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비오 단토네가 자신의 바로크 오페라 실력을 훌륭히 증명해냈다.


파리넬리 덕에 유명한 헨델의 작품이다. '울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Lascia ch'io pianga는 교과서에 수록될만큼 유명한 노래다. 나도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부르며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교과서에 수록된 여러 오페라 아리아 중 내가 유일하게 배워본 아리아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곡은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카운터테너가 부르는 곡은 아니다. 리날도 역 자체는 카스트라토, 혹은 카운터테너를 위한 역이 맞지만 이 곡을 부르는 건 리날도가 아니라 리날도의 연인인 알미레나다. 알미레나는 소프라노로 극 중에서도 여자이니 카스트라토가 이 곡을 오페라 무대에서 부를 일은 없다. 


처음 접하는 헨델 오페라를 듣는 것은 내겐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연출이 굉장히 재치있고 연주와 노래 역시 매우 뛰어난 편이라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바로크 오페라, 특히 헨델 오페라에서 연출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줄거리를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 라는 큰 그림을 설계해야하며 동시에 각각의 아리아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표현해 내는가다. 빈 슈타츠오퍼의 알치나는 전자를 해결하진 못했지만 후자를 괜찮게 해결해냈다. 메트의 로델린다는 둘다 포기하고 그저 무대 장식으로만 존재하는 연출이다. 최근 본 크리슈토프 로이의 시오도라의 경우에는 전자를 잘 표현해냈다.


카슨의 연출은 큰 그림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리날도 전체를 고등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한 남학생의 몽상 처럼 표현해낸 것이다. 서곡이 흐를 때 괴롭힘을 당하다가 선생님들이 들어왔는데도 오히려 자기만 더 혼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곤 시험을 보는데 시험 주제는 중세 십자군의 목적이 종교적인 것인지 정치적인 것인지 논하는 것인데, 진짜로 이 교실에 십자군이 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해보고, 그 상상이 무대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극 전체를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바꾼다. 어차피 등장인물들이 암만 무게잡고 이야기해봤자 리날도의 이야기가 별볼일 없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실제 누구나 학창시절에 해봤을 법한 상상을 무대 위에 펼쳐놓으며 리날도라는 인물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상상 속에서는 용맹한 십자군 전사이지만, 동시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아르미다에게 알미레나를 납치 당하는 장면에서 리날도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은 원래 황당했겠지만 여기서는 충분히 그럴싸하게 보인다. 특히 뒤로 갈 수록 유머 포인트가 늘어난다. 십자군 기사들이 아르미다를 물리치기 위해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웬만한 오페라 부파보다도 유쾌하다. 


연주 역시 훌륭하다. 오타비오 단토네가 지휘하는 계몽시대 오케스트라는 영국적인 깔끔한 앙상블과 이탈리아적인 폭넓은 다이나믹을 동시에 구사한다. 이 정도면 바로크 오페라 끝판왕인 크리스티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느린 음악이든 빠른 음악이든 시대주의 연주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준다. 단토네의 경우 아바도 브란덴부르크에서 하프시코드도 많고 음반 작업을 많이해서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오페라 지휘 까지 이렇게 훌륭하게 해낼 지 몰랐다. 캐스팅도 훌륭하다. 특히 리날도 역의 소니아 프리나, 아르미다역의 브렌다 라에Brenda Rae, 아르간테 역의 루카 피사로니가 빛난다. 소니아 프리나의 경우 헨델 오페라에 최적화된 콘트랄토 목소리를 들려준다. 바지 역할 들이 대체로 목소리나 표현등이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지만 프리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테아트로 레알 알치나를 볼 때 직접 보지 못한 게 한이 될 정도다. 배역의 비중이 크진 않지만 아네트 프리시Anett Fritsch역시 울게 하소서를 비롯해 새의 아리아 등을 세련되게 소화해낸다.




오페라 세리아는 대체로 내용이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원어 가사를 보는 게 더 편할 때가 많은데, 아쉽게도 이탈리아어 자막이 누락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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