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상물이 안나온 작년 세비야의 이발사.


다시 읽으니까 혼자 있어서 어지간히도 외로웠나 보다. 

사진 욕심이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맑은 날 글라인드본을 즐겼고 사진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상당히 뿌듯하다. 


Enrique Mazzola를 엔리케 마졸라라고 썼는데 마촐라라고 쓴는 게 맞는 것 같다. 






전날보다 날씨가 맑았다. 글라인드본의 드넓은 잔디밭. 살짝 인정하기 싫지만 드레스 코드 덕에 글라인드본의 분위기가 특별해지는 것 같긴하다. 사진에서 저 사람들이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고 있었으면 좀 깼겠지. 찍고보니 관객들 마저 이 비현실적인 세상의 일부가 된다. 




여기가 어디냐고? 글라인드본 기념품 가게다. 도대체 왜 오페라 하우스 기념품 가게에서 보석을 팔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가게 대부분의 상품은 넥타이, 스카프 등의 장신구다. 그 와중에 단연 눈에 띄는 건 1250파운드 짜리 <장미의 기사> 은장미다. 혹시 슈트라우스 오페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프로포즈 할 거라면 가장 완벽한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향기가 나게 만드는 것도 필수. 















글라인드본 영상에서 보면 아티스트들 인터뷰 하는 오르간 룸이다. 자유롭게 들어가서 소파에 앉아 쉴 수 있다. 이날 인터미션 때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여기서 죽치고 있었다. 






명가수 다음에는 이발사. 생각해보니 직업 이름을 제목으로 단 제일 유명한 두 오페라가 아닐까 싶다.




글라인드본 셔틀은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패턴이다. 공연이 5시 40분 시작인데 루이스 기차역에서 글라인드본으로 가는 셔틀은 3시에 출발한다. 도착하면 두시간 반 가량이 남는데, 이때부터 앉아서 예습해도 오페라 한편 다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 혼자 오기 우울해질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나름 이제 유럽 극장들도 여러군데 다녀봤고 여행갈 때는 언제나 혼자 다니니까 외로움을 타기에는 너무 새삼스럽다. 하지만 셔틀을 타고 이 넓은 들판에 도하면 처음 30분간은 잔디밭에 앉아 힐링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두 시간은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여기에 1시간 30분이나 되는 인터미션은 또 어떤가. 어제는 혼자 온 영국 할머니랑 노가리라도 깠는데 오늘은 그럴 사람도 못찾았다. 아 여담인데 할머니한테 글라인드본 최고의 프로덕션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작년 맥비커 연출 후궁탈출이라고 하더라. 인물간의 갈등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파샤 젤림 캐릭터도 새롭게 표현된다고 하는데, 이번에 블루레이로 발매됐으니 꼭 봐야할 듯. (그리고 쓴 리뷰)  




글라인드본에 왔는데 그 유명한 피크닉 상자라도 하나 주문해볼까 했지만 한 사람당 40파운드를 가뿐히 넘는 식사다. 도대체 그 상자에 뭐가 들었길래 피크닉 도시락이 7만원이나 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바이로이트 극장 근처에는 일반적인 가격에 소시지와 맥주를 파는 곳이 있지만 글라인드본에서 식사를 하려면 기본 40파운드는 든다. 그렇다고 공연이 끝나고 저녁을 먹자니 루이스에 오면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다. 바이로이트는 공연이 끝났을 때 영업 중인 식당이 굉장히 많고, 잘츠는 저녁 밥먹고 공연을 보면 된다.


원래 오늘 공연 스탠딩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다 팔렸다고 해서 그나마 가장 싼 120파운드 좌석을 끊었다. 댓글 말마따나 내가 금수저였으면 40파운드 피크닉 상자도 한번 까보고 여유로운 저녁을 먹었겠지만 밥값이라도 아끼려고 셔틀 타기 전에 1파운드 짜리 초코칩을 사서 저녁으로 때웠다. 오페라는 두 시간 반인데 혼자 글라인드본을 배회하는 시간만 4시간 쯤 된다. 제아무리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도 우울해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바이로이트에 있을 때 일주일 동안 나랑 매일 아침부터 공연 끝나서 숙소 돌아올 때 까지 같이 놀아준 독일 아저씨들이 너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오늘 좌석은 1층뒤 보다 살짝 높은 Stall circle 박스석이었다. 내자리는 박스석 3열이라 자막이 보이지 않고 간혹 가리는 경우가 있는 시야 장애석으로 분류되어 좀 쌌다.

