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프랑스 놈들은 또라이야.


예전에 오케스트라 하는 친구랑 서울시향 환교를 보고 오면서 프랑스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친구는 "프랑스 작곡가들은 다 또라이"라고 말했다. 베를리오즈는 말할 필요도 없는 압도적인 쌍또라이고 그 뒤로 이에 버금가는 똘끼를 가진 사티도 있다. 오펜바흐는 아름다운 선율을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내는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잡을 수 없는 망나니 같은 음악을 선보인다. 라벨의 음악도 일견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고 생상스도 죽음의 무도(특히 가곡 버전)나 동물의 사육제에서 만만치 않은 똘끼를 보여준다.


라모의 플라테를 보면서 느낀 점이 바로 이거 였다. 아 이것이 바로 라모의 환상적인 똘끼구나. 긴 설명 필요없이 영상하나 보고 가겠습니다.


<플라테: 주노의 질투>는 루이 15세의 아들인 도팽 루이 페르디낭과 스페인의 공주 마리아 테레사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공연됐다. 그런데 골 때리는 건, 이 작품의 내용이 주피터가 주노의 화를 풀게 하기 위해 괴상하게 생긴 님프 플라테와 거짓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왕자와 스페인 공주의 결혼이 정략 결혼이라는 점, 거기다 마리아 테레사 역시 예쁘다는 말 한번 못듣는 공주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 작품을 이들의 결혼식 기념으로 올린 라모는 코렁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지 않았나 싶다. 뭐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취임하는데 박근혜 게이트로 연극 만들어 공연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높으신 분들이 멍청해서 이게 비아냥일 수 있다는 걸 생각도 못 한건지, 아니면 어차피 결혼식으로 기쁘니까 오페라 내용 따위엔 신경을 안 썼는지, 라모는 후에 왕궁 작곡가로 임명된다.


타이틀 롤이 심하게 희화화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다. 플라테는 극중에서 여자 님프지만 테너가 맡는 치마 역할이다. 거기다 희화화 되는 인물이 피가로결혼의 백작이나 이발사의 바르톨로 처럼 악역이 아니라 피해자라는 점도 중요하다. 팔스타프나 돈 파스콸레 역시 뭐 '당해도 싸다'라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지 않는가. 하지만 플라테는 딱히 잘못한 게 없다. 도끼병 걸려서 모든 남자들이 자신에게 구애하러 줄을 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안타깝긴 하지만, 그게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이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게 3막이다. 주피터는 플라테를 꼬셔서 결혼식을 올리고, 주노가 이 현장에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주노는 빡쳐서 결혼식장을 급습하지만 신부의 면사표를 올려보더니 이 모든 게 장난이란걸 깨닫고 주피터랑 화해한다. 플라테는 그저 벙 찔 뿐. 그런 플라테를 놨두고 주노와 주피터는 신나서 애정행각을 벌인다. 하여간 높으신 분들은 공감 능력이란 게 없어요 ㅉㅉㅉ 주피터랑 주노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도 서러운데 결혼식에 온 동네 사람들까지 플라테를 조롱한다. 이 때 플라테가 빡쳐서 부르는 노래가 참 압권이다.


전반적으로 극의 내용이 가볍기 때문에 라모의 다른 오페라에 비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회화적인 표현력을 띄는 부분이 많은 편이다. 또한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 답게 발레 음악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플라테에서 유명한 폭풍우Orage도 1막 끝에 등장한다. 쿠렌치스 연주로 들어봅시다. 


로랑 펠리Laurent Pelley는 음악을 유머러스하게 무대 위에서 표현할 줄 아는 연출가다. 그가 연출한 <연대의 딸>은 음악에 담겨있는 유머를 무대 위에서 온전하게 드러낸 좋은 예시다. 라모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춤곡에서 펠리는 세세한 늬앙스를 놓치지 않고 표현해준다. 서곡 다음에 나오는 시퀀스가 정말 기가 막히는데 유튜브에서 못찾겠으니 리고동으로 대체한다. 

의상 디자인도 펠리가 직접 맡았고 각각의 인물들의 특성이 유머러스하게 잘 드러난다. 주피터가 등장할 때 하늘에서 불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장면은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막의 전주곡에서 개구리 가면을 쓴 배우가 오케스트라 피트에 등장해 개그를 치는 것은 아이디어는 괜찮지만 역시나 연주자들의 리액션이 조금 부자연스러웠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민코프스키는 명실공히 라모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가 편곡한 상상교향곡은 DG111박스에도 들어가지 않았던가. 성남까지 가서 본 내한 공연이 또렷이 기억난다. 상상교향곡은 참 좋은 라모 음반이었다. 쿠렌치스의 라모 음반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 뒤론 민코프스키의 연주는 심심해서 듣지 않는다. 

위의 쿠렌치스의 연주와 비교해보자. 물론 춤을 춰야하니 템포는 그렇다치지만, 쿠렌치스는 반복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생동감이 있다.  민콥 찡 울지 말아요 당신이 잘못한 건 아니니까. 뭔가 이상하게 기승전쿠가 되는 것 같지만 이 블로그는 원래 그런 곳입니다.


가수들이 모두 훌륭하다. 이름을 들어본 건 로랑 나우리Lareunt Naouri 밖에 없었는데 광기Folie 역을 맡은 미레이 들렁쉬Mireille Delunsch나 플라테 역의 폴 애그뉴Paul Agnew가 특히 뛰어나다. 둘 모두 자연스러운 연기는 물론이고 프랑스 바로크에 딱 어울리는 편안하며 명징한 소리를 가지고 있고 가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뛰어난 작품에 뛰어난 공연이다. 위그 갈Hugues Gall이 파리 오페라 감독을 맡던 시절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히는 것이 이 플라테 프로덕션인데, 과연 그렇구나 싶을 수준의 공연이다. 다만 2002년 공연이라 블루레이 임에도 화질이 상당히 구리다는 것이 아쉽다. 보통 이런 경우 자막만 블루레이 화질인 경우가 있는데 자막 마저 DVD 화질이더라. 굳이 블루레이로 살 필요가 없어보인다. 내가 알기로 스펙트럼에서 한글 자막 넣어 라이센스로 발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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