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라우스의 자주 공연되지 않는 오페라 중 하나이다. 사실 '거의 공연되지 않는' 희귀 오페라에 가깝다.  DVD를 빌려볼 수도 있었지만 블루레이로 구입해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아 구입했다.


영상에는 공연 시작 전 도이체 오퍼의 건물을 보여준다. 2014년에 직접 간 적이 있어서 반가웠다. 도이체 오퍼 바로 맞은 편 큰 식당에서 혼자 점심과 저녁을 먹었던 게 생각난다. 도이체 오퍼 건물은 화려하다기 보단 수수한 현대식 건물이다]

도이체 오퍼는 공연 횟수에 비해 영상을 많이 내놓는 편은 아니다. 사실 직접 보았을 때 슈타츠오퍼와 어느 정도 퀄리티 차이가 느껴졌다. 합창단의 앙상블이 자주 무너져 좀 충격을 먹었었다. 아무래도 공연 횟수가 워낙 많다보니 그런 것 같다.


다나에의 사랑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목록 중 끝에서 두번째에 위치하는 작품이며 완성작 중 유일하게 슈트라우스의 생전에 초연되지 못한 공연이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잘츠부르크에서 초연할 예정이었지만 공개 리허설 이후에 히틀러 암살사건이 터지는 등 정세 불안으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호프만스탈의 작품을 기반으로 요제프 그레고르가 리브레토를 맡았다. 그레고르는 슈트라우스의 후기 오페라 3개를 맡은 리브레티스트인데 세 오페라 (평화의 날, 다프네, 다나에의 사랑) 모두 비교적 듣보에 해당한다. 부클릿을 읽어보니 다나에의 사랑이 실패한 이유 역시 호프만스탈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옮기지 못한 그레고르의 탓이 크다고 설명하더라.


작곡가들 마다 오페라에서 관통하는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나에의 사랑에서도 볼 수 있다. 다나에의 사랑은 여주인공 다나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인간인 미다스(마이더스)와 신 유피터(주피터)가 구애한다는 내용이다. 남녀가 바뀌긴 했지만 장미의 기사 역시 이런 삼각관계를 보여주며 아라벨라와 카프리치오도 비슷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다나에는 아버지 폴룩스(원래 신화에서는 아버지가 아니다)의 재정 파탄 때문에 미다스에게 거의 팔려가다시피 결혼하게 된다. 결혼 식 전에 미다스의 심부름꾼이 먼저 찾아오는데, 다나에는 이 심부름꾼의 친절한 모습에 반한다. 이 심부름꾼의 정체는 진짜 미다스로, 다나에와 결혼하는 미다스는 사실 유피터의 변신이다. 다나에를 얻고 싶은 유피터가 미다스에게 황금손 능력을 주고 필요할 때 마다 미다스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계약을 한 거다. 진짜 미다스는 유피터와의 계약 상 어쩔 수 없이 심부름꾼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 역시 다나에에게 반했다. 결국 유피터에게 다나에를 못 넘겨주겠다고 말하고 대판 싸운다. 그리곤 미다스는 다나에와 서로 사랑을 확인하지만 멍청하게도 절정의 순간에 다나에에게 키스를 하고 만 다나에는 생명을 잃고 황금이 되어버린다. 이 때 유피터가 등장하여 다나에에게 인간 미다스인지 신 유피터인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데 깨어난 다나에는 미다스를 선택한다. 분노한 유피터는 찌질하게도 미다스의 능력을 다시 빼앗고 거지로 만든다. 

