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오페라 극장들은 위대한 소비에트 오페라가 등장하기만을 기다렸고, 쇼스타코비치가 그 자리를 꿰찼다. 스탈린이 '동무들, 이 작품 나만 불편해?'라고 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 작품을 먼저 본 친구가 극찬했던 게 생각났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작품의 모든 부분이 작곡가의 천재성을 뿜어내고 있다는 내용의 평이었다.  그러고 나서 2년이 지나서야 이 작품을 접했지만 강력하게 공감한다. 이 작품이 스탈린에게 밉보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쇼스타코비치가 오페라 작곡을 계속했다면 20세기를 씹어먹는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20세기 오페라가 가지는 매력은 폭 넓은 음악 어법이다. 브리튼이나 부조니의 작품이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쇼스타코비치스럽지만 표현의 폭 자체가 19세기의 작곡가들과 다르다. 여기에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의 핵심으로 아이러니를 선택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아이러니가 극에서 가질 수 있는 힘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보리스가 불륜을 목격하기 전에 부르는 노래나 경찰들이 카테리나를 체포해가는 장면, 세르게이와 소냐가 마지막에 노래하는 장면은 극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독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얀손스와 쿠세이의 조합은 이 작품에 안성맞춤이다. 러시아어권 출신이며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정통한 지휘자 중에, 얀손스 만큼 이 작품의 폭력성을 세련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특히 유독 목관의 다채로운 활용이 많은 이 곡에서 콘세르트헤보우의 음색은 특히 인상적이다. 간주곡에서 의도적으로 무대 연출을 없애 관현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는데, 특히 카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케스트라는 전혀 비춰주지 않고 얀손스의 모습만 잡기 때문에 특이한 인상을 준다. 지휘자 얀손스를 기록한 특별한 영상물로 남을만 하다. 

마틴 쿠세이 역시 마찬가지다. 쿠세이는 다른 연출에서 폭력성과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데 므첸스크는 이미 작품 자체가 온통 그런 요소로 점철되어있다. 과장 좀 더하면 쿠세이에게 연출을 맡기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로 훌륭하다. 

러시아 색채를 삭제하여 어떤 사회에도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탈출구가 없는 무대, 카테리나가 죽고 나면 지하로 내려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듯한 4막의 무대 역시 인상적이다. 4막에서 카테리나가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죄수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 3막에서 세르게이가 경찰들을 뇌물로 회유하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 역시 쿠세이의 훌륭한 판단이었다. 특히 뇌물 씬은 앞의 경찰 합창이나 뒤의 세르게이 변심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기에 리브레토에 없다는 것이 더 어색할 정도다. 그 외에 관현악 반주를 카테리나의 소리없는 비명으로 만든 것 역시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출연진의 노래도 모두 훌륭하다. 팔레스트리나에서 실망스러웠던 크리스토퍼 벤트리스는 세르게이로는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지노비 역의 루도비트 루다Ludovít Ludha 역시 배역의 찌질함과는 다르게 멋진 노래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외로움과 분노를 절절하게 표현해내는 진정한 '레이디 맥베스' 에파-마리아 베스트브룩Eva-Maria Westbroek을 빼놓을 수 없다. 준수한 가창에 훌륭한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60분이 넘는 제작 영상이 들어있다. 그 중 절반은 아마 가수들의 배역 설명 + 줄거리 설명 + 그 부분 공연 영상이라 길이에 비해 새로운 게 많진 않지만, 얀손스나 쿠세이의 인터뷰는 꽤 재미있다. 네덜란드 오페라의 다른 다큐멘터리에 비하면 신선함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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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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