운좋게 같은 박스에 있는 사람이 자리가 비었다고 한줄 앞에 앉으라고 해서 2막에는 꿀빨면서 보았다. 


글라인드본은 대체로 희극 작품에서 강세를 보이는 듯 하다. 아리아드네,암여우, 피가로, 코지 판 투테, 돈 파스콸레 등등. 일단 페스티벌 컨셉 자체도 속세에서 벗어나 잔디밭에서 힐링하다 가는 거라 작품도 밝은 작품이 자주 선정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올해 페스티벌은 명가수, 이발사, 피가로, 암여우, 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 한여름밤의 꿈 까지 모두 희극이다. 


캐스팅은 어제 나에게 눈웃음을 보내준 다니엘레 드 니스가 로지나를, 가장 교과서적인 부포 알레산드로 코르벨리가 바르톨로를 맡았고 벨 칸토 전문 엔리케 마졸라가 지휘를 맡았다. 이 셋은 글라인드본에서 돈 파스콸레를 함께했는데, 이걸 정말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에 특히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나머지는 모두 처음 듣는 가수였다. 하지만 글라인드본 영상물을 보며 얻은 교훈은 글라인드본이 선택한 젊은 가수들은 상당히 믿을만 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마졸라는 서곡을 상당히 가볍고 담백하게 처리했다. 서곡에서의 해석이 곧 오페라 전반에 걸치는 해석이기도 했다. 마졸라는 다른 오페라를 많이 하다가 이제 벨 칸토에 집중하고 있는 지휘자인데 글라인드본에서는 체네렌톨라, 돈 파스콸레, 사랑의 묘약, 폴리우토 등을 맡았다. 프로그램에 나온 인터뷰를 읽어보니 벨 칸토를 제대로 연주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벨 칸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벨 칸토 연주 관습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보였다.


서곡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몇군데서는 수작을 부려볼 법도 한데 정말 정직한 지휘였다. 꼭 나쁜 의미는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칼 같은 앙상블, 둥글고 맑고 비브라토를 절제한 소리는 로시니를 연주하는데 매력적인 요소다. 여기에 금관의 음량을 상당히 억제해서 현과 목관악기 중심의 밸런스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서곡의 도입부가 끝나고 바이올린과 목관의 주제 선율 이후 나오는 첫 투티에서 트럼펫의 팡파레는 정말 머리만 치고 사라지는 연주였다. 이런 스타일은 오페라 전반에 걸쳐 활용됐다. 


이런 스타일의 깔끔한 연주는 음반으로 들을 때 굉장히 만족스럽다. 자주 듣더라도 질리거나 할 걱정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공연장에서는 조금 더 극적인 것을 바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음반용 해석과 공연용 해석은 조금 다르지 않나.


물론 마졸라가 이런 스타일이라는 걸 모른 것도 아니었고, 실망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담백한 연주를 듣는 건 나름의 맛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주의 내용을 보면 어디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것 없이 세련되게 마감한 공예품 같은 느낌이 있었다. 특히 목관의 앙상블이 매우 훌륭했는데 아주 깔끔한 텅잉 앙상블이 돋보였다. 




마졸라의 스타일은 본인 비주얼과도 확실히 비슷하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는다. 깔끔한 머리 스타일에 붉은색 뿔테로 포인트를 준 것 처럼 금관이나 현악기의 소리를 정갈하게 가다듬고 목관으로 포인트를 주는 듯 하다.


피오렐로의 노래 이후 알마비바가 등장했다. 목소리가 레제로라고 하기에는 살짝 더 두터운 느낌이 있어서 리릭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맨날 플로레스나 루이지 알바가 부르는 것만 들어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도 있을 거다. 하지만 멜리스마 기교를 처리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고음도 불안하지 않고 자신있게 완성했다. 


이 때 악사들이 돈줘서 고맙다고 하는 대목을 돈 더달라고 조르는 것으로 연출한 건 꽤 괜찮았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글라인드본 합창단은 소리르 아끼지 않고 내지르는 편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피가로. 라르고 알 팍토툼에서 대충 이날 공연의 퀄리티가 판가름 난다고 할 수 있다. 비요른 뷔르거Björn Bürger라는 오퍼 프랑크푸르트 전속 가수였는데 발성부터 아주 모범적인 피가로였다. 능청스러운 연기와 표현도 합격점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프레이징에서 보통 약간 늘였다 들어가는 부분을 그대로 쭉 이어서 긴장감을 만드는 것도 훌륭한 장치였다.


