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시리즈로 아울로스에서 발매한 영상물이다. 더 이상의 플레밍은 naver라고 외치고 싶지만 카슨의 연출을 포기할 순 없었다. 


루살카를 볼 수록 이 작품이 상당히 어려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의 어떤 면도 직설적이지 않다. 그냥 동화의 구현이라고 하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다. 동화의 요소들은 표면에 나타나는 것보다 무언가의 메타포일 때가 많아서일까.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나 야나체크의 새끼 암여우 같은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들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황당하거나 초점이 없는 이야기가 된다. 


내게 루살카는 거의 모든 부분이 수수께끼처럼 난해하다. 처음 등장하는 세 명의 숲 요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물론 가장 단순한 대답은 체코 전설을 무대 위로 옮겨놓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째서 독창자 세명으로 이루어진 이 인물은 물의 요정이 아니라 숲의 요정인가? 루살카와 보드닉의 대사에서 자매들이란 표현이 많이 등장해 이 세명의 요정 역시 루살카 처럼 물의 요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숲의 요정이다. 어째서 이들은 보드닉을 놀리고 있는가? 라인골트의 세 라인 처녀를 오마주하기 위함이라면 물의 요정으로 두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반대로, 왜 대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루살카의 자매들, 즉 다른 물 요정들은 단 한번도 무대에 직접 등장하지 않을까? 


외국 공주는 이보다 더 난해한 인물이다. 처음에 접근할 때부터 왕자에 대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분노에 가까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보드닉이 나타나 왕자에게 저주를 내리고 나서는 지옥의 무저갱으로나 가버리라며 저주한다. 다른 사람들은 예치바바에게도 덜덜 떠는데 눈 앞에서 보드닉이 나타나 왕자에게 저주를 걸고 기절시키는데도 공주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되려 기다렸다는 듯이 저주를 내린다. 왕자에 대한 관심보다 순전히 파티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에 왕자를 유혹했다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왕자를 저주할 것 까지는 없지않나. 순전히 왕자의 파멸, 혹은 루살카의 파멸을 노리고 행동했다는 건데 이 정도면 거의 이아고 급이다. 

이 인물을 이해하는데 힌트가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이 역이 체코어로 Princess가 아니라 Duchess, 즉 여공작 혹은 공작부인에 가깝다는 점이다. 체코어에서도 공작 부인과 여공작을 같은 단어로 쓰는지 모르겠지만 왕자를 유혹했다는 걸로 미뤄봐서 미혼이라고 추정한다면 여공작일 확률이 높다. 즉, 그냥 귀한 집 딸 정도의 공주가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통치할만큼 높은 직위의 강력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에 왕자를 버리는 것은 나약한 인간에 대한 조롱일지도 모른다. 아 물론 여공작이 되려면 공작 딸로 태어나야하긴 하지만... 여튼 왕자는 Princ라고, 외국 공주는 Cizí kněžna라고 표기한 이유에 대한 해설을 읽어 잠깐 소개해보았다.


루살카가 왕자를 찔러죽일 것을 포기하여 결국 도깨비 불이 되고, 결국 왕자와 죽음의 키스로 끝을 맺는다는 것 역시 바그너의 오페라 만큼이나 심원한 결말이다. 



오페라를 보기 전 카슨의 연출이 이 궁금증에 대한 해결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기대했던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카슨 나름의 논리적인 연출은 상당히 흥미롭다.


카슨의 연출은 세련됐다. 루살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대비시키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1막 처음은 무대 상층부에 호텔 침실과 침실의 모든 것을 상하 반전시킨 거울상을 그 바로 밑에 붙임으로써 가상의 수면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보여준다. 그 밑에 있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물 속에 있는 인상을 준다. 루살카가 약을 먹고 사람이 되었을 때 수면 위의 침대가 무대 높이로 내려오면서 루살카가 수면 위 인간의 세상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막의 거울상이 XZ평면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면(Z를 무대 깊이라고 했을때) 2막의 거울상은 YZ평면으로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무대가 좌우로 대칭 양분되며, 무용수나 기타 조역들 역시 반대편 공간에 대역이 등장하여 인물까지도 가상의 거울상을 만들어낸다.

외국 공주가 등장하는 것 역시 반대편 공간에서 루살카와 같은 옷, 같은 머리를 한 인물이 등장하고 루살카는 다른 공간에 혼자 남겨지는 것으로 표현해낸다. 겉보기에 루살카와 공주의 차이점은 없다. 다만 두 사람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1막에서 루살카는 다른 세상으로 완전히 넘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루살카에겐 없고 공주에게 있는 것, 가사에선 그 차이가 '인간의 열정'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솅크는 공주에게 붉은색 드레스를 입혀 대비시킨다. 하지만 카슨은 루살카와 공주의 외견적인 차이를 의도적으로 없앴다. 남은 차이는 오로지 자신이 위치한 세계일 뿐이다.


그렇다면 루살카와 왕자가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XZ도 아니고, YZ도 아니니 XY평면으로 나뉘어진 세계일 것이다. 3막이 되면 그 전까지 보았던 침대를 위에서 바라보는 듯 하다. XY 평면을 거울면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무대 안쪽과 객석쪽에 만들어야 하니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카슨은 시점을  침대의 수직 위로 바꿈으로서 이를 표현해낸다. 처음 예치바바는 침대에 누워있는 듯 노래하지만 다른 모든 등장인물은 그냥 무대에 서서 연주하니 앞선 두 막과 달리 완전히 왜곡된 공간이다. 이 이도저도 아닌 공간이야 말로 도깨비불이 된 루살카의 세계다. 이 곳에서 루살카와 왕자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게 내 해석인데, 안타깝게도 3막 마지막에 둘이 재회하는 장면은 그냥 정상적인 각도인 1막으로 돌아온다. 카슨에게 달려가서 그 각도를 유지해야 더 논리적이지!!! 라고 따지고 싶지만, 내가 틀렸겠지 뭐. 1막에서 둘의 첫만남 장면과 대비하고 싶었던거일까, 아니면 마지막 장면을 루살카의 꿈이라고 생각한 걸까.



가수들은 그럭저럭 괜찮다. 플레밍은 오히려 최근 메트 때보다 더 괜찮다. 실제로 발음도 메트에서 한 것보다 더 신경써서 한다. 달에게 부르는 노래에서 Řekni의 발음에서 혀트릴을 나름대로 표현하는데, 메트 공연에서는 그냥 무시하고 편하게 발음한다. 10년의 세월이 이렇게 사람을 건성으로 만드는구나.


제임스 콘론의 지휘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전반적으로 심심하고 극적인 효과가 부족하다.


박종호 시리즈로 나와서 한글자막이 달려있다는 점은 좋지만 내지가 별 도움이 안된다. 그냥 개인 감상과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을 위한 정보 정도밖에 없으니 말이다. 요즘 영상물 내지를 꼼꼼히 읽고 있어 그 차이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원래 아트하우스 영상에 포함돼있을 글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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