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륵스키 버전 왕좌의 게임.


무소륵스키가 평생 완성한 작품은 몇개 되지 않는다. 가장 유명한 전람회의 그림과 보리스 고두노프 정도이고,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역시 애매한 편이다. 호반시나Хованщина(호반시치나 가 아니라 호반시나. 호반스키 사건이라는 뜻) 역시 무소륵스키가 보컬 스코어만 완성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 무소륵스키 전담 채색 도우미인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지만 원작을 꽤나 많이 건드렸다. 그래서 쇼스타코비치가 무소륵스키 원본을 최대한 손대지 않으면서 편곡했다. 보리스 고두노프와 마찬가지로 림코 판본은 점차 대세에서 밀려나고 숏타 판본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편곡이 있는데, 바로 디아길레프가 샹젤리제 공연을 위해 스트라빈스키와 라벨에게 편곡을 의뢰한 것이다. 역시 디아길레프의 스케일이란... 하지만 공연에서 도시페이를 맡은 전설적인 베이스 샬리아핀이 '난 림코 판본 아님 안 부르겠음'이라고 선언하는 바람에 림코 판본과 스트라빈스키-라벨 판본을 섞어서 공연했다고 한다. 무소륵스키-림코-스트라빈스키-라벨을 한 오페라 안에서!


공연은 안타깝게도 폭망했고, 덕분에 이 편곡 역시 같이 잊혀졌다. 대신 스트라빈스키가 작업한 마지막 피날레 합창을 따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DG에서도 발매된 1989년 아바도가 지휘한 빈 슈타츠오퍼 공연이 그렇고 이 2007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공연도 마찬가지다. 숏타 판본에서 마지막 합창만 대체하는 이유는 그가 완성한 피날레가 상대적으로 너무 희망차기 때문이다. 처음 1막 전주곡이 다시 나와 수미상관을 이루며 마치 영화의 클리셰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무소륵스키 작곡, 쇼스타코비치 편곡, 스트라빈스키 피날레 라는 환상의 콜라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공산주의화인가!


호반시나는 러시아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영락없는 왕좌의 게임이다. 차르의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1682년, 훗날 표트르 대제가 되는 10살 짜리 어린아이가 차르로 즉위한다. 이복누이인 소피아가 섭정을 맡고 있다. 러시아 총병대인 스트렐치를 거느린 이반 호반스키 공은 나라 꼴이 개판이니 총병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자기 아들을 차르로 삼을 생각을 한다. 여기에 대주교 니콘 주도로 행해진 러시아 정교회 예식 개혁에 반대하는 구예식파를 이끄는 도시페이가 있다. 이 둘과 힘을 합쳐 자기 연인인 섭정 소피아를 위해 힘쓰려는 골리친 공도 있다. 여기에 소피아의 다른 연인이자 수하인 귀족 샤클로비티가 있다. 


실제 극 중에서는 차르 표트르와 섭정 소피아가 등장하지 않는다. 무소륵스키 당시 러시아에서 차르와 차르의 가족이 극에 등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이 <차르의 신부>나 <보리스 고두노프>와 같은 다른 러시아 오페라와 묘한 공통점을 만들어낸다. 극 중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의 부재 말이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왕좌의 게임과 비슷하다. 차르와 이복누이인 섭정 간의 묘한 긴장 관계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역사적 배경은 뒤로 하고서라도 (후에 표트르 대제는 성인이 되고나서 자기 누이를 수녀원으로 추방한다), 군대를 가진 이반 호반스키, 신실한 교인을 거느리는 도시페이, 이들을 이용해먹으려는 골리친, 그리고 그 골리친을 뒤통수 치는 소피아와 처음부터 이들에게 덫을 놓는 그의 애인 샤클로비티 까지. 모든 인물은 서로를 믿지 않고 의심하고 경계한다. 특히 샤클로비티가 힘을 잃은 호반스키를 찾아가 암살하는 장면은 어느 느와르 영화 못지 않은 명장면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 음악에서 현악기의 반주가 왕좌의 게임 OST와 상당히 닮아있다. 5막 처음에도 등장하는데 열심히 듣다보면 그 유명한 반주와 똑같은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권력 다툼에서도 사랑 싸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도시페이의 딸인 마르파는 이반 호반스키의 아들 안드레이 호반스키를 사랑한다. 하지만 안드레이 호반스키는 루터교 신자인 엠마를 사랑한다. 안드레이는 엠마 아버지를 죽이고 약혼남도 추방한 전적이 있는데 엠마 치맛가랑이를 붙잡고 사랑한다고 애원하는 찌질남이다. 안드레이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지만 마르파는 호반스키 - 도시페이 - 골로친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인물이다.


