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몬테베르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 이런 작품 뒤에 바로크 오페라들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페라가 이 정도의 음악극이 다시 되기 까지는 2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레치타티보를 설명하면서 몬테베르디의 예시를 들지 않는다면 처음 듣는 사람은 부명 레치타티보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 

흔히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음악으로 된 것이 오페라의 특징이라고 설명하며 레치타티보가 곧 음악극에서 오페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명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몬테베르디 이후 레치타티보는 가수들의 편의를 위해 극도로 단순화됐으며 일반적인 연극의 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으로 만든답시고 대충 껴넣은 부분 같게 들리기 마련이다. 몬테베르디의 레치타티보는 그렇지 않다. 아리아나 아리오소와 분명하게 구분되지만  하나의 음정으로 적당히 떼우는 바로크 레치타티보와는 격이 다르다. 명확하게 반복되는 선율은 없지만 음악은 분명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포페아의 대관>은 <오르페오>, <율리시즈의 귀환> 과 함께 몬테베르디 삼부작을 이룬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중 소실되지 않고 살아남은 세 작품이다 .이 중에서 첫 오페라는 물론 오페라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오르페오>이며, <포페아>는 마지막 작품이다. 포페아는 1643(2?)년에 초연되었으며 오르페오는 1607년에 초연되었으니 두 작품 사이에는 꽤나 긴 시간이 있다.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포페아를 몬테베르디 작품의 정수로 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 구조가 단조로운 <오르페오>와 달리 <포페아>는 네로, 포페아, 세네카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야기도 좀 더 복잡한 편이다. 각각의 인물마다 음악의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사랑에 빠진 네로와 포페아는 서정적이며 선율적인 노래를 하지만 복수에 불타는 오토네와 오타비아네는 극적인 레치타티보가 주를 이룬다. 


중창이 필요한 적재적소에 사용되었다는 것도 바로크 오페라와 다른 점이다. 가수들을 배려하기 위해 주구장창 아리아만 불러대는 바로크 작품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부분은 작품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네로와 포페아의 이중창 Pur ti miro, Pur ti godo이다. 몬테베르디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꼽을 만한데, 재밌게도 몬테베르디가 작곡한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는 베네데토 페라리. 이 부분 외에도 몬테베르디 외의 다른 작곡가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작품의 성공을 순전히 몬테베르디에게만 돌리는 것은 조금 부당한 일일 수도 있겠다. 오페라가 정말로 예술의 정수라고 불릴 수 있었던 시대에 살던 예술가들의 협업물이 아니었을까. 한 작품을 완성하는 게 온전히 한 예술가의 천재성만으로 되지 않았다는 건 왠지 남일 같지가 않다. 대학원생을 살

피로 얼룩진 이야기 끝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나온다는 건, 쇼스타코비치에서나 볼 수 있을 아이러니다.



오슬로의 아름다운 해변가에 위치한 노르웨이 오페라 극장의 공연이다. "오페라 공연의 마일스톤"이라는 거창한 평을 받았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촬영하며 또 한번 영상효과를 덧씌웠다. 영화 씬시티를 연상시키는 흑백 필터효과가 인상적이다. 필터를 통해 오직 붉은 색만 강조되어 여성 인물의 붉은 입술과 과도할 정도로 등장하는 피가 훨씬 강렬하게 등장한다. 섹스와 폭력,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완벽하게 미니멀한 무대, 특색없는 현대 복장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이야기로 환원시키고자 했다.




거창한 홍보문구나 평과는 달리 연출은 그닥 특별한 점이 별로 없다. 영상에 저런 필터 입혀논게 특별하다면 특별하지만, 피가 아주 많이 나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놀랄 만한 일은 없다. 텍스트를 비틀어 놓은 부분도 별로 없으며 전반적인 연기력이 특출난 것도 아니다.  무대를 말 그대로 피바다로 만들어버리긴 한다. 하지만 오페라 연출이 고어물 경연대회도 아니고 섬뜩할 정도의 잔혹함만으로 오페라 연출의 마일스톤으로 삼을 순 없을 테다.


네로 역의 가수 야체크 라스츠코프스키Jacek Laszczkowski는 미친 폭군을 잘 연기해내지만 목소리가 아쉽다. 목이 쉰 듯한 소리가 난다. 


포페아를 맡은 비르기트 크리스텐센Birgitte Christensen는 목소리가 몬테베르디를 부르기에는 조금 무겁다. 표현 역시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지 못하며 타이틀롤 다운 존재감을 얻는 데 실패한다. 전에 본 글라인드본의 드니스는 이 부분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실력을 보여줬기에 더 비교되었다. 팀 미드Tim Mead의 오토네와 파트리샤 바르동Patricia Bardon의 오타비아가 무난히 잘해 주고고, 오히려 권혁수 닮은 포페아 하녀와 오타비아의 노래가 인상깊다.


영상의 가장 큰 아쉬움은 반주다. 몬테베르디 처럼 오래된 작품을 연주할 때 바소 콘티누오를 잘 채워넣는 것이 전체 오페라의 인상을 결정짓는 핵심 포인트다. 조금 더 적극적이거나 창의적으로 해석해냈다면 어땠을까 싶다. 중간에 탱고 풍 선율을 집어 넣은 건 인상적이지만 단편적인 장치로 끝나버렸다.


이 작품을 더 괜찮게 만들어낸 공연은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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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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