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가 안맞는 전막 영상. 


카우프만의 마지막 데카 영상물이다. 소니로 옮겨서 한창 음반과 영상물을 내던 2014년에 뜬금 없이 데카에서 발매되었는데, 아마 2008년 데카 계약 당시 녹화해둔 걸 발매를 안하다가 뒤늦게 발매를 결정한 것 같다. 사실 카우프만이 이미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한 카르멘이 영상물로 나와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카우프만이 나온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구입했다. 데카도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발매했을 것이다.


공연 판본은 대부분 레치타티보로 이루어진 비엔나 버전이다. 1막에서 미카엘라와 모랄레스 장면과 그 뒤 어린이 합창 부분 사이에 모랄레스의 짧은 노래가 들어가 있어 당황했다. 위 영상의 10분 정도부터 들을 수 있다. 1막 끝도 긴장 없이 너무 단조롭게 끝나버리는 판본이다. 


카우프만은 언제나 처럼 훌륭하다. 동 조제는 1막과 4막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기에 표현하기가 까다로운 인물인데 카우프만은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연출 때문인지 4막에서는 좀 더 처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긴 한다. 하이라이트인 2막 꽃노래는 역시 카우프만의 장기로 꼽을만 하다. 프랑스어 딕션도 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카르멘을 맡은 바셀리나 카사로바는 상당히 애매하다. 카사로바는 정말로 재능있는 가수다. 메조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 입을 여는 순간부터 관객의 집중을 모은다. 상당히 허스키한 목소리이기 때문에 알치나에서 처럼 바지 역할을 하면 매우 훌륭하다. 곡의 해석 역시 너무 단조롭지 않고 자유분방하고 끈적하게 부르기 때문에 카르멘과 잘 어울린다. 문제는 뛰어난 카르멘이 되기 위해서는 노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카사로바의 연기는 상당히 어색하다. 표정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편이다. 또한 노래하면서 몸을 뒤로 젖히는 습관이 있는데 연기에 매우 부자연스럽다. 또한 2막에서 등장하는 두번의 춤장면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다. 동 조제 앞에서 추는 캐스터네츠 춤이야 조명으로 나름 배려를 해주었지만 시스트럼 아리아의 경우 별도의 무용수들을 쓰지 않아 카사로바의 딱딱하기 그지 없는 춤 실력이 부각된다. 또한 저음역에서 목소리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간혹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다. 


취리히 하우스의 전속 가수들이 상당히 훌륭한 편이기 때문에 미카엘라, 단카이르, 레멘다도가 훌륭하다. 미카엘라의 이자벨 레이는 훔퍼딩크 '왕의 아이들'에서 카우프만과 함께 주역을 맡아 인상깊었는데 역시 기량이 뛰어난 가수다. 하지만 평균적인 미카엘라보다는 조금 더 날카로운 편이었다. 3막의 아리아에서 곱게 기도한다기보다는 전의를 불태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레멘다도 역으로 나온 하비에르 카메라나는 취리히 오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맡은 뛰어난 레제로 테너다. 아니 저 사람이 레멘다도로 나오다니, 취리히의 앙상블 풀도 참 대단하다.

반대로 에스카미요를 맡은 미켈레 페르투시는 투우사 특유의 카리스마를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합창단은 수준 이하로 기본적인 앙상블을 맞추지 못한다. 단원 수도 많지 않아 1막에서 여직공들끼리 두 패로 갈려서 노래하는 장면은 좀 안쓰럽다. 합창이 시종일관 불안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1막의 어린이 합창단이 더 나을 정도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다. 2008년이면 그가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감독을 맡았던 마지막 해다. 벨저-뫼스트가 이렇게 오페라를 잘했나 싶을 정도로 강렬한 반주를 들려준다. 모든 부분이 확신에 차있으며 망설임이 없다. 이 극장 오케스트라가 카브 & 팔리 영상물에서 보여주었던 실망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묵직하고 단단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곡의 반주 역시 독특한 아티큘레이션으로 리듬을 상당히 잘 강조한다. 합창단이 좀 부족하고 에스카미요가 아쉬워도 오케스트라 하나로 극을 멋지게 이끌어나간다. 순간적인 가속이나 다이나믹 변화도 훌륭하다. 2010년의 내한 공연과 2014년 장미의 기사도 훌륭했지만 이 카르멘은 감탄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2015년 잘츠부르크 피델리오를 그렇게 잘했다던데 괜한 말이 아닐 것 같다. 2막 투우사의 노래 반주나 3막 결투 장면은 땀을 쥐게한다. 


연출은 평범하다. 기본적으로 현대화 + 미니멀리즘을 사용해서 무대가 텅 비어있다. 동 조제가 등장하며 책을 열심히 읽는 등 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미카엘라와 키스 전달 장면에서 자기는 키스를 직접 해주지 않는 것으로 등장한다. 4막의 투우사 입장 장면은 합창단원만 보인다. 전반적으로 비에이토와 같이 신선하거나 과감한 해석도 없고 잠벨로나 맥비커처럼 자연스럽거나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벨저-뫼스트의 지휘가 빛나지만 쟁쟁한 카르멘 영상물 사이에서 우선순위로 자리잡기는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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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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