시엘로와 치마로사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 요즘은 표준 레퍼토리에도 들지 못할 만큼 잊혀진 것이 산 카를로 극장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공연의 경우 산 카를로 극장에서 공연을 본다는 데 의의가 있었지 공연의 퀄리티 자체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캐스팅 중 아는 사람은 딱 한명, 지휘자 스테파노 란차니였다. 그런데 이 사람 지휘를 한번 본 것이 바로 영상물로 나온 것 중 희대의 망작인 취리히 카발/팔리였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기대라도 했을 텐데. 

공연은 참 신기했다. 이탈리아 극장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다가도, 썩어도 준치라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역시나 허접했다. 오페라 시작을 여는 마르첼로의 모티프 부터 리듬이 뭉게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오케스트라에서 어택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짧은 음표를 투티로 나올 때면 길이도 제각각 타이밍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다가도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면 기가막히게 잘 뽑아낸다. 갑자기 오케스트라가 한마음 한뜻이 된 듯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간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무제타의 왈츠가 전체 중창으로 확장되며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지휘자와 단원들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휘자는 템포를 늦추고 볼륨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이탈리아의 감수성을 뽑아냈고 오케스트라와 무대의 가수들도 이에 화답했다. 

믿고 거르는 이탈리아 연출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공연을 보기 전에 원작을 계속 읽었던 탓도 있겠지만 보헤미안들이 사는 집은 너무 넓고 편안하고 깨끗해 보였고 가수들의 연기와 동선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4막에서는 다들 벌써 부자가 됐는지 모두 깔끔한 아이보리색 정장을 입고 있더라. 의상만 봐서 라보엠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자리가 자리라 무대가 반쯤 가리기도 하고 연출도 볼 게 없어서 그냥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주로 쳐다봤다. 아내 역시 독일에서 짜임새 있고 현실적인 연기만 보다가 텅빈 무대를 보니 아쉬워했다. 

가장 놀라운 건 가수들이었다. 다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어느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몇달 전 직접 들었던 ROH 라 보엠에 비교해도 더 훌륭했다.  그 중에서도 미미 역의 엘레오노라 부라토Eleonora Buratto가 가장 돋보였다. 안정적인 호흡에 엄청난 성량, 과하지 않은 비브라토로 빛이 났다. 내 이름은 미미에서 느린 템포를 타고 마음껏 소리를 발산했다. 직접 들은 미미 중에 가장 훌륭한 노래였다. 쇼나르 역에는 한국인 바리톤 김한결(Leon Kim)이 나왔다.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딕션도 문제가 없었고 노래도 짧지만 강렬했다. 로돌포 역의 장프랑수아 보라스Jean-François Borras 역시 마이클 파비아노의 메마르고 오버하는 톤보다 훨씬 깔끔하고 안정적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 어린이 합창단. 이탈리아 사람들이 노래를 잘 하긴 잘 하나보다. 어린이 합창단이 숫자도 많은데 음정도 좋고 무엇보다 딕션이 칼 같더라. 이탈리아 어린이들이니까 이탈리아어를 잘 하는게 당연하지만, 이게 또 직접 들으면 진짜 신기하다. 이 합창에서 이런 딕션이 들릴 수 있었나?? 아이들 특유의 메마른 느낌은 있었지만 칼딕션이 주는 쾌감이 있었다. 성인 합창단 역시 숫자가 상당해 무대를 꽉 채우며 대단한 존재감을 보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맛없는 음식과 노래 못하는 가수는 참을 수 없다는 말이 진짜인걸까. 관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름다운 노래였고 가수들은 이걸 충분히 충족시켜줬다. 연출은 그저 무대를 허전하지 않게 해주는 것일 뿐, 가수들이 노래하는데 방해가 되서는 안되는 거였다.


