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네이글스테드의 재발견.


올해가 무슨 티토의 자비 기념해라도 되나보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쿠렌치스가 셀라스와 공연하고 있고 바덴바덴에서는 네제세겡이, 글라인드본에선 티치아티가 이 작품에 도전했다. 모페라로 한가닥하는 젊은 지휘자들이 모두 <티토의 자비>로 진검승부를 벌이는 셈이다. 아 물론 최종 승자는 쿠렌치스가 될 거라는데 일말의 의심도 없다. 나머지는 그냥 쿠렌치스의 잘츠부르크 데뷔 오페라가 얼마나 위대한지 비교군이 되어줄 뿐!


<티토 황제의 자비>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리지만, 아마 일본에서 비롯된 번역인 것 같다. 이 블루레이를 일본 hmv에서 샀는데, 띠지에 <황제 티토의 자비>라고 적혀있더라. 황제랑 자비는 한자고 가운데 '노'가 들어가니 아마 맞겠지. 굳이 황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럼 돈 카를로는 <왕자 돈 카를로>인가. 피가로의 결혼은 <하인 피가로의 결혼>이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이 될테다.

보통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로 <마술피리>를 꼽는데, 쾨헬 번호상으로는 <티토>가 621번으로 620번 마술피리 보다 한 끝발차로 뒤에 있다. 그렇다고 티토가 정말 마지막 오페라냐고 하면 그것도 좀 곤란하다. 마술피리를 작업을 하던 와중에 의뢰를 받아 18일만에 티토를 완성하고 다시 마술피리를 작업했다. 때문에 초연 역시 티토가 먼저고, 완성된 순서 역시 티토가 먼저다. 그러니 티토가 마지막 오페라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수라 할 수 있다.

리브레토는 오페라 세리아에 있어서 CJ만큼의 독점을 선보였던 메타스타시오 것을 가져다 썼다. 레오폴드 2세의 보헤미아 왕 대관식을 기념해 프라하의 국립극장에서 축전적인 오페라 세리아를 의뢰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 새로 작업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하여간 높으신 분들은 예술이 뚝딱하면 나오는 건줄 아는 알아요.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이 좀 오래된 편이고 구리지만 그래도 쉬카네더에 비하면 낫다고 할 수 있겠다. 메타스타시오 대본이 없었으면 모차르트가 작곡을 포기할 수도 있었으니 그냥 감사히 들어야겠다.


작품은 아주 특이하다. 이건 뭐 오페라 세리아도 아니고 오페라 부파도 아닌 그 뭔가라고 해야하나. 35세의 나이에 이미 만년을 맞이한 모차르트는 다폰테와의 작업 이후 오페라에 있어서 창의성이 폭발하게 되고 원래 리브레토에 없는 중창을 꽤나 추가했다. 이 때 작업한 리브레티스트가 카테리노 마촐라Caterino Mazzolà다. 원래 리브레토에 들어있는 아리아 18개(!)를 삭제하고 4개를 새로 쓰고, 2개의 듀엣과 3개의 트리오, 피날레 앙상블을 추가했다. 덕분에 길이가 2시간 20분 가량으로 오페라 세리아 치고 꽤 짧다. 아리아들을 많이 쳐내서인지 원래 대본이 그런지 레치타티보 세코들의 길이가 상당히 긴 편이다. 작곡 시간이 매우 짧았으니 이런 세코는 아마 다른 작곡가가 쓰고 모차르트가 감수만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 레치타티보 세코를 들으면서 "오 역시 모느님은 레치타티보도 섬세해"라고 할 필요는 없단 이야기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티토가 비텔리우스 황제를 퇴위시키고 황제에 즉위한다. 비텔리우스의 딸 비텔리아는 복수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세스토에게 티토에 대한 복수를 요청한다. 문제는 세스토가 황제의 베프라는 거. 세스토가 갈등하고 있는데, 티토가 황후 후보였던 베르니체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비텔리아가 듣게 된다. 혹시 자신이 황후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에 복수를 잠깐 늦추는 비텔리아.
여기에 다른 커플이 등장한다. 세스토의 남매 세르빌라와 그와 연인 지간인 안니오다. 문제는 티토가 베프 세스토를 위한답시고 남매인 세르빌라를 황후로 삼겠다고 선포한 것. 안니오는 가서 말릴 생각은 안하고 "세상에 세르빌라 처럼 아름답고 똑똑하며 황후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죠"라고 무슨 영화의 한장면 같은 대사를 날리며 포기한다. 자기가 황후가 아니라는 사실에 비텔리아는 다시 한번 빡치고 세스토에게 다시 복수를 요청한다. 
문제는 세르빌라가 티토에게 가서 자긴 안니오를 사랑한다고, 황제가 원하면 거역은 하지 않겠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안니오 것이라고 티토에게 말하며 순정만화의 한장면을 찍는다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티토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저 자비롭게 허허 웃어 넘겨야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세르빌라와 결혼을 포기한다.
세스토는 갈등 끝에 비텔리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베프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세스토가 떠났는데 비텔리아에게 '너가 황후로 간택됐다'라는 전령이 온다. 비텔리아는 황후가 됐다는 기쁨보다 세스토에 대한 걱정이 앞서며 멘붕한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세스토의 사랑을 복수의 도구로 활용했던 비텔리아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하니 이제 세스토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물론 세스토가 진짜 암살에 성공하면 황후고 뭐고 없으니 진짜 더 문제다.
세스토는 결국 로마에 불을 지른다. 하지만 티토는 살아남고, 세스토가 그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배신감에 세스토를 추궁하지만 세스토는 차마 비텔리아가 시켰다고 말을 못한다. 역시 제목이 스포일러 하듯이 티토는 결국 세스토를 용서해준다. 하지만 세스토가 비밀을 지킨 걸 보고 양심이 찔린 비텔리아가 모든 게 자신의 음모였다고 티토에게 실토한다. 티토는 베프 용서하는데 자비력을 다 소진했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한번 더 멘붕하지만, 결국 작품의 제목대로 끝난다.


