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 중 오늘 공연에서 토스카를 능욕한 사람은 누구인가?

1. 카바라도시
2. 토스카
3. 스카르피아
4. 지휘자
5. 연출가

답: 3번 빼고 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아침에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가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 바리톤 양준모 씨가 스카르피아로 캐스팅됐다. 한 마디로 평하자면 섹시한 스카르피아였다. 야수 처럼 거칠게 소리지르는 스카르피아를 보다가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 이것이 로마 경찰청장의 품격이구나 싶었다. 투박하고 무식한 악당만 보다가 수트가 잘 어울리는 인텔리 빌런을 보는 기분이었다. 첫 대사 Un tal baccano in chiesa에서부터 단순히 목소리 큰놈이라 무서운 게 아니라 얼음장처럼 차가운 카리스마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 스카르피아가 소리지르기 시합하는 게 아니었지. 객석 뒷편까지 매력적인 목소리가 날카롭고 정확하게 찔러들어왔다. 정확한 딕션, 곳곳에서 연극적인 발성, 항상 최대로 내지르지 않고 조절했다가 중요한 순간에 터뜨리는 것 까지 훌륭했다. 여태 바그너와 베르디를 부르는 것만 들어보고 푸치니를 부르는 건 처음이었는데 역시 노래는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였다.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던 '뉘른베르크 명가수' 경연대회에서 화란인 Die Frist is um으로 2등상을 수상한영상. 콩쿨은 아니고 뉘른베르크 슈타츠테아터 가수들로 꾸린 오페라 갈라인데 장소가 장소다보니 명가수 경연대회 컨셉으로 한듯. 이미 2006년에 뮌헨 ARD콩쿨 우승하셨다.

나머지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펑크 님이 예전 국오 토스카 공연 리뷰에 "노잼 토스카는 못생긴 미인 같이 어불성설인 줄 알았는데"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번 공연에서 비슷한 걸 느꼈다. 푸치니의 오페라 반주가 이렇게 툭툭 분절적으로 끊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악보에 이렇게 쉼표가 많았단 말인가. 지금까지 푸치니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의 흐름 위에 가수가 얹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느꼈다. 거기다 어어어엄청 느려서 3시에 시작했는데 1막이 끝났을 때가 3시 55분이었다. 토스카 1막이 55분이라니 이거 실화입니까. 뭐 처음에 들어와서 박수 치고 하는 걸 감안하더라도 순연주시간이 50분은 넘겼을 거다.

CF감독이 연출했다는데, 내가 뭘 보고 온건가 싶다. 다니엘레 아바도는 참 좋은 연출가였습니다.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쩔쩔 매던데 너무 안쓰러웠다. 국어 수행평가로 연극을 준비하면 저런 게 나오지 않았을까. 토스카의 걸음걸이와 자세는 마치 심은경이 연기하는 느낌이었다. 2막에서 스카르피아의 협박을 받는 카바라도시는 앞을 봐야할지 뒤를 봐야할지 조차도 안 정해져있는지 두리번 거리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2막이 끝나고 스카르피아가 죽었으니 더 볼 이유가 없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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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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