이어지는 알마비바의 세레나데도 뛰어났는데 목소리가 ‘덜 미성’이지 않나하는 생각을 싹 지워줬다. 피가로가 계획을 짜주며 부르는 이중창 역시 반주나 가창이나 완벽한 앙상블을 이뤘다. 


백작과 피가로가 이정도 훌륭하면 나머지는 걱정이 없다. 드 니스는 천성부터 이런 여우 같은 역할을 하는데 딱 어울린다. una voce poco fa에서 콜로라투라 파트의 완벽한 기교를 보여주면서도 대비되는 두 선율의 느낌을 세심하게 표현해준다. 사실 돈 파스콸레에서 드 니스의 노래를 인상깊게 보긴 했지만 가끔 너무 쥐어짜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오늘 실제 들어봤을 때 그런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고 아주 편안하게 노래한다는 느낌이었다.


La calunnia라는 걸출한 아리아를 맡은 바질리오 역시 울림있으며 안정적인 목소리를 활용하여 세심한 프레이징을 선보였다. 마졸라의 반주가 목소리를 덮지 않게 섬세하게 조절한 것도 있지만 가수의 성량도 매우 커서 클라이막스에서도 힘을 잃지 않은 게 포인트였다. 


바르톨로 역의 코르벨리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1막의 아리아  'Ah un dottor della mia sorte'에서 정말 교과서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단어 하나하나가 또렷한 딕션과 가사에 따른 변화하는 표현력, 여기에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까지 모두 돋보였다. 특히 후반부의 살인적인 패터 파트 역시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1막 피날레 앙상블은 합창단과 솔리스트,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를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절제했다. 모든 소리가 매끄러운 앙상블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백작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모두가 굳은 다음에 이어지는 Ma signor, ma un dottor 반주에서 나오는 피콜로의 또렷함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마지막 스트레타 Mi par d’esser con la testa에서도  붓점 리듬은 또렷했고 패터 패시지도 합이 잘 맞았다. 마지막 순간에 드 니스의 고음이 앙상블을 살짝 뚫고 나오는데 살짝 포인트를 주는 정도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장판의 격동 속에서도 잘 계산된 절제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막 역시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특기할만 한건 베르타의 활약이었다. 하나 있는 아리아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노래가 되었다. 일단 발성부터가 단역을 맡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였다. 다른 배역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여기에 플라멩코 풍의 동작을 함께 소화해낸 것도 자연스러웠다. 


드 니스는 로지나의 소프라노 추가 아리아인 Ah se è ver를 불렀는데 기교가 뛰어난 드 니스에게 안성맞춤인 곡이었다. 아리아도 아리아지만 린도로가 자신을 배신한 줄 알고 백작에게 화를 내는 레치타티보의 거친 표현 역시 일품이었다. 로지나가 아니라 돈 파스콸레의 노리나에 가깝다는 평을 읽었는데 어떤 느낌인지 공감도 가지만 그렇다고 흠이 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 아리아 뒤에 나오는 폭풍우 장면은 훌륭하게 폭발시켰는데 거칠게 때려부수는게 아니라 깔끔하게 잽을 날리는 기분이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백작의 마지막 아리아인 Ah il più lieto를 생략했다는 점이다. 살인적인 기교 때문에 자주 생략되곤 하지만 오늘 백작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법한 노래였기에 특히나 아쉬웠다. 언제 이 아리아를 직접 들어볼 수 있을까.



음악적으로는 세련되게 마감된 공예품 같았지만 연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쉬움도 있었다. 공연을 보기 전에 간단하게 평론을 찾아봤는데, 글라인드본의 새 프로덕션이다보니 영국 주요 일간지들의 평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모든 평론이 연출에 상당한 혹평을 했다. “이렇게 훌륭한 가수들이 있는데 잘못될게 뭐가 있겠는가? 바로 연출이 그랬다”


혹평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아리아나 앙상블에서 세밀한 동선 없이 그냥 가수 혼자에게 맡겨버리는 순간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긴 하는데, 그렇다고 아리아가 그렇게 재미없게 진행되는 건 또 전혀 아니었다. 바질리오의 칼룬니아 아리아에서는 바질리오 옷 속에서 연기가 새나오게 해서 venticello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Una voce poco fa에서는 베르타의 동선과 로지나의 동선 모두 음악의 분위기에 걸맞게 짜여졌다. 하지만 몇몇 아리아에서는 특별한 지시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혹평한다면, 


전반적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세비야의 느낌을 버리지 않았는데, 종종 나오는 플라멩코 동작이라든가 복장, 무대의 타일 패턴과 발코니의 모양 등 모두 전형적인 세비야 풍이었다. 푸른 빛깔의 배경과 세련된 의상은 상당히 잘 어우러져 시각적으로는 매우 아름다웠다.



