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페라 이해한 뇌 구합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오페라는 무엇이었습니까. 어렸을 적에는 <나사의 회전>이 그렇게 어려웠다. 브리튼 공포증 걸렸음. 벤저민 브리튼의 <Written on Skin>도 난해했다.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어려운 작품이다. 리게티의 <위대한 죽음>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작품이다. 베르크의 <보체크> 역시 음악이나 소재나 난해하기로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압도적인 놈이 나타났다. 덴마크 작곡가 루에드 랑고르(1893~1952)의 오페라 <적그리스도Antikrist>. 이름조차 익숙치 않은 작곡가지만 구자범 지휘자가 그의 교향곡 1번을 초연하겠다고 (작년부터....) 나서면서 요즘은 나름 알려진 편이라고 생각한다. 랑고르 교향곡 1번 아시아 초연이 한달도 남지 않았으니 그의 오페라 한번 봐보겠다고 도전했다.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범상치 않은 제목에서부터 이 오페라의 포스가 느껴진다. 거기다 장르가 Religious Mystery Opera, Church Opera래...뭐야 이거


이 작품은 프롤로그와 6개의 장면으로 구성돼있다. 이 오페라에는 반복돼서 등장하는 인물도 없고 전통적인 의미의 플롯도 없다. 적그리스도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The Mouth Speaking Great Things", "Despondency", "The Great Whore", "The Scarlet Beast", "The Lie", "Hatred" 등이 등장한다. 각각의 장면은 이렇다.

프롤로그: 루시퍼가 적그리스도를 깨운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개념과 상반되는 것들이다. 각각의 적그리스도는 1장부터 5장까지에 해당한다.
The Lamb => Light of the Wilderness,
Truth => Vainglory, 
Crucifired => Despondency,
the Risen Christ => Lust,
the Revealed Christ => the Strife of Every Man.

번역하면 괜히 내 무식이 뽀록날까봐 영어 단어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이 정도는 다 아시죠?


1장: The Light of the Wilderness (등장인물: Spirit of Mystery, Echo of the Sprit of Mystery)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시대 정신을 묘사한다(고 한다). 이 장면은 불안정한 황혼의 영역으로 세상일에 지쳐있고 답답한 대기로 상징되며 "the morning이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로 차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구요? 왜냐하면 저도 이해를 못하고 쓴 거니까요 하하하하ㅏㅎ


2장: Vainglory (등장인물: The Mouth Speaking Great Things)

적그리스도의 세상에서 포퓰리스트 적인 인물이 나타나 여러가지 슬로건을 외치는 장면. 천박하고 피상적인 현대 생활을 표현한다.


3장: Despair (등장인물: Despondency)

시대정신과 이 시대 인류의"십자가cross"의 전형을 보여주는 비관주의와 무관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2막

4장: Lust (등장인물: The Great Whore (Babel), The Scarlet Beast, Mankind(혼성합창))

쾌락주의, 이기주의, 욕망의 복음을 the Great Whore와 Scarlet Beast가 전한다. 랑고르에 따르면 "Darwinistically sensual mood of power"를 표현했다고 한다. 이게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랑고르 너 지금 다윈느님을 적그리스도라고 까는 건가여?? 결국 인류가 the Beast를 숭배하는 걸로 장면이 마무리된다.


5장: Every Man's Strife with Every Man (The Great Whore, The Lie, Hatred, Mixed choir, Demons)

적그리스도의 세상에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바뀐다. The Lie와 the Great Whore가 진실과 힘을 두고 싸운다. Hatred가 끼어들지만 분쟁은 끝나지 않는다. 세상이 끝나갈 때 the Lie는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만 the Whore는 이게 자기를 위한 불꽃놀이라고 생각한다. 

6장: Perdition (Mystical Voice, the Voice of God)

Perdition은 '영원히 계속되는 벌, 지옥에 떨어지는 벌'이라고 한다. 신비한 목소리가 적그리스도와 그의 업적을 저주하며 산자와 죽은자 모두에게 지옥의 벌을 선고한다. 랑고르 왈, "Perdition은 godless한 공허함을 모두 소비하는 것을 뜻한다." 신이 적그리스도를 끝장낸다.

피날레 (The Ephphatha Chorus)

Ephphatha는 Be opened!라는 뜻으로 마가복음에서 그리스도가 귀머거리를 치유할 때 등장하는 말이라고 한다. 천상의 빛이 나타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의 질서로 이루어진다 라는 내용의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이 설명을 다 읽은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여튼 이런 내용이다. 하하하하하하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죠. 아마 저 글만 읽으면 어느 정도 말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오페라를 봤을 때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들리는 건 음악이고 내 눈앞에 뜬 건 자막이로다.


아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리뷰를 써야 하다니. 너무 잔혹한 일이다. 나에게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이 이렇게도 없다는 것도 절망적인데 이걸 굳이 또 글로 써서 내 무식을 자랑해야하다니. 


작품을 들으면서 멘붕이 오는 건 음악 역시 도저히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인만이나 진은숙의 음악에 비하면 난해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분명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다. 아예 감정이 없을 음악이라면 덜 하겠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강하게 말하려는 듯 강렬한 표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도 조금 닮았고 닐센의 음악과도 닮은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론 전혀 다른 악풍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세기말스럽고 괴기하면 이해를 하겠지만, 1장은 놀랍도록 평온하다. 이것이 적그리스도라면, 랑고르가 적그리스도를 긍정적인 개념으로 바라본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아니면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다가왔다가 모든 걸 파괴시키는 것이 적그리스도인가? 


랑고르는 오페라의 대본도 자신이 직접 썼다. 음악가인 부모님 아래서 자란 랑고르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이 세상에 위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그랬기에 자신이 살고 있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암울한 세계를 타파하기 위해 이런 오페라를 써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덴마크 왕립 극장은 도대체 이게 무슨 오페라냐면서 리브레토만 보고 바로 거절했다. 랑고르는 후에 대대적인 개정에 착수하지만 결국 개정판 역시 리브레토만으로 거절당한다.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했던 덴마크 왕립 극장이 자신들의 수준 낮은 안목에 반성하며 이 작품의 온전한 덴마크 초연을 2002년에 진행한다. 이미 세계 초연은 1999년에 인스부르크의 티롤주립극장에 뺏긴 이후. 인스부르크는 아마 세기말이라고 저 작품을 고른 게 아니었을까 싶다.


랑고르 교향곡 음반도 많이 남긴 덴마크 산 믿을맨 토마스 다우스고르Thomas Dausgaard의 훌륭한 지휘와 카밀라 닐룬트, 파울 엘밍 같은 북유럽의 훌륭한 가수들이 등장한다. 


한가지 확실한 건 랑고르가 보통 작곡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느 한 순간도 진부하지 않게 새로운 음향을 선보인다. 어떤 작곡가도 시도하지 않았던 형태의 예술이며 이 작품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인간의 작품이다.

조금 더 시간을 써서 파보고 싶은 작곡가고 작품이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랑고르 음악이 궁금하신 분은 랑고르 교향곡 1번을 초연하는 구자범 & 코리안 심포니 공연을 보러가면 됩니다.

예매는 여기서 



17살에 쓴 작품을 들을 가치가 있냐구요? 이 인간이 37살에 쓴 작품은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손도 못댈 정도니까 일단 17살 작품부터 따라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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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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