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O의 나비부인. 새로운 연출이 아니라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가수들도 그렇게 훌륭한 편도 아니었고. 공연장은 예쁘지만 사실 좋은 홀은 아니다. 로비에서 사먹었던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 나비부인.


귀국을 앞둔 마지막 날이다.











런던에서 로열 오페라 다음으로 대표적인 오페라단인 ENO의 공연이다. 영상물로도 종종 나오는 오페라단이다.




잉글리시 내셔널이라고 하면 국립단체 같지만 처음에는 민간으로 시작한 오페라단이다. 이 오페라단의 제일 큰 특징이라면 모든 공연을 영어로 한다는 거다. 사실 영상물로 나온 것 중에는 브리튼이 많아서 모르고 있다가 검색해서 알게 됐다. 샨도스에서 나온 영어 오페라 시리즈도 아마 다 여기서 했을 듯. 영상 나온 것 중에 라보엠이나 루살카 같은 것도 있음. 물론 다 영어인데 라보엠에서 로돌포는 뮤지컬 레미즈 장발장으로도 유명한 알피 보. 루살카는 1980년대 초반에 올린건데 이런쪽으로 굉장히 선구적인 오페라단임. 대체로 진보적인 연출을 지향하는 편. 언어나 연출이나 베를린 코미셰 오퍼와 비슷한 느낌이다. 대부분 자국 음악가를 쓴다는 점과 런던 오페라계의 콩라인이라는 점에서 서울시오페라단이 떠오르기도 한다. 




ENO는 런던 계획 짤 때부터 꼭 보려고 계획했다. 마침 나비부인을 하고 있다. 6월달만 해도 나비부인, 트리스탄, 예누파를 모두 상연하는데 하나 밖에 없다는 건 좀 아쉬웠다.


티켓을 좀 일찍 예매했어야하는데 금요일에 볼지 일요일에 볼지 고민하다 너무 늦었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자막이 안보이는 시야 장애석을 구입했는데, 좀 후회했다.



ENO의 공연장 이름은 런던 콜리세움이다. 트라팔가 광장 근처로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다. 생각보다 공연장이 굉장히 고풍스러워서 놀랐다. 좌석 구조는 일반적인 유럽 오페라 극장의 말굽 모양이 아니라 우니라에서 흔히 볼수 있는 부채꼴 구조다. 




2층 제일 뒷자리인데 자막이 안보인다길래 도대체 어떤 구조인가 궁금했는데, 2층의 단차가 크고 1열 천장이 매우 낮아서 맨뒷열은 1열 천장보다 높은 수준이다. 로열 오페라하우스 맨 윗층도 거의 천장을 굴처럼 파고 들어간 형태인데, 이건 더 심하다. 세상에 뭐 이딴 공연장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우리나라 오페라 극장에서 자막이 안보이는 자리라고 하면 난리가 날텐데, ENO는 어차피 다 영어 공연이라 상관없다고 생각하나보다. 아니 전반적으로 유럽은 시야 장애석을 파는게 당연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클레임 들어올까봐 조금만 안보여도 아예 안 파는데… 



이번 공연은 그 유명한 안소니 밍겔라의 프로덕션이었다. 메트 영상물로 나와서 본 사람이 많을텐데, 개인적으로 나비부인 최고의 프로덕션이라고 생각한다. 오페라에서 지역색이 뚜렷한 걸 별로 안좋아하는데, 대표적으로 나비부인, 투란도트, 아이다 등이 있다. 이런 오페라들은 연출이 다 고만고만 해서 싫은데, 이 나비부인은 일본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세련된 추상미가 돋보이는 연출이다. 특히 오페라 내내 배경 전환이 없어 지루할 수 있는데 무대 전체를 끊임없이 변화시켜 음악에 어울리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주 훌륭하다. 처음에는 이 연출이 메트 꺼인줄 알았는데 ENO에서 초연했더라. 





포스터부터 멋지지 않는가. 연출의 핵심적인 부분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대충 저작권 풀린 서양 회화에서 분위기 비슷해보이는걸로 하나 골라잡는 국오랑 너무 비교된다. 심지어 이번 오를란도 핀토 파초 포스터에 걸린 회화는 위키피디아 ‘오를란도 푸리오소’항목에 있는 안젤리카와 메도로 그림으로 오를란도 핀토 파초 내용에 등장하지도 않는 장면임.



음악이 시작하기 전, 무대가 먼저 올라가고 무용수가 등장하는데 이 프로덕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빛깔의 배경이 정말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그냥 뒤에 적당히 조명 비춰논 것 같은데 색상의 느낌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감탄을 자아낸다. 배경 전체를 저렇게 하지 않고 제한된 높이로만 만든 것도 굉장히 훌륭한 선택이다.



오케스트라 역시 훌륭하다. 음향은 전반적으로 예당 오페라 하우스랑 비슷한 느낌인데 오케스트라의 악기간 밸런스가 아주 뛰어나다. 저번 루살카에서 투티마다 밸런스가 똥망한 것과 너무 비교된다. 가수들 소리를 잡아먹지 않는 선에서 다이나믹 변화를 잘 주고 금관이 튀어야 할 때는 정확하고 깔끔하게 질러준다. 1막 듀엣에서는 선율을 풍성하게 이끌어줬고 2막 아기를 데리고 나오는 부분에서는 금관이 활약했고 3막 피날레에서는 광포한 음향을 뽐냈다.



가수들은 아마 대부분 영국 출신일텐데 성량이나 표현이나 모두 뛰어났다. 초초상은 성량이 특히 뛰어났지만 비브라토가 좀 과했고 발음이 명확하지 않았다. 영국 사람이니 영어 딕션을 모르는 건 아닐 테지만 자음을 너무 무시하더라.


