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본지 한달도 넘었는데 쓰는 후기.




사실 나는 발레를 잘 모른다. 발레를 보러 간적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국립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라 바야데르 등을 보았다. 백조의 호수와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실 지휘자 때문에 보러간 거였고, 라 바야데르는 시간이 남아 당켓으로 보았다.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발레였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빼면 안무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을 보았을 때는 의미를 알 순 없지만 폭발적인 느낌의 에너지를 느끼며 꽤나 흥미롭게 보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오페라를 볼 때에도 발레 장면이 길게 나오는 것은 싫어한다. 특히 내용과 관계없이 디베르티스망처럼 나오는 발레는 더욱 싫어한다. 생각해보니 발레를 볼 때에도 디베르티스망은 참 싫어한다. 

런던에 간다고 할 때 주위 많은 분들이 로열 발레는 꼭 보라고 추천했다. 마침 일정 중 화요일에 로열 발레를 빼면 좋은 공연이 있던 것도 아니고 창작 발레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기에 고민하지 않고 일정에 넣어두었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본 적도 없고 영화를 본 적도 없어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머리에 나사박은 괴물’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원작에 대해 처음으로 좀 찾아봤다. 충격적이었던 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라는 거… 이렇게 내가 무식합니다.


이공연도 데이티켓으로 끊었는데, 전날 외디프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매표소 가서 ‘오늘 밤 프랑켄슈타인 티켓 사려는데요’ 했더니 ‘프랑켄스타인이요?” 영국인들은 프랑켄스타인이라고 발음하는구나. 원작도 영국 소설이니까 프랑켄스타인이 진짜 맞나? 싶었는데 찾아보니 독일에서 여행다니다가 독일 지명에서 따온 거라고 하니 프랑켄슈타인이 맞겠다 싶다. 외래어표기 역시 프랑켄슈타인이다.

좌석은 제일 꼭대기 층인 앰피시어터 중에서도 제일 뒤였다. 무대와의 거리가 세종대극장 뺨치는 높이다. 전날 시야 장애석에 앉다가 높은데 앉으니 무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은 참 좋았다.





발레 공연을 몇번 보면서 시놉시스를 미리 읽어가는 중요성이 오페라보다도 심하다는 걸 깨달아 열심히 프로그램 북을 읽었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영국이 특별히 좋은 점 하나가 있다면 프로그램 노트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글의 퀄리티가 상당히 좋다. 뻔한 이야기 써놓은 우리나라 글들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물론 창작 발레니까 더욱 그럴 수 있겠지만, 안무가, 작곡가, 원작 소설, 원작 소설의 정신분석학적 접근 등 총체적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전날 외디프 글도 굉장히 좋았는데 다 못읽은건 함정.

발레는 원작 소설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창작 발레이긴 하지만 안무 스타일은 고전 발레 스타일에 가까웠다. 인상 깊은 건 프랑켄스타인이 의대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는 장면인데, 의대 해부학 수업을 춤으로 표현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여기에 프랑켄스타인이 괴물을 창조해내는 장면 역시 상당히 흥미롭게 표현한다. 특히 창조물의 안무는 고전 발레 보다는 현대 무용에 가까웠기에 작품을 더 다채롭게 만들었다. 대체로 발레 무대들이 정형화 돼있는 편인데 꽤 입체적으로 표현했던 점도 좋았다.

하지만 역시 발레답게 디베르티스망 같은 장면이 꽤 껴있다. 마을 축제 장면,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군무 장면이 그런 부분이었다. 그런 장면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껴야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예상했던 대로 아쉽지만 별 감흥을 못 받았다. 발알못이 하루 아침에 변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일단 오케스트라 반주가 상당히 구렸다. 이게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밋밋했는데, 현악기 음정도 안맞는 부분이 꽤 많았다. 발레를 거의 음악에 걸맞는 시각화를 보는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


이렇게 나는 발레와 한발짝 더 멀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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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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