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롱비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

 

학회가 LA 위성도시인 롱비치에서 있었다. 공연 뭐 있나 찾아보는데 일년에 정기연주회를 4번 정도 하는 롱비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시즌 마지막 공연이 딱 학회 바로 전날 있는 것 아닌가. 어이구야 나 온다고 또 이렇게 딱 날짜 맞춰서 공연을 잡아주시고…

 

프로그램은 왕궁의 불꽃놀이와 베9.

 

공연장은 학회장이 있는 컨벤션 센터 시설 중 일부였다. 음향은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 우리나라 문화회관식 부채꼴 형태의 공연장으로 상당히 컸다. 여기에 유럽 오래된 극장마냥 출입구가 양 사이드에만 있고 중앙 통로는 조금도 없는 형태였다. 그래도 미국인들의 체형을 고려해서인지 앞뒤 간격은 꽤나 넓은편. 미국에서 간 세 공연장 모두 이렇게 중앙통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형태였다.

연주 수준은 뭐 기대했던 대로 그냥저냥이었다. 롱비치에 교향악단이 있다는 것 자체부터 신기... 음향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으니 그냥 공연장 잘 만난 럭키 대전시향급.

왕궁의 불꽃놀이는 시대연주 느낌이 조금도 나지 않는 육중한 노잼 연주였다. 동쪽으로 비행기를 타면 시차적응이 훨씬 힘들다는 걸 몸소 깨달으며 1부는 푹 잘 수 있었다. 사실 2부도 절반은 잔 것 같다 

뭐 그냥저냥 별 감흥없는 공연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4악장 도입부에서 평생 잊지 못할 희귀한 해프닝이 생겼다. 오케스트라 투티 도입부가 끝나고 첼로베이스가 레치타티보를 시작하려는 그 찰나였다. 이 때 갑자기 베이스 가수가 벌떡 일어서는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잠이 확 달아났다. 내가 지금 너무 졸아서 오케스트라 파트를 놓치고 지금이 두번째 도입부였단 말인가? 아니면 미국에서는 베토벤 교향곡도 반복 비스무리한 건 커트하나???

지휘자가 다시 예비박을 주고 곡을 이어나가는 순간 베이스 가수와 첼로베이스가 동시에 레치타티보를 연주했다. 그리고 베이스 가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뻘줌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객석에서 웃음이 조금 터지고 응원의 박수도 이어졌다.

하… 베이스 솔로가 자기 들어올 파트를 첼로랑 헷갈릴 수가 있다니… 이건 우리 한반도에선 상상도 못할 일인데… 오케스트라 파트가 한두마디도 아니고 몇분이나 되는데 그걸 다 까먹고 자기가 일어나서 부를 수 있나ㅋㅋㅋㅋㅋ 그리고 지휘자는 베이스가 일어난걸 뻔히 보고서도 왜 아무 제지를 안하는건데ㅋㅋㅋㅋ 

 

또 하나 놀라웠던 건 그럭저럭 괜찮은 연주가 모두 끝나자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성을 보내는 것이었다. 사실 기립박수 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게 한국 관객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관객은 그 급이 달랐다. 테드 영상을 보거나 미국 발표 영상 같은 걸 보면 강연같은 거 끝나고 기립박수를 하는 게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뭐 연출 같은 건가 했었는데 그게 진짜 문화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립박수를 쳤다. 또 하나 다른 건 브라보를 외치는 관객이 없고 환호성이 많이 나왔다. 그러고보면 유럽이나 일본에선 클래식 공연장에서 환호성이 나오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한것 같은데 우리나라 관객문화가 유럽과 미국의 중간쯤 되는 것일까.

 

공연 시작 전에 지휘자가 나와서 5분도 넘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미국 특유의 문화였다. 오케스트라 후원자들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감사인사를 전하고, 1년 동안 고생해준 단원들과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여기 함께해준 관객들이 아니었으면 우리 오케스트라는 존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블라블라 오늘 공연이 끝나고 만족스러우시면 로비에  오케스트라 후원회 관련 홍보자료들을 비치해두었으니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블라블라

 

공적 지원이 적은 미국 사회에서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극장이 민간 후원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특히 상임 지휘자의 역할 중 중요한 파트가 바로 후원금 모금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들었었다. 연주 자체는 원래 기대하지 않았으니 이런 미국 특유의 문화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연장에 온 보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