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를 매력적으로 이끌어낸 음악, 비야손의 연출이 보여주는 가능성


제비는 푸치니의 작품 중에 아마도 가장 덜 사랑 받는 작품일 것 같다. 거의 공연이 안되는 마농 레스코 이전 작은 예외로 했을 때, 제비의 위치는 상당히 애매하다. 두 히트작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사이에 껴있는 세 작품, 서부의 여인과 제비와 삼부작을 비교해보자. 서부의 여인은 나름 앞의 성공작들의 연장선 상에 위치해있고 삼부작은 새로운 오페라를 열어나가는 실험적인 면을 앞세웠다면 제비는 오페라라고 하기에는 좀 가볍고 오페레타라고 하기에는 충분히 가볍지 않은 작품이다. 


제비를 처음 본 건 게오르규와 알라냐가 나오는 영상물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제비는 극적 구조에서 뚜렷한 갈등이 부족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음악이 거의 마약 수준으로 아름답다. 푸치니가 선율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마치 백종원이 요리에 설탕을 쏟아붓는 느낌마저 든다. 너무 달달해서 누군가 비판할지도 모르지만 그 달콤함에 당장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느낌 말이다. 



1막 초반부에 등장하여 극 중에서 선율이 몇번 더 등장하는 마그다의 아리아 '도레타의 꿈'이다. 바이올린 독주와 함께 노래하는 대목은, 듣는 순간 숨이 막혀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어떻게 이런 숨막히는 달콤함을, 오페라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에 한번 등장할까말까한 이 놀라운 분위기를 극 초반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 거지?


음악이 극을 압도한다는 표현은 제비에 딱 어울린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랑 이야기가 이 처럼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는 건 순전히 음악의 힘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비에는 트라비아타와 보엠과의 공통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마그다는 파리의 파르티잔이다. 이 때 자기 스폰서의 친구 아들인 루제로가 등장하고, 루제로는 파티장에서 변장한 마그다와 사랑에 빠진다. 마그다의 스폰서가 파티장에 들어와 마그다를 데려가려고 하지만 마그다는 루제로와 남기를 선택한다. 둘은 행복하게 살지만 루제로가 결혼하자며 부모님께 말씀드려놨다고 하니 마그다가 자신의 과거를 용서받지 못할 거라며 루제로를 떠난다. 

이 줄거리 구조는 분명 트라비아타의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 또 다른 커플인 시인 프루니에와 마그다의 하녀인 리제트는 진지한 사랑에 빠진 마그다-루제로 커플과 대비되는 조금은 가벼운 커플이다. 마치 보엠의 마르첼로와 무제타 처럼 말이다. 


가수들 중에는 단연 디나라 알리에바(Dinara Alieva, Динара Алиева 디나라 알리예바라고도 쓸 듯) 가 압권이다. 이 영상물이 DELOS라는 조금 낯선 레이블에서 나온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 가수가 여기 소속인 듯 하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가수로 네트렙코를 연상시키는 어둡고 독특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이렇게 다크 포스 풀풀 풍기는 가수도 참 오랜만이다. 목소리가 정말 독특한데,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카리스마가 정말 장난 아니다. 여기에 외모도 약간 네트렙코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흐보랑 같이 부른 트로바토레 듀엣

루살카 달에게 부르는 노래.


여튼 알리에바 혼자 극을 완벽하게 장악해낸다. 목소리도 독특한데다가 노래의 안정감, 여기에 마그다에 어울리는 도도한 연기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루제로 역의 테너 찰스 카스트로노보Charles Castronovo는 리릭 테너라는데 리릭 보다 좀 무게감이 있는 목소리다. 무난하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알리에바와 같이 특별한 가수라는 인상은 없었다. 프루니에 역의 알바로 삼브라노Alvaro Zambrano는 일종의 슈필 테너 같은 이 역할을 맡기에는 이탈리아어 딕션이 맛깔스럽지 못해 아쉬웠다. 찾아보니 칠레 출신이다. 


로베르토 리치 브리뇰리Roberto Rizzi Brignoli의 지휘는 감각적이다. 휘몰아치진 않지만 풍성하며 중요한 순간에 부풀어 오른다. 제비의 음악에 아직 익숙한 편이 아니지만 반주가 상당히 잘 세공돼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야손의 연출을 보는건 사랑의 묘약 이후로 두번째다. 이전 사랑의 묘약이 너무 번잡하고 어수선했던 반면 이번 작품은 훨씬 더 무게감있다. 초현실주의 적인 무대 미술도 상당히 아름답고 가수들의 연기지도가 특히 훌륭하다. 마그다와 루제로가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부터 두 가수의 집중이 전혀 안끊기고 쭉 이어간다. 비야손이야 원래 연기 잘 하기론 오페라 가수 중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으니 분명 그 영향이 클 것 같다. 최근 들어 비야손이 가수로 나오는 영상보다 연출로 나오는 영상이 더 늘어나고 있는데 점점 기대가 된다.


블루레이가 하나 밖에 없던 이 작품에서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타이틀이 등장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디나라 알리에바가 앞으로 더 떠오를 것이란건 확실하기에 이 제비를 놓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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