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형 실내악 공연이었는데, 공연 직후 후기를 못 써서 내용이 좀 아쉽다.


브피콰1번을 제외한 나머지 두 곡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은 공연이기도 했다. 그 전에 한번 씩 공연에서 본 적은 있지만 크게 기대하고 간 공연은 아니었어서..





안스네스, 테츨라프, 타베아 침머만, 클레멘스 하겐의 브람스 피아노 콰르텟 전곡

원래 오늘은 곱게 학회만 듣고 공연은 안가려고 했다. 그래서 아예 이 날 하루는 공연 일정도 안찾아보고 비워뒀다. 

그러다 별 생각없이 무슨 공연하나 한번 봐보기나 하자는 생각에 바흐트랙에서 검색해보는데....


바비칸 센터의 홀 중 하나인 길드홀 음대?가 있는 밀튼 홀 공연장에서 안스네스와 테츨라프와 타베아 침머만, 클레멘스 하겐의 공연이 딱!


거기에 프로그램은 브피콰 1,2,3!!



어머나 이건 꼭 가야해. 이걸 놓친다는 건 말이 안되지. 


예매를 하는데 좀 힘들었다. 일단 바비칸 홈페이지가 무슨 이유인지 한국에서 접속이 안되더라. 그래서 프록시 까지 써가며 겨우 예매함. 4자리 정도 남았는데 꽤 좋은 자리가 있길래 바로 결제했다. 바비칸도 유스 할인이 있는데 딱 내 나이에서 끝나더라 흑흑 근데 어라피 할인 안받아도 제일 비싼자리가 30파운드니까 아쉬울 건 없다. 이 공연을 ibk에서 들으려면 10만원도 넘지 않을까. 


홀은 실내악 전용홀이라고 하긴 살짝 크다. 대구시민회관 보다 좀더 작은 수준. 알펜시아 보다는 좀 큰 것 같다. 슈박스 형태라 음향도 좋은 편. 


연주자들이 들어서고 곧장 연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안스네스가 도입부를 치자 마자 바로 내 앞자리에서 핸드폰 팝송이 우렁차게 울렸는데 가방에서 꺼내느라 10초간은 울린 것 같다. 침머만 표정 썩고 다른 관객들도 멘붕. 런던의 관객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들의 전체적인 해석을 묘사하자면 달콤하며 열정적인 브람스라고 할 수 있겠다. 루체른 넬손스 브람스2번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장엄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브람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음. 1악장 주제 선율을 현악기가 할때도 꾹꾹 담아서 비장미 넘치게 할 수도 있을텐데 비교적 가볍게 넘어갔다.


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중 하나가 대관령음악제에서 정경화가 연주한 브피콰 1번이라 특히 비교가 되기도 했다. 당시 공연은 비올라 막심 리자노프를 빼면 다들 악기를 아직 하고 있는게 신기할 나이였는데, 손가락은 마음대로 안따라주지만 비장미 하나는 압도적인 공연이었다. 정경화가 인생을 건 느낌이었음. 


이 공연은 정반대였다. 일단 다들 테크닉적으로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훌륭한 솔리스트. 그리고 과장된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느낌이었다. 


들을 때는 뭔가 자잘한게 엄청나게 많았던 것 같은데 악장으로 따지면 열두 악장이나 되니까 기억이 잘 안나네. 거기다 후기를 쓰는 지금은 이 공연 뒤로 공연을 두개나 더본 상태라… 


공연 전반적으로 계속 인상깊었던 점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조화. 둘이 선율을 같이 연주하는 파트가 세 곡 전반에 걸쳐 자주 나오는 편인데 둘이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세심한 비브라토까지 모두 통일했음. 그래서 두 악기의 소리가 아니라 두 악기 소리가 절묘하게 섞인 하나의 음색으로 들리는 경지. 현악기 세명의 기본적인 소리 성향이 조금씩 달랐는데 전반적으로 괜찮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예컨데 첼로가 하겐이 아니라 고티에 카퓌숑이 들어갔다면 타베아 침머만의 음색과 비슷했겠지만 앙상블에서 부드럽고 깊은 소리가 부족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여기에 피아노와 현악부의 밸런스가 항상 자연스러웠는데 서로 양보할 때 양보했기에 들려야할 소리가 안들리는 일도 전혀 없었다. 에베를레의 옥텟을 들으면서 생긴 암이 없어지는 것 같다. 안스네스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 탁월했는데, 가령 3번 4악장 시작부분에서 왼손과 오른손의 성부 느낌을 다르게 조절해 바이올린과 피아노 양손을 위한 삼중주 느낌이 드는 신기한 순간이었다.  


달콤함이 포인트라고 했는데, 브람스의 풍성한 선율 하나하나를 어느 하나 허투루 연주하지 않고 곱게 프레이징 했다. 느린 악장에서는 꿀이 쭉쭉 떨어지는 연주. 특히나 3번 3악장 처음 첼로 선율과 바이올린이 이어받는 부분은 눈물 쏙빼놓는 연주였다. 


가장 유명한 1번 4악장은 여러모로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테츨라프는 집시 바이올린 느낌으로 굉장히 날카롭고 가벼운 어택을 선보였다. 비올라가 빠른 스케일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이 끊는 패시지에서 두 파트의 템포를 다르게 한 것도 특별한 효과를 낳았다. 느려졌다가 스케일은 바로 빠른템포로 이어졌기에 안그래도 신나는 부분에 긴박감까지 더해졌다. 


피아노가 멈추고 현악기만 신파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부분은 보통 템포를 많이 늦춰 느끼하게 연주하곤 하는 대목인데 반대로 이걸 그냥 빠른템포로 담백하게 연주했다. 그에 앞서 피아노가 연주하고 현악기가 엇박으로 신나게 긋는 부분에서도 보통 씐나게 긁어대는데 심심할만큼 담백하게 연주하더라.


코다 전 피아노 짧은 카덴차 패시지를 안스네스가 정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확실한 프레이징을 가지고 연주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어려운 패시지를 또랑또랑 어느 음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전달했다.


악장 별로 쓰면 너무 길어질텐데, 제일 훌륭한건 1번 3악장 처럼 분위기가 자주 바뀌는 곡이었다. 특히 아니마토에 들어서 갑자기 피아노 포르티시모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관객들이 깜짤 놀랄만큼 엄청난 대비를 줬다. 2번 4악장 같은 경우는 이 곡을 이렇게 격렬하게 연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주제 멜로디의 당김음을 심하다싶을 정도로 강조해서 독특한 느낌을 악장 내내 가져갔다. 


인터미션을 어떻게 할까도 궁금했는데, 1,2,3번 순서로 하되 1번이 끝나고 20분 인터미션을 가지고 2부의 두곡 사이에는 인터미션이 없는 대신 5분간 휴식을 가졌다. 그래서 공연장 안에서 다들 일어나서 스트레칭하는 광경을 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음. 관객도 이 전곡을 한번에 듣는게 쉽지 않은데 연주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싶더라.


피아노 콰르텟이야 말로 솔리스트 연주자들이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실내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공연은 여러모로 이상적인 실내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탁월한 테크닉을 무기 삼아 짜릿한 순간과 섬세한 순간을 만들어내면서도 절대 서로 엇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 다양한 악절에 담긴 매력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으며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 스릴까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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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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