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내한은 여러모로 이슈였다. 얀손스의 인기, 그리고 바방향의 명성, 흔치 않은 레퍼토리 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다. 베를린필이나 빈필과 달리 바방향의 명성은 딱 적당하다. 클래식 듣는 사람이라면 다 알지만, 그렇다고 베필 빈필 처럼 너무 유명해서 일반인들까지 달라붙을 공연은 아니다. 여기에 김영란 법 효과로 C석 2만5천원이라는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관심 가는 공연이었지만 예매는 안했다. 아마 일반 오픈 날이 훈련소 가는 날이었던 것 같다. 그 뭐랄까 계륵이랄까. 내가 요즘 해외 오케 내한에 참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나마 간 것이 롯데 정명훈 라스칼라와 진먼 NHK향이었다. 사실 둘 다 프로그램 보고 갔다. 아 밤베르크 블롬도 예매했다가 못 보러갔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은 정말 끌렸다. 알프스 교향곡이라니. 쾰른 귀르체니히가 왔을 때 독일 교향악단의 첫 한국 알프스 교향곡 연주라고 홍보했던 게 기억난다. 그게 2014년 초였나. 당연히 예매한 공연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가슴아픈 읍읍한 사정으로 대가님께 표를 양도했었다. 이번엔 그런 사정 까진 아니지만 훈련소 들어가는 날 아침에 티켓을 예매할 기분이 아니긴 했다. 운이 정말 좋게도 샤이보이의 은혜로 티켓을 받았다. 


생각나는 대로 써가니 이상한데, 사실 예매를 망설였던 건 내가 얀손스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어서 그렇다. 얀손스 바방을 본 게 베토벤을 들고 왔을 때였다. 내 기억으론 6번 7번을 본 것 같다. 체크하기 귀찮다. 여튼 난 그 7번이 맘에 안 들었다. 남들은 역대급 베토벤 연주였다고 미친 듯이 열광했지만 난 별로였다. 일단 1악장 리듬을 제대로 연주하지 않아서 싫었고 그 뒤도 마찬가지였다. 


얀손스의 지휘는 감정의 선을 넘지 않는다. 프레이징은 정갈하다. 소리는 언제나 부드럽고 아름답게 세공된다. 아름다운 선율이 충분히 노래할 수 있도록 템포에 여유를 둘때가 많다. 포르티시모 투티는 철저하게 계산되고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다. 얀손스의 음반이나 공연을 많이 들어본 건 아니지만 나의 인상비평은 대체로 이렇다.


오늘 연주도 결국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하이든. 현대 악기를 쓰는 오케스트라가 예당 규모의 홀에서 연주하는 하이든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흠잡을 것이 없는 연주이긴 했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질감과 앙상블은 뛰어났고 얀손스의 단아하며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은 이 작품을 연주하는데 이보다 더 물 흘러가는 해석이 어디있겠냐 라고 묻는 듯 했다. 4악장의 타악기 퍼포먼스 역시 귀여웠다. 하지만 예컨데 내가 토마스 페이의 하이든 연주에서 들을 수 있는 짜릿함과 치열함은 없었다.


 알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슈트라우스의 관현악 작품이다. 오버 좀 하자면 이 작품을 처음 들었던 순간 바로 사랑에 빠졌다고 할 만하다. 내가 노키아 핸드폰을 처음 샀을 때 설정했던 알람 소리는 '일출', 문자 소리는 '폭포에서', 전화 소리는 '정상에서'였다. 보통 매너모드로 했기에 일출 빼면 들을 일이 별로 없긴 했지만 가끔 문자가 왔을 때 화려하게 빛나는 오케스트라는 정말로 행복한 소리였다. 가끔 전화 벨이 울리면, 오보에 솔로를 더 듣고싶어서 전화를 안 받고 기다리는 순간도 꽤나 괜찮았다.


잡소리가 길었다. 이 곡을 잘 연주한다는 건 무엇일까. 악보에 있는 음표를 다 쏟아낸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바방향은 뛰어난 오케다. 첫 밤에서 바순의 소리, 아니 그 진동은 폐부를 찌른다고 할만한 것이었다. 루체른에서 본 팀파니 주자의 소리는 묵직했고, 라몬 오르테가 쿠에로의 오보에 솔로는 환상적이었다. 플루트와 클라의 소리는 또 얼마나 단아했으며 금관은 필요할 때 언제나 잘해줬다. 트럼펫이 몇번 실수를 한 건 인간적으로 그냥 넘어갈 일이었고 호른 수석의 마지막 솔로는 상당히 경이로웠다. 현악기 수석들의 솔로는 여느 솔리스트들 보다도 더 매력적이었고 현파트 모두가 안정적이었다. 초반의 바이올린의 고음 음정 역시 기가 막힐만큼 정확했다. 특히 정상에서의 선율 처리는 분명 아주 아름다웠다. 그 순간만큼은 얀손스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 어째서 난 이 공연이 아쉬울까. 내가 얀손스 스타일에 별다른 매력을 못느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얀손스는 비쉬코프 처럼 음악을 완전히 격정과 엑스터시의 영역으로 놓지도 않고, 하이팅크 처럼 음악이 자연스럽게 분출하도록 풀어주지도 않는다. 자신의 그림 안에서 각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이끌지만 그 그림 밖으로 나가는 걸 허용치 않는다고 할까. 하이라이트에서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을 위해 아고긱을 쓰지만 그렇다고 과장된 클라이맥스는 항상 피했다. 단순히 템포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이나믹에서도 선을 넘는 것, 사람의 가슴을 뒤흔들기 위해 하나의 음을 쥐어짜내는 순간이 없었다. 가끔 한번쯤 광포하게,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울부짖음을 들어보고 싶은데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만드는 사운드 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웠냐, 그것도 글쎄다. 또 하나 근거없는 인상비평을 추가하자면 전체적으로 소리가 하나의 지향점을 가지고 모인다기 보다는 개별적인 파트가 퍼즐을 맞추듯 끼워나가는 느낌이었다. 


악보를 한번 보고 가긴 했지만 단순한 인상비평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요즘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이 참 힘들다. 한 3년 전만 해도 공연 보기 위해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젠 공연을 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찍고 조퇴를 신청해야한다. 내가 공연을 보러가느라 못하는 일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작품을 실연에서 들어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엔 별생각 없이 너무 공연을 많이 다녔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얼마나 잘하는 지는 별로 안 궁금하다. 자신들이 이렇게 예쁜 소리를 뽑아낼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게 끝이라면, 난 딱히 공연장을 찾고 싶지 않다. 예당 3층에서 듣는 오늘 트럼펫의 소리보다, 그냥 헤드폰으로 듣는 카라얀의 모든걸 쏟아내는 소리가 더 황홀하다. 오늘 얀손스가 들려준 하이든이 정갈하고 단아하고 르네상스 조각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하더라도 난 페이가 연주한 하이든의 도전적이고 패기있는 소리가 훨씬 마음에 든다. 아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핵노답 음반충 꼰대가 된 기분이다. 


원래 공연을 들으러 갈 땐 내가 좋아하는 해석을 연주하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의 해석은 무엇인지 들으러가야하는데, 그게 안된다. 아니, 얀손스의 해석이 별로 마음에 안들었던 거고, 사실 맘에 안들 걸 어느 정도 알면서 갔던 게 큰 것 같다. 아 물론 얀손스의 해석이 수준낮은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그냥 하루의 많은 걸 포기하고 공연장을 찾았을 때 기대하는 음악은 아니었다. 


이상 공연 평을 가장한 잡소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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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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