메쿠어(머큐리)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유피터를 비웃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는 이제 미다스가 거지가 되었으니 다나에가 황금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았겠냐고 아직 기회가 남았다며 유피터를 꼬드긴다. 유피터는 다나에를 다시 찾아가지만 가난한 움막 속에서도 다나에는 미다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연출가는 이 작품을 오페레타에 가까운 그로테스크한 코미디라고 표현한다. 작품을 다 보고나니 상당히 공감가는 표현이다. 일단 신화 속 인물들을 묶어놓아 사랑 싸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를 떠올리게 한다. 신화를 소재로 삼은 것은 엘렉트라나 아리아드네, 좀 넓게는 이집트의 헬레나도 있지만 다나에의 사랑은 신화의 인물들을 뒤섞어 놓았다. 유피터가 다나에에게 황금비가 되어 구애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전혀 동떨어진 미다스를 추가했다. 유피터는 미다스에게 황금 손의 능력을 주고 대신 필요할 때마다 미다스로 변할 권리를 얻은 것으로 되어있는데, 원래 신화에서 미다스에게 능력을 준 것은 디오니소스다.

여기에 대놓고 오페레타 적인 요소는 바로 유피터가 추파를 던졌던 네 명의 인간 여인 세멜레, 알크메네, 에우로파, 레다가 등장하여 유피터의 사랑을 갈구한다는 점이다. 에우로파와 레다는 알았지만 세멜레와 알크메네의 신화는 몰라서 검색해봤다. 알크메네는 남편이 전쟁나간 사이 남편으로 변장한 제우스와 하룻밤을 보내고 헤라큘레스를 낳은 인물이고 세멜레는 제우스의 유혹으로 디오니소스를 낳았다. 에우로파는 제우스가 황소로 변신하여 납치했었고 레다는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접근했던 여인으로 헬레네의 어머니이다.  이렇게 제우스의 바람 대상이 된 여자는 헤라의 복수 때문에 보통 안좋은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사실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낳은 자식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에우로파의 경우 대륙명으로 남아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되긴 했지만.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 여자들이 유피터를 못 잊어서 안달이다. 어서 다시 백조로, 황소로, 남편으로, 구름으로 변신해서 찾아와달라고 애원한다. 원래 신화라는 게 다 그렇다지만 이 쯤 되면 저질 19금 이야기를 연상케한다. 파르지팔의 꽃처녀를 생각나게 할 만큼 극 내내 끊임없는 구애를 보여준다. 왜일까? 그런 여인들의 구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다나에만을 바라보는 유피터의 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네 명의 여인과 인간의 사랑을 선택한 다나에를 대비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신화를 비틀어놓아 유머러스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였을까.

다나에는 신의 권능 대신 인간의 감정과 죽음을 선택한다. 무언가 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미묘하고 모호한 흐름이 있다. 다나에가 처음 오페라에서 부르는 노래의 내용은 꿈에서 황금 비를 경험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다나에가 부자 남편을 만나는 것이 로망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해, 자신의 뜻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걸 괴로워하는 유피터는 보탄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음역대가 보탄과 같으며 이 공연에서 유피터를 맡은 바리톤 마크 델라반은 보탄을 자주 맡는 가수이기도 한다. 유피터는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인간 세계와 작별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를 슈트라우스 본인이 세상과 작별하는 것의 메타포로 본다고 한다.


음악적으로는 황금빛 낭만의 극치를 보여준다. 카프리치오가 비교적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차있 듯 다나에의 사랑 역시 황금빛으로 물든 무대만큼이나 광채가 쏟아지는 음악을 들려준다.



주연 세명 모두 무난한 노래를 들려준다. 다나에 역의 마누엘라 울은 작년 국립오페라단 화란인에 출연해 익숙한 가수다. 다만 유피터 역의 마크 델라반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딱히 듣고 싶지 않는 보탄이랄까.


앤드류 리튼의 지휘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전반적으로 집중력 있다거나 방향성이 확실히 느껴진다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키어스텐 함스Kirsten Harms의 연출은 깔끔하다. 거꾸로 메달아놓은 피아노가 인상깊은데 아직 그 뜻을 이해하진 못했다. 다나에가 황금 비가 내리는 꿈을 이야기할 때 하늘에서 '다나에의 사랑' 악보가 한 장씩 떨어지는데, 유피터를 슈트라우스에 직접적으로 비유하는 것 같다.  


친절하게도 부가영상까지 한글자막이 달려있다. 공연 퀄리티가 괜찮은 편이고 작품 역시 쉽게 접하기 힘든 만큼 구매해도 후회하지 않을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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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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