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스의 모페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니!

20세기의 끝자락에서부터 21세기에 들어서 중요한 모페라 스튜디오 녹음을 꼽자면 야콥스, 네제세겡, 쿠렌치스를 꼽을 수 있겠다.

쿠렌치스를 접하고 나서 마음 속의 우선 순위에서 밀리긴 했지만 야콥스의 음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페라 녹음이었다.

야콥스 모페라의 특징은 단순히 오케스트라 반주의 퀄리티가 좋아서가 아니라 가수들의 편안하고 말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이라 할 수 있다. 프레이징을 인위적으로 너무 길게 늘어뜨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갈 듯이 노래한다.


모든 시대연주는 음반에 비해 실연에서 디버프가 있기 마련이다. 음량이 작은 건 기본이고 조율이 틀어지는 일도 당연히 발생한다. 시대연주가 대세가 될 수 있었던 건 다 녹음의 조명빨 화장빨로 그런 단점을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걸 공연장 가면 느끼게 된다. 그걸 실연에서 얼마나 숨기고 제어할 수 있느냐가 시대악기 단체의 실력 차이라 할 수 있겠다.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역시 명성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각각의 악기군이 모두 시대악기 특유의 개성적인 소리를 내면서 롯데홀의 울림 안에서 상당히 아름다운 합을 만들어냈다. 야콥스의 음반에서처럼 하프시코드 대신 포르테피아노를 사용했는데 음반에서만큼 소리가 뚜렷이 들리진 않았다. 역시 음반빨을 이겨낼 수 없는 악기 밸런스...

대신 곳곳에서 포르테피아노의 애드립은 상당히 재밌었다. 2막 더블 데이트 전 뻘쭘한 상황에서 C장조 K545를 귀엽게 쳐준다거나, 알폰소가 così fan tutte를 외치면서 바로 서곡의 그 선율 뒤를 이어서 연주했다. 사실 그 서곡의 투티 코드가 알폰소의 così fan tutte 였다는 걸 최근에 악보 보면서야 깨달았는데 그 점을 참 재치있게 표현해줬다. 


보기 전에 가수들 개개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조금 걱정도 했다. 열어보니 다들 대단한 실력자더라. 페란도 역의 마크 밀호퍼Mark Milhofer가 가장 맘에 들었다. 처음엔 그냥 대책없을 정도로 가볍고 편안한 목소리만 내는 가수라고 생각했는데 2막에서 뚜껑 열리고 부르는 Tradito, schernito 는 상당히 감정이 잘 실렸다. 1막에서 부른 Un'aura amorosa는 가사 그대로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이 공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바로크 오페라 하기 참 좋은 목소리다 정말.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도 인상적인 가수들이었다. 다만 아리아의 특성 상 피오르딜리지 역의 가수가 자연스레 더 돋보였다. 둘이 함께 처음 등장하여 부르는 듀엣에서부터 그 동안 오페라 무대에서 들어보기 어려웠던 모차르트적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비브라토는 절제돼있고 성량 자랑을 하는 경우도 없었다. 무리해서 힘을 넣지도 않았고 선율의 아름다움을 꾸밈없이 부드럽게 전달했다.

데스피나 역의 임선혜 씨는 참 좋아하는 가수이지만, 데스피나 역에 적격인지는 잘 모르겠다. 굉장히 적극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따로 연출가가 없어서 그런 건지 데스피나가 너무 귀엽고 발랄하게만 표현된 건 아닌가 싶다. 대충 주변에 들리는 평들이 '임선혜 씨가 연기 엄청 잘했다'가 많던데, 연기 동작이 크고 적극적이라 그렇게 느낄 수 있긴 한데, 내가 느끼기엔 동작이 좀 과장되고 클리셰적이라 아쉬웠다. 그리고 동선 상 유일하게 한 번도 무대 뒤쪽에서 노래하지 않아 목소리를 100% 감상할 수 없었던 점도 아까웠다.

두 베이스 바리톤 역시 무난하게 잘해주었다. 알폰소 역의 마르코스 핑크는 얼굴의 인상이나 목소리나 루제로 라이몬디를 살짝 떠올리게 했다. 젊은 출연진 중 혼자 나이가 많아 나이 든 조언자로서의 돈 알폰소를 보여줬다.  크리스티안 센은 국립오페라단 오를란도 핀토 파초때 타이틀 롤을 맡았던 가수였다. 말만 타이틀 롤이지 분량이 제일 적은 역할이라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콘체르탄테였지만 모두 암보에 무대를 꽤 넓게 활용하였기에 세미 스테이지 정도는 됐다. 가수들의 코믹 연기도 적당한 선에서 잘 표현됐다. 마지막 피날레에서는 피오르딜리지와 페란도, 굴리엘모와 도라벨라가 함께 서서 노래 했는데, 각자의 커플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더 그럴 듯한 결말을 보여줬다.


반주와 노래 모두 정말 좋았지만 내 자리는 안 좋았다. 처음에 자리에 앉았을 때 오케스트라 뒤쪽에 의자가 있는 걸 보며 이 배치면 소리 정말 잘 들리겠다고 즐거워했다. 캬 클덕질 오래하면 역시 좌석 선택도 노하우가 생기죠ㅋㅋㅋ 하지만 야콥스 입장할 때 몸을 숙여서 보니까 지휘자 옆에 의자가 다 놓여있었다 흑흑흑 나의 오만방자함을 반성합니다ㅜㅜ

역시나 가수들이 앞에서 노래할 때와 뒤에서 노래할 때 차이가 상당히 컸다. 차라리 서정적인 아리아를 부를 때는 괜찮은데 빠른 노래를 부를 수록 잔향 때문에 발음과 소리가 뭉개져서 들렸다. 반대로 뒤에서 부를 때는 음반이 부럽지 않은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줬다. 그래서 가수들이 등장할 때 마다 제발 뒤에서 부르길 기도했다. 2막에서 페란도랑 굴리엘모가 뒤에서 잘 부르다가 페란도가 빡쳐서 앞에 나가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굴리엘모가 "ove vai?" 라고 하는 그 대사가 딱 내 심정이었다. 어디가냐 이놈아 앞으로 가지 말고 거기서 부르라고ㅠㅠ


사족인데 프로그램 북의 프로필의 외국어 표기가 진짜 아무말 대잔치다. "크", "헨겔브로크", "발칸토 레퍼토리", "옥타비오 단토네"(원래 Ottavio다), "베를린에서 슈투트가르트 퍼셀의 <요정의 여왕과> <영과 육과의 항쟁>을 선보이기도 하였다"(슈투트가르트에서 퍼셀의 요정 여왕을 했고 베를린에서 카발리에리의 <Rappresentatione di anima et di corpo>를 한거다), "번머드 교향악단", "프란츠 브뤽겐", "파리 갸르니에", "라모네 브뤼셀극장" (같은 극장을 다른 사람 프로필엔 "브뤼셀 로열 모네 극장", "브뤼셀 모네왕립극장" 이라고 썼다),  "파비오 비온뒤", "잘츠부르크 그로세스페스티벌하우스"(독일어로 쓸 거면 다 독일어로 쓰던갘ㅋㅋㅋㅋㅋ). 인쇄판에선 고쳤던데 홈페이지에는 "리카르도 챠이"도 있었다. 챠이 내한 공연 일정 잡힌 거 보고 그 때서야 이름을 잘못 읽었다는 걸 알았을까....  이쯤 되면 르네 제이콥스라고 안쓴 게 용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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