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출의 엑상프로방스 공연. 


브리튼 X 셰익스피어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브리튼이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작품을 별로 남기지 않았다는 건 조금 놀라운 일이다. 브리튼-셰익스피어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한여름밤의 꿈>이다. 


<한여름밤의 꿈>은 멘델스존이나 퍼셀의 작품으로도 친숙하다. 하지만 브리튼의 작품은 이 기묘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기묘한 음악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음반으로 듣고 있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조용히 시작하는 와중에 현악기의 글리산도는 몽환적이며 우습게 들린다. 뒤이어 들려오는 기이한 소년합창까지 가세하면 요정들의 기묘한 세계가 펼쳐진다.


브리튼의 특징은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이다. 그렇기에 요정의 세계, 네 연인의 이야기, 마을 극단의 이야기로 쪼개지는 <한여름밤의 꿈>의 구성은 브리튼의 장점을 백분 살려내는데 적합하다. 가장 브리튼적인 음악은 연인들의 장면에서 등장하고, 요정 오베론과 타이타니아에서는 <한여름밤의 꿈>다운 기묘하고 몽환적인 음악이 등장한다. 보텀의 이야기에 나오는 음악은 좀 특별하다. 바보같아 보이지만 너무 희극적이거나 싸보이지 않는 음악으로 보텀과 일당을 묘사한다. 음악적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극단의 마지막 극중극 장면이다. 브리튼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옛날 풍의 선율을 가져오되 자신만의 색채를 더하는 것인데, 가장 유명한 예시로는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이 있고 그 외에 로시니 음악을 차용한 <음악적 마티네>가 있다. 브리튼은 <한여름밤의 꿈> 극중극 피라머스와 시스비를 일종의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전통의 짬뽕으로 만들어놓는다. 피라머스의 아리아는  quasi 베르디고 시스비의 아리아는 도니체티 풍이다. 하지만 차이콥스키가 모차르트를 모방한 것과는 다르게 브리튼의 시니컬한 관점이 섞여있다. 

거부할 수 없는 브리튼의 매력을 하나 꼽자면 계속 이상한 음악 들려주다 어느 순간 황당할 만큼 아름답고 차분한 선율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이 오페라 마지막에 오베론과 타이타니아,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이 그렇다. 

뭐라고 해야할까, 좀 반칙이다. 그 포탈2 엔딩에서 글라도스랑 터렛들이 갑자기 데레데레 거리는 모습 같다. 너 왜 사람 불안하게 이렇게 잘해주니. 


영어자막으로 볼 때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오페라가 바로 영어 오페라다.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든게 바로 셰익스피어 원작의 오페라다. 내가 오페라를 보는 건지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는 건지.... 

사실 연출 때문에 캡쳐한 장면인데 다시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검색해보니까 브리튼이 오페라 작업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쓴 대사를 자기만 있지 새로 넣은것은 1막 요약 한줄 밖에 없다고 한다. 저 문장도 검색하면 그대로 나오네. 현대 영어로 옮기면 "you tiny little weed, you scrap, you acorn!" 이라는 뜻이라는 군. 오페라 보면서 셰익스피어 문장 읽는다고 욕좀 봤습니다. 



로버트 카슨의 연출은 꿈의 세계를 상징하는 초록색과 파란색, 그리고 아마도 현실을 상징하는 흰색으로 이루어져있다. 무대 자체는 거대한 침대다. 위 캡처에 나와있듯 연인들끼리 오베론 장난질에 일이 꼬이고 나서는 흰색 드레스가 점점 초록색으로 떡칠이 된다 

그 와중에 보텀 분장 리얼한 거 보소... 


해리 비켓이 지휘를 맡았다. 이 아저씨 바로크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아는구나. 들으면서 반주가 구리다는 생각을 안 했으니 잘한 거겠지.

아는 가수가 거의 없다. 보텀 역을 맡은 피터 로즈Peter Rose가 상당히 안정적으로 돋보인다. 오베론 역의 카운터테너 데이빗 다니엘스David Daniels도 아주 자연스럽고 따뜻한 노래를 들려준다. 



함부르크 오퍼에서 이브 아벨이 지휘하는 공연을 보러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찾아본 작품이었는데, 사실 보면서 뭔가 좀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독일 가서 새로운 오페라도 보고 희귀 레퍼토리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막 빵빵 터지고 막 감동의 쓰나미가 으아아ㅏㅏ악 하고 몰려오거나 하는 작품을 보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왜, 짤방 중에 이런 거 있잖아.

막 브리튼도 보고 싶고 헨델도 보고 싶고 라모도 보고 싶고 야나체크도 보고 싶고, 21세기 따끈따끈한 신작 오페라도 보고싶은데, 딱 하나 고르라고 하면 "바그너 푸치니 알슈 중에 하나합시다" 라는 거. 사실 브리튼 중에 피터 그라임스나 빌리 버드였으면 헠헠헠 하고 봤을 텐데 이게 또 애매하다. 일단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투티 한번 없는 작품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렇게 주역 없이 모든 인물이 출중해야하는 작품에다가, 우리나라에서 공연될 리도 없고, 믿고 보러 가봐야지. 



극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대사 하나. 보텀네 극단 공연을 허락하며 하는 대사이다.

"For never anything can be amiss when simpleness and duty tender it"

내가 공연에서 기대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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