자막이 안보이니 오케스트라 반주가 없는 부분은 잘 들리지만 오케스트라가 선율을 연주하고 있으면 가사를 알아먹기 힘들다. 영국인들한테는 어떨련지 모르겠다. 애초에 발음을 또렷하게 하는 가수가 샤플레스와 핑커톤 정도 밖에 없던 것 같다. 영국인들에게는 얼마나 들릴지 궁금하긴 했다.

여담이지만 핑커톤을 그대로 이탈리아식으로 핑케르톤이라고 발음하는 게 좀 웃겼다. 


오페라단 전속 가수들로 꾸리다보니 고로, 스즈키, 본조 같은 조역들의 수준도 주역에 뒤쳐지지 않는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내가 나비부인에서 제일 좋아하는 2막 편지 읽는 장면이었다. 샤플레스가 편지를 읽으며 허밍코러스 선율이 처음 나오는 부분인데, 바순이 꽤나 또렷한 소리로 시작하는데 그 바보같은 음색이 더욱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이탈리아어로도 대사를 대충 외운 부분이지만 영어로 또렷하게 들리니 좋았다. 오케가 연주를 잘해줘서 눈물 뚝뚝 나왔음.


반대로 같은 선율인 허밍 코러스는 기대를 꽤 했는데 좀 아쉬웠다. ENO가 최근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즈에서 합창단 부분을 수상해서 기대했는데 일단 오프스테이지에서만 부르다보니 소리가 큰편이 아니었고, 거기다 이 부분에서 유독 객석 기침 폭발하더라. 조용한 부분이니 더 튄 것도 있겠지만, 내가 왠만해선 기침 때문에 음악 못들었다고 불평 안하는데 이번에는 심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연출이라 새로운 건 없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 인상깊은 효과들이 있었다. 일단 배경의 색조명은 오페라 내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클로즈업 됐을 때는 약간 어색하게도 느껴지는 목각인형 아기가 객석에서 보았을 때는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영상에서 볼때보다 인형 조종사들에 눈길이 안가기도 하고. 그래도 ENO의 연출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새 프로덕션을 보지 못한 점은 좀 아쉽다.



공연장 분위기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나 글라인드본과 비교했을 때 훨씬 캐주얼하다. 일단 초등학생 수준의 어린애들도 많이 보인다. ENO는 6~16살 어린이들에게 반값 할인해준다.  티켓 가격대는 로열 오페라랑 비슷한 수준인데 싼 좌석도 많은 편. 관객 매너도 좀 개판인데 핸드폰도 울리고, 앞서  말한대로 허밍 코러스 내내 기침이 나왔다. 여기에 3막은 시작하기 전에 잡담 소리가 계속 나더니 오케가 시작했는데도 몇초간 시끄러울 정도였음.


그래도 신기한건 한 프로덕션을 15번 정도 공연하는데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는 거다. 1층은 못봤지만 2층은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음. 3층도 내가 예매할 때 이미 매진이었고. 


처음 언급한대로 ENO의 특징인 영어로 노래하기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다 한국말로 번역해서 하던 걸 자막이 자리잡으면서 거의 대부분 원어로 가는 추세인데 여기에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말로 노래할 때 단점도 많지만 이로 생기는 이점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가사의 내용을 자막으로 이해하는 거랑 가사가 직접 들리는 거랑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아 쟤가 지금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랑, 지금 쟤가 부르는 단어가 내 귀로 들어와 가슴에 박히는 일이랑은 전혀 다른 일이다. 사실 클갤 하면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글이 오페라 보는데 원어를 아는 게 도움이 되냐는 글에 오히려 방해된다고 하는 댓글들이 있었다는 거다. 아니 그럼 이탈리아인, 프랑스인, 독일인은 오페라 어떻게 들으라고… 이 언어들 조금만 공부해봐도 오페라 들을 때 얼마나 다른지 체감할 수밖에 없다. 


굉장히 긴 토론 주제가 될 수 있는 거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어차피 원어를 모르는 사람한테는 원어가 가지고 있는 절묘한 운율이나 선율과 가사의 매칭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말로 부를 때 억양이 부자연스럽고 발음하기가 어려운 점은 충분히 있지만 가수와 관객이 가사로 소통한다는 건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다. 사람들이 김광석 노래하는 거에 그렇게 열광했던 것도 노랫말이 가슴 속에 박히기 때문 아니었나.


모든 오페라를 다 우리말로 부르는 게 좋다는 게 아니다. 한국어로 공연하는 수준 높은 오페라도 있어야 한다는 거다. 오페라하우스 공연이 있으면 소극장 오페라도 있듯이, 번역 오페라도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으로 존재해야한다. 번역 오페라를 무슨 2류 공연으로 취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  ENO나 코미셰 오퍼처럼 자국어로 공연하는 거에 자부심을 갖는 단체도 필요하다. 


 한국어 번역 오페라를 본게 두번 있는데 둘다 장수동이 연출한 작품이었다. 아예 이 쪽으로 밀고 나가도 좋을 것 같은데 요즘에는 안하는 것 같다. ENO나 코미셰나 모두를 위한 오페라를 기치로 내걸지만 실제로 일반 관객들에게 자국어 오페라가 얼마나 어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오페라를 고급 예술로 보고 자국어 번역을 마치 대중을 위한 다운그레이드 크로스 오버 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건 오페라 초보들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원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관객을 위한 것이다.



이제 후기 하나만 더 쓰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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