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와 오페레타 중간의 무언가.


알슈가 아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라는 어떤 느낌일까? 심플리치우스는 분류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대화체 대사가 들어있으니 오페레타로 볼 수도 있지만 내용과 음악이 그렇게 가볍진 않다. 작곡가 본인은 일단 오페라라고 불렀다. 위키피디아에선 오페레타라고 해놨다. 

이야기가 쓸데없이 복잡한 편이다. 옛날에 한 남작이 살았는데, 한 여자를 두고 자기 형제와 다투다 전쟁 중에 살해한다. 그 사건 이후 현자 타임이 와서 진짜 숲 속에 들어와 현자가 된다. 그러면사 어린 아들 역시 숲으로 데려와 파르지팔 마냥 전쟁과 군인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바보, 심플리치우스로 키운다. 이 심플리치우스 말고 다른 아들이 있는데 이 아들 아르님은 어머니인 플리센의 여백작과 함께 수도원에 들어가있다. 플리센 여백작의 유언 왈, 남편 가문의 재산은 이 가문이 자신의 플리센 가문과 다시 결혼할 때만 상속이 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교회에 헌납한다고 한다.

이게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 배경이다. 그 뒤를 요약하면 심플리치우스는 병사들을 만나 잡혀가고 다른 아들 아르님은 플리센 가문의 여자에게 반해 수도원을 뛰쳐나왔다. 아르님은 자기의 가문을 밝히며 구애하지만 다른 사칭자가 나타나고, 아르님이 수도원에서 독신의 맹세를 한 사실이 드러난다. 이 때 뜬금없이 테러가 발생해 두 구애자 모두 스파이로 의심받아 갇히게 된다. 그리고 역시나 뜬금없이 황제의 전령이 심플리치우스의 정체를 밝혀주고, 플리센 가문의 장군은 자기 딸을 아르님이 아니라 심플리치우스와 결혼시키려 한다. 하지만 심플리치우스는 친하게 지내던 술집 딸과 결혼하겠다고 하고, 아르님은 원래대로 자신이 반한 플리센 가문의 딸과 결혼하게 된다.


뭔가 중구난방 같은 스토리지만 실제로 이렇다. 

30년 전쟁의 마지막 해가 배경이기 때문에 작품에서 반전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편이다. 데이빗 파운트니의 연출도 여기에 컨셉을 맞췄다. 덕분에 요한 슈트라우스와 심플리치우스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르게 무대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가득차있다. 이 괴상한 무대가 슈트라우스의 걱정 없이 활기찬 선율과 맞물리면서 아이러니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특히 스웨덴 죄수들이 부르는 합창에서 나무에 메달린 시체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나름 그로테스크 연출에 내성이 있는 사람에게도 소름끼칠 만한 장면이었다.

다채로운 등장인물 수만큼이나 다양한 음악이 나온다. 심플리치우스 아버지인 그륍벤 남작의 신세 한탄 아리아나, 아르님이 심플리치우스가 자기 동생임을 알고 부르는 노래 처럼 느린 템포의 서정적인 곡도 나오고 요한 슈트라우스 하면 떠오르는 경쾌한 춤곡도 물론 많다. 각각이 이어붙여지는 과정이 좀 매끄럽지 않다. 중간에 대사가 들어가는 부분이 많아서도 있겠지만, 그냥 노래를 부르기 위한 노래가 상당히 많다. 로시니의 진지한 오페라를 듣는 것 처럼, 분명히 진지한데 가벼운 분위기가 물씬 난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낭만주의 시대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단조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레하르의 달콤함을 미리 보여주는 듯한 구석이 많아 놀랐다. 


음악과 연출의 괴리 때문인지, 표지를 뜬금없이 슈트라우스 동상으로 바꿔놨다. 원래 표지는 오른쪽이었다. 오른쪽 표지만 보면 무슨 특촬물 느낌이 난다.

     

 


가수들은 화려하다. 취리히는 전속가수를 뽑을 때 포텐을 보고 뽑는 건지, 전속가수로 활동하다 용이 된 가수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카우프만. 그 외에 이 공연에 나오는 미하엘 폴레와 표트르 베차와(Beczala가 아니라 Beczała 라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도 월드 스타가 됐다. 뭐 잘하니까 그만두고 나온 거겠지만, 혹시 취리히를 벗어났기 때문에 포텐이 터진 건 아닐까 괜히 드립을 치고싶다. 탈취 효과라고 해야하나... 


분장이... 추바카세요...??

 폴레가 99년부터 취리히에서 활동했다고 하니 이 때가 첫 해였을 테다. 아쉽지만 요즘 폴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목소리는 건조하고 고음은 답답하다. 매력을 찾아보기 힘든 노래다. 요즘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가수의 젊은 시절이라기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다. 득음을 좀 늦게한 타입이 아닌가 싶다.

베차와 역시 가볍고 깔끔한 목소리를 자랑하지만 감정 표현이 단순해보인다. 뭐 이쪽은 감정표현 잘한다는 소리 들으려면 10년도 더 지났어야하니 그려려니 했다. 타이틀 롤을 맡은 테너 마틴 치세트Martin Zysset는 심플리치우스 다운 연기는 훌륭하지만 노래는 영 아니다. 거칠고 윤기없는 목소리에 노래도 단조롭다. 


노래를 잘하는 느낌을 주는 건 단 하나 술집 딸내미 역할을 맡은 마르티나 얀코바Martina Janková였다. 심플리치우스와 츤데레 케미도 잘 맞고 사랑스런 표정 연기에 부드럽고 매력적인 목소리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벨저뫼스트는 취리히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상당히 괜찮은 슈트라우스 느낌을 뽑아낸다. 취리히 극장의 오케스트라 실력이 구리다는 건 이제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리하르트 말고 요한 슈트라우스라면 어렵지 않게 해낸다. 벨저뫼스트의 지휘에는 확실히 기합이 들어가있다. 2막의 피날레 앙상블을 듣고 있으면 이 작품을 마치 대단한 마스터피스 처럼 대하며 연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래전 찍은 영상이라 만듦새가 조악하다. 1막 중간에 무대 뒤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이크랑 떨어져 있어서인지 소리가 전혀 안 들린다. 

공연에서 건질 건 벨저뫼스트의 지휘, 그리고 파운트니의 기괴한 연출 밖에 없는 듯하지만 특이한 작품이라 한번 볼만한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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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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