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표기가 좀 골치아프다. Meistersinger는 마이스터징'어'로 발음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마이스터징'거'로 등록되어있다. 잠깐 인턴을 할 때 프로그램에 작곡가 인명 표기를 신경써서 하던 버릇 때문에 정해진 표기법을 그냥 무시하질 못하겠다.  흔히 쓰는 명가수라는 번역이 적절하지 않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명가수가 곧 명인가수를 뜻한다라고 하기에는 명가수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통용되는 뜻이 있는데 막 가져다 붙여쓰기는 그렇지 않나 하는 거부감이 조금 든다. 물론 이 오페라를 '명가수'라는 단어로 칭할 때 가장 간편하고 친근감 있다는 건 백번 공감한다. 그냥 내가 어디 공적인 자리에서 이 오페라를 표기할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각설하고, 명가수는 내가 처음으로 본 바그너 오페라다. 2011년, 그러니까 아직 오페라라는 걸 별로 찾아듣지도 않던 때에,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1막 전주곡을 하기로 결정해 오페라 전막을 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에 내게 4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러고 5년이 지났구나. 이제 명가수는 내가 유일하게 직접 공연장에서 보지 못한 바그너 표준 레퍼토리다. 물론 지금도 명가수나 파르지팔, 트리스탄을 보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이 블루레이도 내가 2013년에 블루레이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바그너 블루레이만 다 모으자는 생각으로 일본 HMV에서 샀던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아직 수입이 안됐다. 여튼 사놓고 2년 동안 컴퓨터 바로 옆에 쌓아두고는 차마 도전할 엄두를 못냈다. 바이로이트와 글라인드본 영상은 보았지만 뉘른베르크는 그저 먼지만 쌓일 뿐이었다.


뉘른베르크의 뉘른베르크 명가수라니. 이 도시에 있어서 명가수는 단순히 자신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정도가 아니다. 나치 시절 히틀러와 괴벨스를 위해 수도 없이 올린 오페라다. 많은 시민들이 나치 시절 뉘른베르크 극장에서 상연한 명가수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도시에서 명가수를 새로이 상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뉘른베르크 슈타츠테아터의 새로운 음악 감독으로 부임한 마르쿠스 보쉬가 취임 첫 작품으로 명가수를 선택하는 데에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명가수의 1막 전주곡은 바그너의 관현악 중에서도 중요하기로는 트리스탄 1막 전주곡과 함께 쌍벽을 이룰 수 있는 작품이다. 트리스탄 전주곡이 화성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명가수 1막 전주곡은 감히 바흐의 대위법과 베토벤의 동기 발전이 하나로 합치되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 내가 이런 거창한 수사를 쓰는걸 싫어하지만 명가수 1막 전주곡의 구성은 정말로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바그너가 왜 천재인지 설명해보라면 나는 이 곡을 다룰 것이다. 


마르쿠스 보쉬는 명가수의 특징을 투명한 음색으로 정의한다. 뉘른베르크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바그너의 친필 악보를 살펴보며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바그너 하면 떠올리는 무겁고 폭발적인 음색이 이 작품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실제 연주도 이런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너무 무겁지 않았으며 목관이 또렷이 들릴만큼 투명했다. 물론 훌륭한 녹음 덕도 있을 것이다. 

독일 지방 극장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다. 예를 들어 북쪽의 작은 도시 뤼벡에서 공연한 반지 사이클의 경우 지휘,  오케, 성악, 연출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고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반대로 바이마르 독일 국립극장에서 한 반지는 음악적인 면에서 참담할 수준이긴 하다. 과연 뉘른베르크는 어떨까?


뉘른베르크 사람들은 그래도 이 작품이 특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케스트라는 1막 전주곡 부터 아주 훌륭하게 해낸다. 어디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지휘자의 해석을 잘 따라가고 현악기는 어려운 패시지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명가수가 반지에 비해 기술적으로 쉬운 것은 사실이다. 


