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페라를 볼 시간이 다시 생겼다. 무엇을 볼까 고민해봤다. 최근 들어 이상하게 살로메 선율을 흥얼거렸던 게 떠올랐다. 평소에 살로메 잘 듣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랬는지 나도 신기하다. 프로이트식 무의식의 발현이라도 된단 말인가. 마침 책장을 보니 살로메가 두 개 있었다. 볼로냐 극장 블루레이를 먼쩌 꺼내들었다가, 아무리 블루레이라도 서로 위아래가 있지 먼저 온 놈이 먼저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바덴바덴을 골랐다.


살로메를 보며 최근에 읽은 테드 창의 소설이 떠올랐다. 영화 컨택트Arrival를 보고 나서 원작을 읽고 싶은 마음에 전자책 리더기를 사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단편 하나하나 완성도가 높지만 그 중에서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는 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있을 법한 일을 이야기한다는 점과 실제 작품의 구조 덕택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외모에 대한 판단 회로를 임의로 꺼버릴 수 있는 기술이 있을 때,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면  외모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겠냐는 것과 그 반대 의견에 관한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서양 문화가 외모에 대해 어떻게 양면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절 부터 인간의 이상적인 외모를 사랑해왔지만, 반대로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롯한 유일신 신앙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길 강요해왔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그냥 그려려니 별 생각없이 넘어갔던 부분이지만, 살로메가 요하난의 외모에 반한다는 점이 이 극의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이구나를 다시 깨달았다. 렌호프는 부클릿에서 살로메가 요하난에게 반하는 것은 요하난이 살로메의 세계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좀 더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여보면, 살로메는 찬양하는 것은 요하난의 외모이다. 그의 몸, 그의 머리카락, 그의 입술말이다. 이 것이 요하난에게 얼마나 큰 당혹, 혹은 치욕일까. 요하난이 위대한 인물인 것은, 혹은 사람들이 그를 대단하거나 위험한 사람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그가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요하난 스스로도 외모에 신경쓰는 것을 그릇된 행위라고 배격했을 테다. 살로메가 선지자로서 요하난에게 매료되었다면 이야기의 분위기는 꽤나 달랐을 테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기괴하게 만드는 것은 살로메가 요하난의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있는데 어떤 여자가 그저 그 피아니스트의 배꼽이 예쁘다고 사랑에 빠지는 경우라고 할까. 아 누가 그랬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여튼 요하난 입장에선 이게 무슨 공포영화일까 싶다. 음 목 잘리기 전에 말이다. 목 잘릴 때는 진짜 공포영화고... 평생 하느님만 보고 살았는데 공주가 나타나서 자기 보고 잘 생겼다고 물고빨고 싶다니. 살로메에게 요하난이 다른 세계의 인간이듯 요하난에게도 살로메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인간일 테다. 요하난이 살로메의 행동에 그저 회개하라고 호통만 치는데 이게 요하난이 주님앵무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컬쳐쇼크를 받아서 그런거구나 싶다.



짧은 오페라지만 공연하기 참 힘든 작품이다. 안겔라 데노케Angela Denoke는 상당히 괜찮은 바그너 가수이지만 살로메를 잘 부르는 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뭐 어찌저찌 소화해내긴 하지만 프레이징이 명확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부분이 많고 연기 역시 뭔가 어중간하다. 요하난 역의 알란 헬트Alan Held가 요하난에 어울리는 멋진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라보트 역의 마셸 레이얀스Marcel Reijans와 헤로데스 역의 킴 베글리Kim Begley는 평범한 편이다.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슈타펜 숄테츠Stefan Soltesz의 반주는 관능적인 느낌보다는 이지적인 느낌을 준다. 앙상블의 합이 잘 맞고 오케스트라 밸런스를 잘 맞춰 다채로운 음색을 들려준다.


렌호프의 연출은 이번에도 물음표다. 고인 되신 분한테 좀 미안하지만 스타일이 이도저도 아니게 너무 올드하달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전반적으로 동선도 애매해서, 마지막에 살로메가 요하난 머리 놔두고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도대체 왜 저렇게 움직이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노래하다가 계단을 올라가서 노래하고, 그 뒤에 다시 내려오면서 노래하는데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너무 부자연스럽고 엉거주춤한다. 데노케도 분명히 내가 이게 무슨 짓인가, 시키니까 하긴 하겠는데 나도 모르겠다, 일단 저 위치까지 가기만 하면 연출가한테 혼나진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


일곱 베일의 춤은 살로메의 춤보다 헤로데스의 표정이 더 일품이었다. 음란마귀는 사물에 끼인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낀 것이다. 살로메의 춤이 얼마나 야하냐보다 헤로데스가 얼마나 야한 표정으로 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것이_의붓딸을_바라보는_시선.jpg
그러고보면 슈트라우스 오페라에는 노골적인 개저씨들이 자주 등장한다.



요약하자면 살로메 팬이 아니면 딱히 살 필요가 없는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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