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의 캐스팅. 네트렙코와 베차와가 바그너 롤에 데뷔했다. 틸레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틸레만은 두 가수를 라몬 비나이에 빗대며 바이로이트에 어울리는 소리라고 말했다. 틸레만의 취향이 다소 변태적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저게 정말 진심이었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바이로이트에 스타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면 이해가 됐을 텐데 말이다. 다행히 네트렙코가 포기하며 둘의 바이로이트 데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젬퍼 오퍼에서는 결국 롤 데뷔를 이뤄냈다.


내가 뭐 바그너 근본주의자 같은 사람도 아니고, 이탈리아 오페라나 부르던 가수가 감히 바그너를 도전하냐고 따지는 것도 아니다. 네트렙코의 팬이면 팬이지, 절대 까는 아니다. 요새 바그너 가수가 너무 기근이라 김성근 투수 돌려 쓰듯 누구라도 막 데리고 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구린 건 구린 거다. 혹시 잘 할까 조금은 기대했지만 정말 안 어울리더라. 베차와는 사정이 훨씬 낫지만, 네트렙코의 엘자는 정말 듣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생각보다 노래가 독일어 같이 들려서 놀라긴 했지만, 딕션은 줄줄 새면서 어색했다. 무엇보다 무슨 이탈리아 아리아를 부르는 것 처럼 오버하거나 프레이징을 과도하게 꾸며내는 것도 끔찍했다. 듣고 있으면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1막에서 자기 억울하다고 노래부르는 데서 억울함 보다는 그 기개가 빛나서 로엔그린 없이 자기 손으로 텔라문트를 때려잡을 수도 있을 것 만 같았다. 강약 조절도 없이 끊임없이 질러대기만 하는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캐스팅과도 비교됐다. 하인리히 왕의 게오르크 제펜펠트나 텔라문트 역의 토마시 코니에츠니는 바그너 가수의 정석을 보여줬다. 안정적이고 또렷한 딕션, 연극적인 느낌을 잘 살린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이 빛났다. 오르투르트 역의 에벨린 헤를리치우스 역시 네트렙코의 엘자보단 나았다. 다만 2막에서 오르투르트와 텔라문트가 듀엣을 부르는 부분은 저렇게 안 맞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계속 엇갈렸다.


틸레만의 반주는 확실히 물이 올랐다. 젬퍼오퍼와 궁합도 좋고 아주 고급진 음색을 뽑아내며 시종일관 극을 지배한다. 


연출은 지극히 전통적이다. DG에서 처음 발매한 4K UHD블루레이였고 나도 처음으로 보게 된 UHD 오페라였다. 제일 놀란 건 의상의 화려함이었다. FHD에서 UHD로 진화하면서 사소한 디테일들이 더 보이게 되는데 그러면서 눈에 띄는 게 바로 옷의 장식이다. DVD에서 블루레이로의 차이는 확연하지만 FHD와 UHD의 차이는 그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얼굴 표정 등 중요한 부분은 FHD 수준에서도 충분히 잘 보인다. 하지만 의상의 화려함이나 무대의 디테일 등은 UHD에서 확연히 잘 나타났다. DG가 UHD 첫 영상으로 이 프로덕션을 고른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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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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