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예누파 공연.


야나체크는 20세기에 슈트라우스와 브리튼 만큼의 중요도를 가진 오페라 작곡가다. 확실한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예누파, 카탸 카바노바, 영리안 새끼 암여우, 마크로풀로스 재판, 죽음의 집으로부터와 같은 중요한 걸작들을 남겼다.


야나체크의 독특하며 매력적인 음악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오페라는 매력적인 극을 담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에서 카탸 카바노바를 제외하면 모두 야나체크 본인이 리브레토를 맡았다. 암여우나 마크로풀로스는 소재 자체부터 굉장히 특이하며 흥미로운 작품이다. 죽음의 집으로부터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예누파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연극에 가까운 작품이다. 내용 자체가 연극에서 다루는 전형적인 플롯이며 음악적으로도 군더더기 없이 극의 진행에 필요한 부분만 존재한다. 여기에 더 흥미로운 점은 예누파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페미니즘적이라는 것이다. 오페라와 페미니즘은 항상 거리가 있는 편인데, 특히 베르디나 푸치니의 여성 캐릭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예누파가 페미니즘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여성 등장인물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 등장인물의 비중으로 치면 수녀 안젤리카나 카르멜회의 수녀들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하지만 난 수녀들의 이야기가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 고립된 세계의 이야기에선 소수자로서의 여성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누파는 다르다. 봉건적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모든 고통을 오페라 안에서 보여준다. 코스텔니츠카는 남편에게 얻어맞고 살고, 자기 자식도 아닌 예누파를 자기 딸로 키운다. 예누파를 둘러싼 두 남자 슈테바와 라차는 억압적인 남성의 두 모습을 보여준다. 슈테바는 술꾼이며 다른 여자와 노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라차는 예누파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뺨에 상처를 낸다. 아름다운 외모를 잃은 예누파는 슈테바에게 버림받으며, 슈테바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로서 라차에게도 버림받는다. 코스텔니츠카는 자신의 딸에게 자기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눈물을 머금고 예누파의 아기를 얼어붙은 강에 버린다. 이토록 여성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오페라는 없을 것이다.


예누파는 확실한 드라마를 갖춘 연극이다. 이 점이 영리한 새끼 암여우나 죽음의 집으로부터와 다른 점이다. 영아 살해라는 끔찍한 범죄를 극의 한가운데 두고, 모든 것을 설득력있게 표현한다. 질다나 초초상의 희생을 답답하게 바라보며 도대체 저 인물은 왜 저러는 것일까 온갖 분석을 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예누파에서는 모든 것이 확실하게 표현된다. 플롯의 완성도와 현실성으로 치면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는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사실적이기론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가 있지만 인물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예누파가 훨씬 정교하다.


도이체 오퍼의 공연은 아주 훌륭하다. 지휘를 맡은 도날드 러니클스에게 별 기대를 안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훌륭했다. 오른손 대신 왼손에 지휘봉을 든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아주 밀도 있으며 단단하고 폭발적인 반주를 들려준다. 베를린필 객원 평이 좋지 않다는 카더라 통신만 들었는데, 도이체 오퍼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가수들도 훌륭하다. 타이틀 롤을 맡은 미하엘라 카우네Michalea Kaune도 훌륭하지만 코스텔니츠카를 맡은 제니퍼 라모어Jennifer Larmore가 훌륭하다. 예전에 본 영상에서 에바 마튼의 폭발적인 노래에 기겁을 한적이 있는데 그 정도 까진 아니더라도 아주 뛰어난 가창을 들려준다. 여기에 체코어 발음도 매우 명확하다. 내가 체코어를 모르니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단어가 '명확'하게 들리는 것은 분명하다. 처음에 당연히 체코출신 가수인줄 알 정도였다. 사실 가수가 어느 정도 이상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경우에 딕션의 명확도는 언어와 상관없이 그 가수가 일반적으로 모음과 자음을 얼마나 정확하게 소리내는가에 달려있는가 싶다. 발음도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해야할까. 

라차를 맡은 빌 하르트만은 데이비스 마술피리에 타미노로 출연했던 가수인데, 아직 영상물은 많지 않지만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갖춘 가수이다. 마술피리에서 대변인이 등장하는 대목인 "Die Weisheitslehre dieser Knaben"에서 굉장히 극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이 예누파 공연에서도 라차의 다양한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크리슈토프 로이의 연출은 성공적이다. 연극에 집중시키는 깔끔한 무대이며, 무대벽을 이동시켜 실내와 야외, 그리고 마지막의 예누파와 라차의 내면적인 공간까지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예누파가 꽃다운 시절인 1막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 라차는 작업복인 반면 슈테바는 양복을 차려입은 것으로 표현한 것 역시 극을 잘 전달해준다. 코스텔니츠카를 강조한 점 역시 마음에 든다. 사실 예누파도 중요하지만 극중 임팩트로 보면 코스텔니츠카가 더 중요한 배역이다.


아 그런데 비디오 감독이 브라이언 라지다. 어째서! 어째서 바로 전에 본 영상은 1980년에 찍은 건데 2014년에 와서까지 감독이 바뀌질 않는 거죠. 비교적 무대를 좁게 쓰기 때문에 라지의 단점인 좁은 시야가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답답한 느낌이 들때가 많다. 


한글자막에 오타가 많다고 소개돼있어 걱정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말 끝의 '네'가 '너'로 돼있다거나 한번정도 화자를 헷갈려 존대말과 반말이 섞여있다든가 얼음이 어름이라고 돼있다든가 하는 사소한 부분으로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이걸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름 야나체크 팬으로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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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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