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은 얼마나 망가진 걸까.


정명훈이 떠난 뒤로 서울시향을 별로 보지 않았다. 간혹 보러갔지만 따로 후기는 쓰지 않은 것 같다. 시향에 대한 기대가 떨어진 것도 있고 내가 바빠진 것도 있을 테다. 작년 한해 동안 내가 예매했다가 취소한 시향 공연만 해도 적게 잡아 다섯개는 된 것 같다. 


정명훈 사임 후 서울시향의 질적 하락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좋은 지휘자가 붙었을 때 상당한 명연을 뽑아준다고 들었다. 특히 슈텐츠가 지휘했던 슈만 2번이나 브루크너 7번의 경우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었다. 두 번다 놓쳤기에 이번에는 꼭 놓치지 않겠다고 예매도 하고 큰 기대를 하고 갔다.


슈레커의 <낙인찍힌 자들>은 작곡가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을 테다. 무엇보다 작곡가 본인이 후에 유대인 탄압으로 "낙인찍힌 자"가 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이 작품을 조금 더 의미있게 만들 테다. 이 작품의 내용을 평범한 제목으로 쓰자면 <제노바의 곱추>일 텐데, 실제로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자'라고 볼만한 인물은 주인공인 곱추 뿐임에도 슈레커가 제목에 단수가 아닌 복수를 쓴 점은 흥미롭다. 슈텐츠는 얼마 뒤인 5월에 이 작품을 바이에른에서 상당히 호화로운 캐스팅으로 지휘하기로 돼있다.

알슈와도 비슷하지만 침울한 분위기가 내겐 오히려 코른골트를 연상케 했다. 슈텐츠는 이 작품을 매끈하고 아름답게 뽑아냈다. 이 곡이 이렇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발산되는 곡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에 분위기가 바뀔 때 나오는 바순의 템포가 살짝 불안하게 느껴졌는데 이 불안함은 2부에서 확실해졌다. 

황수미의 경우 워낙 좋은 소리를 많이 들어 기대를 많이했다. 대전에 와서도 리사이틀을 했는데 하필 딱 유럽 가는 기간이라 놓쳐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롯데홀의 짙은 잔향 속에서도 딕션이 비교적 또렷하게 전달됐고 목소리의 컨트롤 역시 좋았다. 성량은 충분히 내면서도 너무 지르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다만 작품 특유의 변태적인 면을 의도적으로 희석시킨 해석이 아니었나 싶다. 오케 반주로 부른다는 점도 노래에 영향을 많이 줬을 테다. 오케 반주보다는 피아노 반주로 들었으면 훨씬 좋았겠다 싶었다. 우리말 자막이 나오는 건 좋았지만 독어 자막이 나오지 않은 건 아쉬웠다. 


말러 스페셜리스트인 슈텐츠이기에 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2부.


한 마디로 서울시향이 최근 보여준 연주 중 가장 안타까운 연주였다. 흔히들 말하는 망한 말러, 그러니까 금관이 삑사리가 나고 혼돈의 세계로 들어가는 연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토록 앙상블이 삐걱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불안한 연주였다.

첫번째 트럼펫 팡파레를 정리하는 호른의 템포에서부터 불안함이 느껴졌다. 대체로 템포를 살짝 여유있게 가는 이 부분에서 슈텐츠는 너무 처지지 않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결과 오히려 호른이 서두르는 모양새가 됐다. 부점 리듬은 뭉게졌고 템포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에 있었다. 현악기의 음량은 턱없이 모자랐고 특히 바이올린이 그랬다. 투티가 끝나고 현만 갑작스럽게 남는 부분에선 음악이 멈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철렁하는 순간이 있었다. 현악기가 사라지니 음악은 평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관악기 위주로만 질러대다보니 무슨 군악대 연주도 아니고 귀만 아플 정도였다. 

현악기의 음량이 작은 것엔 여러가지 문제가 함께 작용한다. 첫째로 음정이 완벽하게 맞지 않다는 점인데, 이날 말러에서 현악기의 음정 갈라지는 소리가 자주 났다. 4악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특히 2악장의 조용한 첼로 모놀로그에서 음정이 심하게 틀린 실수를 한 건 서울시향 정도의 오케스트라에서 용인할 만한 게 아니었다. 둘째로 아티큘레이션이 제대로 통일되지 않았다는 거다. 2악장에서 리드미컬한 파트, 특히 부점 리듬에서 현악기의 끊고 맺음이 명확하지 않았다. 셋째로 단원 중에 완벽하게 악곡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일 테다. 예컨데 1악장에서 주제 리듬을 2바이올린이 강하게 연주할 때 수석쪽의 소리만 유난히 크게 난 점이나, 어려운 패시지가 나올 때 활만 보아도 티가 날 정도로 허겁지겁 따라가는 사람도 보였다.

롯데홀의 음향이나 자리탓 이라고도 생각해보았지만 그 가능성을 깬 건 5악장 초반의 푸가토였다. 아 이 홀에서도 현악기 소리가 이렇게 날 수 있구나. 상당히 빠른 템포였는데도 정확한 아티큘레이션과 명쾌한 볼륨으로 연주했다. 어디까지나 연습량의 문제였던 것 같다.


여기에 슈텐츠의 과감한 해석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슈텐츠는 오케스트라를 뭉쳐서 처절한 사운드를 뽑아내는 것보다 빠른 템포로 경쾌하게 흘러가며 다양한 성부의 조합을 강조했다. 짧은 악구들도 세밀한 프레이징에 신경을 많이 쓴 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개별적인 악구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치명적인 단점이 부각됐다. 바로 각 파트의 흐름이 미묘하게 어긋나있었다는 점이다.

슈텐츠의 잦은 템포 변화 때문인지 파트 간 템포가 어긋나는 일이 계속 나타났다. 물론 이 정도 템포 변화도 없이 말러를 어떻게 하겠냐만..  이리저리 해체해놓고 하나로 합쳤을 때 아름답게 연결이 돼야하는데, 성부별로 템포가 다르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는 부분이 자주 일어났다. 하나하나의 어긋남이 치명적인 실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어긋남이 꾸준히, 연주 내내 등장했다. 맘편히 연주를 들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전체 파트를 아우르는 확고한 흐름으로 쭉 밀고 나갔다면 이렇게 문제가 자주 생기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주선율만 부각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성부를 입체적으로 조합하려는 시도를 하다보니 균열이 명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삐걱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곡예 운전을 하는 느낌이었다.


한참 DG 레코딩을 할 때와는 리허설 기간도 연습량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서울시향의 공연 완성도가 많이 하락했다는 점은 분명하고, 큰 변화 없이는 악단의 기량 저하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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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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