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의 틈새시장 공략.



다이나믹 레이블은 대체로 틈새시장을 건드리는 걸 좋아한다. 적당히 유명하거나 듣보인 이탈리아 오페라 작품의 적당히 유명한 극장의 공연을 내놓는다. 대체로 dvd나 블루레이가 별로 나오지 않은 작품을 발매하는 걸 좋아한다. 비발디 <일 파르나체>, 칠레아 <아를의 여인>, 도니체티 <올리보와 파스콸레>, 메르카단테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벨리니 <텐다의 베아트리체> 등등 


다이나믹이 왜 보리스 고두노프를 건드렸나 싶었다. 그것도 역시나 듣보인 불가리아 소피아 오페라단의 공연으로 말이다. 전혀 모르고 빌려본 건데 사실 야외 공연이었다. 

소피아의 상징인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 앞에 무대를 설치해놨다. 


거의 1869년 판본으로 공연했다. 유튭에서 다이나믹 직원 댓글에 따르면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판한  David Lloyd Jones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인데 무소륵스키 원본과 거의 같다고 한다. 장면 구조는 내가 아는 1869년 판본과 같은데, 여관장면에서 여관주인 노래가 추가된 것이 달랐다. 

저번에 림스키코르사코프 판본을 듣고나니 무소륵스키 원본이 얼마나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각각의 부분은 뚜렷하게 대비되며 가장 적합한 반주를 보여준다. 처음에 1869년 판본 봤을 땐 왜 이렇게 재밌는 아리아가 별로 없고 왜 각각의 파트가 서로 연결도 잘 안되고 그리고리 플롯은 탈출하는 걸로 끝나고 별의별 투정을 다 했었다. 그런데 이제 계속 보니까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익숙해서 무뎌지는 건지, 


무엇보다 콘스탄틴 추돕스키Konstantin Chudovski의 지휘가 매우 빼어나다. 대체로 빠른 템포를 잡으며 확고한 신념으로 극을 밀어붙인다. 극을 이끌어나가는데 두려움이 전혀 없다. 이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며 앙상한 오케스트라 소리로도 지루하지 않게 극을 이끌어내는 지휘자는 오랜만이다. 템포가 상당히 빠른데, 중간에 대관식 대사가 추가됐는데도 전체 플레이타임이 115분 밖에 안된다 . 


야외 오페라의 장점과 단점이 잘 드러난다. 일단 뒤에 배경으로 있는 대성당의 모습이 워낙 간지가 쩔어줘서 무대에 뭐가 없어도 은근히 효과가 좋다. 브레겐츠나 베로나, 산마르코 광장 야외 공연과는 또 다른 맛이다. 성당 자체가 이미 가장 훌륭한 세트이기 때문이다. 음향적으로는 다른 야외 공연에 비해 훨씬 불리할 것 같지만 그래도 성당 공연의 이점을 잘 살려내려 노력했다. 성당에서 인물들이 걸어나온다거나, 대관식 장면에서 종을 진짜 성당 종을 열심히 때린다든가. 

여관에서 그리고리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진짜 말탄 경찰들이 추격하는 장면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단점으로는 끔찍한 합창 앙상블이 있다. 진짜 끔찍하다. 소리의 퀄리티가 어쩌고를 떠나서 일단 합이 아예 안 맞는다. 중창이 나왔으면 그것도 문제였겠지만 다행히 보리스 고두노프는 대부분 독창이라 다행이다. 

독특한 변화로는 앞서 언급한 대관식 대사 장면을 넣었다든가, 피멘이 보리스 앞에서 썰푸는 장면에서 눈먼 노인을 직접 등장시켜 피멘 파트를 쪼겠다는 것이다. 이 때 영상에 후광 효과 비슷하게 넣는데 촌스러워 죽는 줄. 캡쳐로는 좀 덜보이는데 저 사람이 계속 빛난다. 


가수들 노래는 괜찮은 편이다. 보리스 역의 마틴 초네프Martin Tsonev는 안정적이면서도 연극적으로 뛰어난 노래를 들려준다. 그 외에 피멘 역의 Angel Hristov, 그리고리 역의 Kostadin Andreev도 무난하게 역할을 소화해낸다. 슈이스키와 셰칼로프도 괜찮다. 야외 오페라 캐스팅할 때는 성량에 구애받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노래들이 무난하게 괜찮은 것 같다.


아울로스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된 거 말고 유일하게 한글 자막이 달린 영상이다. 자주 본 오페라라 영어자막이나 한글자막이나 별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가사가 많은 작품이라 차이가 꽤 크더라. 전에는 별 생각없이 지나갔던 가사들이 생각해보니까 아주 중요한 점들이겠구나를 느낄 수 있다. 러시아어 자막도 키릴문자로 지원한다. 


야외 오페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지만 성당이랑 이야기가 잘 어울리는 것도 있고 가수도 무난하고 지휘가 좋아서 한번 들어볼 만한 작품이다. 어차피 2시간도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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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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