유머감각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라르고 알 팍토툼의 어디에든 존재하는 피가로라는 가사에서 착안하여 피가로의 등장을 항상 예상치 못한 특이한 곳으로 만든 것 역시 훌륭했다. 처음 등장은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하고 로지나 뒤의 트랩도어에서, 아니면 엄청높은 가구 위에서 등장한다든가. 2막에서 바르톨로가 로지나에게 아리아를 불러주며 가사 단어를 로지나로 바꿔부르는 장면에서 지휘자가 가사 틀렸다고 멈추고 바르톨로가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바꾼 것 역시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왠지 분명 누군가 이미 써먹었을 것 같은 수법이긴 하지만.


코미디언 3명을 써서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전통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듯 하는데 특별히 재미있는 장면이 있지 않았다. 우리나라 오페라단에서 쓰는 연기자들 보단 훨씬 낫긴 했다.


놀라운 건 생각보다 관객들 중에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 희극 오페라의 유머 포인트 중에 작품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별 감흥이 없지만 처음보는 사람들은 빵빵터지는 장면이 있는데, 대표적인게 피가로 3막에서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가 피가로의 부모라는게 밝혀지는 장면일 거다. 이발사에도 그런 장면이 많이 있는데, 로지나가 이미 편지를 써놓고선 츤츤데다가 피가로에게 주는 장면, 백작이 변장하고 나오는 장면, 마지막에 결국 바르톨로의 모든 행동이 '쓸데없는 예방'이라고 하는 대목 등이 있다. 물론 이 장면들을 센스있게 연출하면 충분히 웃길 수도 있지만, 대체로 여기서 웃음이 나오는 정도를 가지고 관객 중 뉴비의 비율을 가늠해볼 수 있다. 글라인드본에선 생각보다 이 비중이 높았다. 


그리고 명가수를 볼 때는 자막을 안보고 있어서 몰랐는데 오늘 보니 자막이 아주아주 불친절하다. 번역이 가사의 절반도 넘게 잘라먹었다. 레치타티보나 앙상블이나 할 것 없이 다 그랬다. 예를 들자면, 1막 피날레에서 알마비바의 정체에 군인들이 놀라자 바르톨로가 굳어버리는 장면에서 피가로는 ‘Gurda Don Bartolo, sembra una statua! Ah dal ridere sto per crepar!’(돈 바르톨로 좀 봐! 석상 같잖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네!) 정도인데 글라인드본 자막으로는 ‘Look at Don Bartolo’ 한줄로 처리 되었다. 그러니까 극의 진행에 필수적인 가사가 아니면 그냥 다 잘라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간단한 레치타티보 대화 역시 그냥 자막이 없고 가사 반복될때도 자막이 없더라. 생각보다 우리나라 오페라 하우스 자막들이 매우 친절하다는 걸 깨달음. 일단 로열 오페라하우스나 글라인드본이나 자막을 두줄 밖에 못 띄운다는 한계가 큰것 같다.


난 이정도면 연출이 충분히 고급지고 유머러스 하다고 생각하는데 영국 평론가들의 기준은 나보다 한참 높은가보다. 내가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있어 가수들 표정이나 제스처에 덜 신경써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영국사람들은 진짜 무대 위에서 완벽한 리얼리티를 기대하는구나 싶었다. 조금이라도 의미없는 동작이 들어가거나 생기가 없으면 가차없이 까는 거다. 저 평론가들 데려와서 국오 루살카 한번 보여주고 아갈 본고장의 사카즘 가득한 평을 들어보고 싶어지는 하루였다.


전날 바그너를 듣고 난 다음이었기에 공연이 끝난 다음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 2시간은 더 남은 것 같은데 벌써 끝나다니. 마졸라의 깔끔하고 담백한 해석 역시 자극적인 체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담백한 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돈다. 음반을 다시 찾아들어봐도 이렇게 정갈하고 예쁜 로시니 반주를 다시 들을 수가 없다. 자극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듣고싶은 중독성이라고 해야할까.


이번 프롬스에서 같은 캐스팅으로 연주하던데 호흡도 훨씬 많이 맞춰봤을 때고 콘체르탄테 형식일테니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매우 높지 않을까 싶음. 앞으로도 마졸라의 벨 칸토 지휘가 기대된다.


이렇게 글라인드본 여행은 끝나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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