오케스트라도 놀랍지만 가수들 역시 모두 아주 훌륭하다. 가수들은 모두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뉘른베르크 슈타츠테아터 전속 가수들인데, 이것이 독일 극장의 클라스구나를 보여준다. 다비드는 바그너 슈필테너에 아주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1막의 노래 설명 장면도 깔끔하면서도 흥미롭게 소화해낸다. 발터는 굉장히 특이하다. 목소리가 헬덴 테너스러운 묵직함이 조금 있지만 정통 헬덴테너로 보기에는 그다지 강렬한 목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간 발터들에게 들어온 (글라인드본 마르코 옌취나 잘츠부르크의 로베르토 사카)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아니라 묵직한 목소리다. 표현도 나름 훌륭하다.

에파 역시 상당히 놀라운데, 아름다운 목소리에 절제된 비브라토로 고운 소리를 들려준다. 아니, 그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소리라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 특히 3막의 5중창이 아름다웠다.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것과 달리 나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엔 감명깊게 들었다. 오페라에서 외모 이야기를 쓰는 걸 지양하려고 하지만 바그너 소프라노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정말로 에파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비주얼 때문에 극에 몰입하기가 더욱 쉬웠다. 반대로 발터의 경우 노래는 훌륭하지만 작스, 베크메서 보다도 나이들어보이는 것은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작스 역 가수가 상당히 아쉽다. 포그너도 너무 노래가 유연하지 못한 느낌이지만 어차피 파트가 길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작스의 경우 발성 자체가 다른 가수들과 차이가 날만큼 나쁘다. 작스 노래만 듣다보면 또 표현 등이 나쁘지 않아 별생각 없이 듣다가도 다른 가수가 나올 때마다 비교가 된다. 

이에 비해 베크메서는 아주 훌륭하다. 첫 등장 부터 강렬한 발성과 명확한 발음, 그리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들려준다. 

아 세상에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까 내가 도쿄에서 탄호이저 봤을 때 볼프람 역할이었다. 소름. 그 때 내가썼던 후기를 다시 찾아보니 목소리는 좋은데 조금 아쉽다가 o du mein holder Abendstern 에서 대박을 쳤다고 한다. 이 공연에서도 베크메서가 가장 훌륭했다. 첫 등장부터 아 이 사람은 뛰어나다라는 걸 분명하게 느낄 정도였다.  찾아보니 16년 글라인드본 명가수에 베크메서로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건 베크메서나 에파나 모두 이 영상을 녹화한 공연이 롤 데뷔라는 것이다. 

가수들이 대부분 훌륭하게 들린 이유에는 개별 마이크로 녹음하여 녹음 상태가 아주 우수하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연출 역시 연주의 스타일과 비슷하다. 오페라의 무거움을 없애기 위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 나오는 색상들을 활용한다.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다. 특별히 돌발적인 해석은 없다. 하지만 가수들 연기는 상당히 자연스럽고 충분히 몰입할만 하다. 마지막 독일 예술 찬양 부분은 대중들이 작스를 디스하는 것으로 잘 처리했다. 글라인드본의 맥비커야 그냥 독일 만세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뉘른베르크에서 독일 만세를 외치는 건 불가능하다. 


글라인드본의 맥비커 연출은 그냥 영국 스타일의 깔끔하고 사실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바이로이트의 카타리나 연출은 아주 도발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잘츠부르크의 헤르하임은 그의 다른 연출에 비해서 다소 얌전한 편이다. 뉘른베르크의 이 연출은 배경을 무난히 현대로 옮겨논 것이 전부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생동감 있고 설득력 있으니 충분히 훌륭하다. 

4시간 30분이지만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가 좋아 즐겁게 볼 수 있다. 명가수의 다른 영상물을 섭렵했다면 하나쯤 추가해도 후회하지 않을 공연이다. 이들 중에 몇몇은 더 큰 무대에서  다만 블루레이 50기가에 다 집어넣다보니 화질이 블루레이 치곤 꽤 아쉽다. 이들 중 몇몇은 나중에 더 큰 이름이 돼있을 것 같다. 지휘자 마르쿠스 보쉬, 다비드 틸만 리흐디, 에파 미카엘라 마리아 마이어, 베크메서 요헨 쿠퍼는 기억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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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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