음악 역시 이야기 못지 않게 간지가 휘몰아친다. 보통 무소륵스키의 가장 큰 단점으로 거론되는 관현악법을 쇼스타코비치가 대신 맡아주었으니 두려울 게 없다. 대체로 내면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보리스 고두노프와 달리 호반시나는 인물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2막 골로친의 방에서 골로친, 호반스키, 도시페이가 싸우는 장면은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다. 말하는 대로 노래하는 무소륵스키 스타일이 분명히 살아있지만 오케스트라 반주가 좀 더 선율적이며 풍성하다. 보리스 고두노프에 멋진 아리아가 별로 없다고 징징댔던 것 같은데 호반시나에는 노래같은 노래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극의 진행과 노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이다. 


작품도 멋지지만 공연도 훌륭하다. 연출은 드미트리 체르냐코프가 맡았다. 거대한 무대를 여러가지 공간으로 쪼갰다는 점에서 슈퇼츨의 카브/팔리 무대를 연상케하지만 각각의 공간이 입체적으로 배치되어있다는 점에서 그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극 중에 등장하지 않는 표트르 대제와 소피아 섭정을 무대 위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 묵역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해준다. 시대적 배경을 날린 것 역시 전형적인 체르냐코프의 방식이라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무대가 이렇게 생겼다. 왼쪽이 이반 호반스키의 집을 나타내는 공간.

연출 중에 특히 인상깊은 것은 바로 이반 호반스키의 몰락을 보여주는 4막 1장이다. 무너져간 권력자의 히스테리를 제대로 표현하며 이 때 등장하는 유명한 관현악곡 페르시아 노예의 춤도 매우 잘 살려냈다. 

사람을 활용한 미장센 역시 압권이다. 결국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5막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도시페이와 신자들의 모습을 배경하나 없이 이렇게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마지막 합창 장면은 객석의 불이 점점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했다. 영상으로 봤을 때는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너무 교훈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직접 보았을 때는 상당히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가수들 역시 압권이다. 일단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세 명의 베이스 - 호반스키, 도시페이, 샤클로비티가 탁월하다. 호반스키역의 파타 부르출라제Paata Burchuladze는 한창 날리던 가수로 (나는 몰랐지만) 주요 오페라 앨범에 상당히 많이 참여한 노장이다. 노래가 기가 막히게 무서운 건 기본이고 싸이코같은 장군 연기까지 뛰어나다. 여기에 또 다른 베테랑 아나톨리 코체르가Anatoli Kotscherga는 또 어떤가. 뮌헨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피멘 역을 맡았을 때는 그냥 안정적이고 괜찮다는 인상 뿐이었지만 여기서는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종교지도자를 표현해낸다. 피멘 처럼 조곤조곤하게 노래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천둥같은 소리를 자랑한다. 두 가수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이 오페라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이 두 명에 비하면 샤클로비티 역의 발레리 알렉세예프Valery Alexejev는 조금 심심한 편이다. 

마르파 역의 도리스 조펠Doris Soffel은 다채로운 노래를 아주 연극적인 표현으로 처리해낸다. 예쁜 노래를 부르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담긴 노래였기에 흡입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러시아적인 발성을 자랑하기도 한다. 골리친 역의 존 다스착John Daszak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츠의 전설>에서 인상깊게 본 가수다. 비열한 인간을 노래하는 데 적격인 가수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바그너 가수인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그트와 카밀라 닐룬트가 작은 역할로 출연한다. 포그트의 러시아어는 확실히 어색한 편이다. 닐룬트는 1막에만 잠깐 등장하지만 안정적으로 뻗어나가는 소리로 탁월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지휘는 켄트 나가노가 맡았다. 나가노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게엠데로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공연이다. 저번 보리스 고두노프를 보고 나가노의 지휘를 열심히 깠었는데, 반성하고 있다. 나가노야 말로 꾸밈없이 악보의 내용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다. 이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감정과잉으로 몰아가지 않고 구도자적인 자세로 풀어나가며 작품의 웅장함을 살려낸다. 이건 절대 내가 엘베 필하모니에서 나가노 지휘의 구레의 노래를 직접 들을지도 모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절대, 절대로 아니다. 

앞으로 제가 함부르크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나가노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를 망쳐놨다거나 현음 빼곤 특색 없는 노잼 지휘자라는 이야기는 함부로 꺼내시면 안됩니다. 쉿!



보리스 고두노프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낀 작품인데 언젠가 한번 꼭 직접 보고싶은 공연이다. 아마 러시아 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겠지... 왜 보리스 고두노프보다 평가가 낮을까 생각해봤는데, 일단 작곡가 본인이 완성하지 못하여 짬뽕 판본으로만 존재하는 작품이라는 점, 역사적 배경이 복잡하여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가수 캐스팅하기가 보리스 고두노프보다 더 빡세다는 점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 어려운 걸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해냈다. 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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