공연 장에서 몇가지 특이한 일들이 있었다. 일단 나폴리 특유의 느긋함이 오페라 극장에서도 티가 났다. 1막과 2부 사이에 무대 교체 + 지연 입장 때문에 거의 10분을 쉬었다. 1층 출입구에는 거의 스무명 쯤 되보이는 사람이 서서 막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시작 전에 생각보다 극장이 많이 비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늦은 관객들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건 2막이 끝나고 20분 인터미션을 가진 다음에 3막이 끝나고 또 20분 인터미션을 가졌다. 3막 끝나고 오케 단원들이 퇴장하길래 뭐지 싶었는데, 조금 있다가 인터미션이라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살다살다 라보엠에 인터미션 두 번은 또 처음보네ㅋㅋㅋㅋㅋ 결국 공연은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우리 박스 석에 앉기로 한 다른 두 사람 역시 늦게 도착했다. 한 명은 8시 쯤 들어왔고, 다른 한 명은 공연이 시작하고 나서 몇분 뒤에 들어왔다. 문제는 이 새로 들어온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아서 계속 핸드폰을 한다는 거였다. 극장 사진을 찍어서 메시지를 보내더니, 동영상으로 공연 장면을 찍기 까지 했다. 내 자리에서 무대를 보면 그 사람쪽으로 봐야했기 때문에 핸드폰이 자꾸 내 시야를 가렸다. 뭐라고 말을 해야겠는데, 로마에서 발레볼 때도 그렇고 여기서는 공연 중에 핸드폰으로 영상 찍는 거 가지고 뭐라 안하는 문화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거기다 저번에는 다른 박스석이기라도 했지, 바로 옆사람에게 지적했다가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도 됐다. 20대 후반 쯤이나 되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머리에 스크래치를 한걸 보고 혹시라도 마피아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결국 그대의 찬손이 시작했고, 참다참다 내가 이걸 놓치는 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서 용기를 내 살짝 어깨를 쳤다. 다행히 무슨 뜻인지 알고 바로 핸드폰을 내렸다. 인터미션이 되니까 나한테 대뜸 이탈리아 처음 왔냐고 물어보길래 "너가 이탈리아 처음이라서 그런가본데, 원래 여기선 핸드폰으로 다 공연 찍고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건가 싶어 쫄았다. 다행히 그런 건 아니고, 이탈리아 처음와서 이 극장에서 라보엠을 보다니 정말 부럽다면서 자기는 여기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살레르노에 살고 이 극장에 처음 온 거라고 했다. 인터미션 때 열심히 극장 사진을 찍으며 혼자 나레이션도 하면서 동영상 기록을 남기더라. 나보다 더 설렌 것 같아 보였다. 

재밌는 건 두 사람 모두 2~30대의 젊은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둘다 정장을 빼입고 오페라를 혼자 보러 온 거다. 독일 극장에 대부분 40대 이상만 있고 젊은 사람이라곤 단체로 구경 온것 같은 학생들밖에 없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탈리아 공연에서는 독일식 학생 티켓을 찾기 힘들었는데, 복지 예산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런 것 없이도 젊은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와서 그런 건 아닐까. 독일 안에서 오페라의 입지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입지가 또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거지만 오페라 극장에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우리가 신기해서인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두번째 인터미션 중에 프로그램 노트를 사겠다고 밑에 내려갔다 왔는데, 우리가 몇층이었는지 잠시 헷갈렸다. 박스 번호에 들어갔는데 우리 자리가 아닌 걸 깨닫고 이게 한층 위였는지 한층 아래였는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할머니 한분이 우리를 보시더니 너희 자리가 한층 위라고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하고 올라갔는데, 우리가 딱 한층 위인지 어떻게 아셨지?! 자리에 앉아서 극장 구경하다가 박스석에 앉아있는 젊은 아시아인 부부가 신기해서 기억하고 계셨나보다.


베네치아와 로마에서도 공연을 봤지만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전막을 본 것은 이 것이 유일했다. 기량이 아쉬운 오케스트라, 허접한 연출을 보면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의 한계를 느끼다가도 최소한 가수의 수준에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구나도 느꼈다. 나폴리의 경제는 절대 좋은 상황이 아니다. 경제 규모로 밀라노, 로마, 토리노를 이어 이탈리아 4위라고 하지만 그건 나폴리의 인구가 상당히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나폴리의 1인당 GDP는 2만 달러 정도로 우리나라 보다도 안 좋으며 물가 싼 체코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다. 나폴리보다 거의 세배 쯤 잘 사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가 경제 위기 때문에 휘청이는 걸 생각하면 산 카를로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닐 테다. 돈 먹는 하마인 오페라 극장이 낮은 경제력으로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아마도 오랫동안 내려져온 문화적 토양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무도회장 가는 것 같다며 항상 즐겁게 함께 가준 아내님 덕에 신혼여행 중에도 좋은 공연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것으로 여행 중 공연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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