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바흐의 그리스 신화 비틀기는 희극 오페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아름다운 엘레느는 파리스와 헬레네의 만남을 가지고 장난 친 작품이다. 오펜바흐의 유머 코드야 말로 시대를 관통하는 B급 코드 아닐까. 독오 오페레타나 오페라 부파들이 코미디 영화라고 치면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는 SNL 콩트에 비유할 수 있겠다. 신화 속 인물들이 대놓고 망가지는 장면들로 가득차있다. 근엄한 제사장은 밑장빼기를 하다가 걸려서 도망치고 그리스의 왕들은 등장하며 광대 마냥 자기소개를 한다. 아가멤논은 비너스의 요구를 무시하는 메넬라오스에게 태연하게 '난 신들이 내 딸 이피제니를 원하면 바로 제물로 바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신화 개그 역시 SNL 스타일의 유머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오펜바흐의 특징은 바로 노래로도 개그를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에서 상황이 아닌 노래 자체로 웃음을 주는 경우는 돈 파스콸레의 듀엣 cheti cheti immantinente 처럼 빠른 속도의 파를란도를 사용하는 것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오펜바흐는 지옥의 오르페 파리 이중창이라든가 아름다운 엘레느에 나오는 콜로라투라를 이용한 개그, 팔세토 등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을 웃긴다. 독오 오페레타가 서정적인 아리아도 균형있게 배치한 것과 달리 오펜바흐는 시종일관 장난기 넘치고 반복적인 선율을 활용한다. 


슈타츠오퍼 함부르크에서 열린 이 공연은 르노 두세Renaud Doucet의 연출로 오펜바흐의 B급 유머 코드를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그리스 왕들의 우스꽝스러운 복장, 특히 불굴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2015년을 강타한 매드맥스의 내복 기타맨을 연상케한다. 엘레느가 파리스의 정체를 알고 '사과의 남자!!'라고 미친듯이 오버해가며 노래하는 장면에서 정글북의 모글리와 윌리엄텔이 사과를 들고 나 불렀냐는 듯이 등장하고 끝날때는 잡스 마저 등장한다! 메넬라오스가 제물로 바칠 흰 소는 자기 국민들이 지불할 거라고 당당히 말하자 메르켈이 유로 지폐를 한 수레 들고 입장한다. 이 연출가, 드립이 뭔 줄 아는 사람이다. 연출가가 안무까지 맡았기 때문에 율동도 음악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오페라 보면서 이렇게 개그 포인트가 많은 것은 처음이다. 


가수들도 훌륭하다. 대사가 많은 프랑스 오페레타라서 딕션과 악센트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가수들이 프랑스인이 아닌 것 치고는 훌륭한 편이다. 극장 전속가수들로 이루어져있어서 단역들의 노래 솜씨도 훌륭하다. 한국인 테너인 한준상 씨가 파리스를 맡았는데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아무래도 대사가 많은 배역이다보니 프랑스어 딕션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대사의 늬앙스는 능청스럽게 잘 표현해낸다. 또한 성악 기교가 들어가는 유머 포인트를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나중에 혹시 국립오페라단 공연 등에 캐스팅된다면 꼭 듣고 싶은 가수다. 


오펜바흐 오페레타 입문이라면 드세이가 나온 지옥의 오르페보다 이걸 더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이런 즐거운 오페라를 놓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아, 무대에 여성 상체 노출이 등장하고 성인 용품도 등장하니 가족 오페라라 보긴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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