이야기가 뻔하다면 뻔하고, 은근히 갈등의 구조가 톱니바퀴 물려가든 잘 돌아가는 걸 보면 역씌 메타스타시오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인물이 나름 잘 잡혀있는 편이다. 참을인을 몇번씩 새겨넣는 티토, 베프와 짝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유부단 발암물질 세스토, 자신의 구혼자를 가지고 놀며 악행을 사주하는 비텔리아, 자기 연인이 황제랑 결혼하게 생겼는데 '사랑한다면 놓아줘야지' 같은 신파극 찍고 있는 안니오.

이 중에서 극의 중심에 있는 건 물론 세스토와 비텔리아다. 극 내내 감정 변화를 가장 많이 겪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티토에 대한 복수각과 결혼각을 동시에 재면서 세스토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비텔리아의 능력이란 혀를 내두룰 정도다. 그런 비텔리아가 자신이 황후가 됐다는 소식에 휘청거리며 세스토를 찾는 장면은 상당히 극적이며 인간적인 전환이다.

특히 유명한 아리아로 세스토가 비텔리아의 사주를 받아 복수를 행하고 오겠다고 말하는 Parto. Ma tu, ben mio와 비텔리아의 마지막 아리아 Non più di fiori가 유명하다. 두 아리아 모두 클라리넷 오블리가토가 중요하게 쓰이는데, 특히 parto에서는 가수와 함께 초절기교를 선보여야한다. 두 아리아 모두 상당히 흥미로운 구조를 갖추고 있어 모차르트의 아리아 중에서도 손에꼽을 만한 작품이다.

1막이 세스토의 로마 방화와 티토가 죽은 줄 알고 부르는 노래로 끝나는데, 일반적인 막 피날레와 많이 달라 당황스러웠다. 2막 피날레 역시 다 폰테에서의 3단 로켓 같은 속도변화가 없이 밋밋하게 끝나는 편이다.


이 공연에서는 캐서린 네이글스테드Catherine Naglestad가 비텔리아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우리나라에 KBS 발퀴레 콘체르탄테 때 지클린데로 왔던 적이 있다. 바그너 가수라고만 생각해 모차르트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연기나 표현력이 상당히 좋다.

자기의 사랑을 얻으려고 베프를 죽이러 가겠다고 노래하는 세스토 앞에서, '너가 티토를 죽이기 전까진 눈빛 한번 주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구혼자를 한없이 작게 만들며 자신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게 만드는 고단수의 전략이 엿보이는 연기다.

세스토 역의 수잔 그레이엄Susan Graham 역시 극 내내 고통받는 세스토를 잘 표현해낸다. 연기가 다소 과장되어있다는 인상은 있지만 그건 세스토가 너무 괴로운 역할이라 그럴지도. 노래도 역시 훌륭하다.


반면 티토 역의 아빠 프레가르디엥Christoph Prégardien은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당시 50세가 되기 전이니 나이가 든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훨씬 나이들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목소리이지만 역할에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군인이며 사령관이었는데 목소리에 조금의 힘도 없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물론 모차르트의 작품 자체가 가벼운 목소리를 요구하긴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 원래 오페라 전공이 아니라 그런지 중요한 고음이 전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목소리가 안정되지 않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다.

안니오 역의 한나 에스터 미누틸로Hanna Esther Minutillo는 매력적인 두터운 목소리를 보여준다. 세르빌라 역의 예카테리나 시우리나Ekaterina Siurina는 정말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탈리아어 딕션이 너무 구리다. 레치타티보는 무슨 중학생이 영어 교과서 읽는 느낌이다.


실뱅 캉브를랭의 반주는 구리다. 이 사람 코지 판 투테를 참 좋게 들었는데 내가 모알못이라 착각했나 의심이 들 정도다. 첫 서곡에서부터 정돈되지 않는 아티큘레이션과 애매한 템포로 노잼의 향기가 스멀스멀난다. 


우어젤 & 칼에언스트 헤어만(Ursel und Karl-Ernst Hermann)의 연출은 무난하다. 가수들의 연기 지도가 좋았고 동선이나 무대도 심플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게 있다. 하지만 촬영이 너무 구시대적이라 클로즈업이 많다. 전체적인 공간의 느낌을 보기 힘들어 답답했다.


현재까지 티토의 유일한 블루레이지만, 아마 내년에 소니에서 쿠렌치스 & 셀라스의 잘츠부르크 공연을 내놓을 테고 오푸스 아르테에서 티치아티 & 구트 영상물을 내놓을 테니 곧 묻힐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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