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천재성.


쿠렌치스 & 셀라스가 잘츠부르크에 올랐다. 다 폰테 삼부작 레코딩으로 일약 모페라 영웅이 된 쿠렌치스와 오래 전부터 독특한 연출로 이름을 날린 피터 셀라스가 함께 모차르트의 고장에서 <티토>를 재탄생시켰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함께 작업을 해왔다. 2012년 테아트로 레알에서 <욜란타>와 <페르세포네>를 함께 작업하고 있던 때에 쿠렌치스가 셀라스에게 "너 인디언 여왕 아냐?" 물었고, 셀라스는 "ㅇㅇ 25년동안 그거 준비했는데"라고 대답했다. 차이콥스키랑 스트라빈스키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퍼셀 오페라 이야기를 꺼낸 쿠렌치스도 신기하고, 그걸 마침 또 25년 동안 준비하고 있었던 셀라스도 신기하다. 거의 무림고수 급 뜬금포 대화이지만, 결국 두 사람은 <인디언 여왕>을 함께 작업하게 된다. 이 정도 우연이라면 영혼의 동반자 아닌가. 두 공연 모두 블루레이로 발매됐다. 이 영상은 2017 에호 클라식에서 올해의 음악 DVD/블루레이 - 오페라 부문을 수상했다. 


이 두사람이 어떻게 잘츠부르크에 티토로 함께 초대되었는지 좀 궁금하다. 잘츠부르크에서 셀라스를 먼저 점찍은 건지, 쿠렌치스를 점찍은 건지, 아니면 둘이 꼭 세트로 데리고 오려고 했던 건지, <티토>를 점찍어놓고 지휘와 연출을 찾은건지 말이다. 혹시 아나. <인디언 여왕> 때 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오페라 종이에 써서 동시에 공개하기 했는데 <티토>가 나왔을 지도.


셀라스는 전통적인 오페라 연출가와는 많이 다르다. 내가 아는 한 대표작이 다 폰테 삼부작 (참고로 전국오단장의 박사 논문 주제가 이 연출의 분석이었다), 존 애덤스의 오페라들, 사이먼 래틀과 함께한 바흐 수난곡 등이다. 바일이나 힌데미트, 메시앙의 오페라 등 대체로 현대 오페라를 많이 맡았고, 원래 본업 역시 연극 연출이었으니 대체로 메인스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헨델 시오도라나 바흐 수난곡 처럼 무대작품이 아닌 작품을 연출한 경우도 많다. 인디언 여왕은 셀라스가 50분 짜리 작품을 3시간 가량으로 재탄생 시킨 작품이다. 작품의 선택이나 작업 방식이 분명히 다른 연출가들과 상당히 다르다.


이번 티토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 중간중간에 모차르트 C단조 미사의 발췌(베네딕투스, 라우다무스 아 테, 키리에, 퀴 톨리스)나 아다지오와 푸가 K. 546,  프리메이슨 장송곡을 삽입했다. 각각의 곡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많이 바꿨다.


셀라스 연출의 티토에 대한 감상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아낌없이 주는 티토"다. 티토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걸린 것 마냥 호구짓을 일삼고 다닌다. 사실 셀라스가 특별히 그런 장면을 더 추가해낸 것도 아닌데, 적당한 강조만 해주니 이 작품에서 티토가 얼마나 고통받는 인물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비텔리아: 감히 너가 나한테 관심을 안주고 이상한 외국여자랑 결혼할라고 해??? 내가 니 마음은 못 움직여도 니 베프는 조종할 수 있지.


세르빌리아: 황후로 간택해줘서 고맙지만 난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미안한데 너랑 결혼해도 널 사랑할 순 없음ㅋ


티토: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난 진짜 괜찮아! 애들이 다 내 앞에서 너처럼 솔직했으면 좋겠다 하하하하하하



세스토: 티토야 베프로서 미안한데 너가 죽어줘야겠어. 


안니오: 티토야 세스토가 너한테 총을 쏘긴 했지만, 그래도 내 사랑하는 세르빌리아의 오빠인데 좀 용서해주면 안될까?? 너 원래 착한 애니까 용서해줄 수 있지?


티토: 나한테 왜이러는 건데

세스토: 이유는 묻지마 말할 수 없어. 너가 침대에서 죽어가고 있어도 내 여친이 시켰다는 말은 못해. 그래도 우리 옛날 우정을 생각해서 좀 봐주라. 너도 내 맘 알지? 내 맘 알면 그렇게 화 못낼거야


티토: 신이시여 통치하는데 잔혹한 마음이 필요하다면 나한테 제국을 뺏어가든지 심성을 고쳐주든지 하세요ㅜㅜ 난 본성이 호구라 애들한테 나쁜 말 못하겠단 말이에요ㅠㅠ 



비텔리아: 미안 너 죽이려고 한 거 나였음. 내가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ㅠㅠ 세스토는 내가 시킨 대로 따라한 거 뿐이야. 그래도 용서해줄 거지? 


티토: 시발 엉엉 몰라 나 황제고 뭐고 그냥 다 때려칠래ㅜㅜ


"자비"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겼던 계몽주의 군주가 그저 착한아이 컴플렉스의 피해자 처럼 나타난다. 이로서 작품에 나타나는 각각의 가사들이 얼마나 티토를 '만만하게' 보고 말하는 건지 깨닫게 된다. 티토는 자비로운 군주가 되기 위해 모든 걸 다 포기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베르니체도 떠나보내고, 자신에게 온 공물 역시 폼페이의 재해 피해자들에게 주도록 요구한다. 새롭게 황후로 선택한 세르빌리아는 당당하게 난 다른 남자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니, 역시 티토는 자비로운 성군이 되기 위해 '쿨한 척' 한다. 그렇게 만만하게 살고 있으니 베프라는 세스토가 짝사랑하는 여자 마음 얻어보겠다고 자기한테 총을 들이미는 거 아닌가. 그렇게 총 맞고 겨우 살아난 와중에 안니오가 찾아와서 세스토가 자기 처남될 사람이라고, 넌 착하니까 용서 좀 해달라고 부탁한다. 수도 테러에 국가 원수를 살해하려고 한 사람을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보통 상황에서 가당키나 하나. 티토입장에서는 거의 사리 나올 것 같은 경지의 이야기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작품을 보헤미아 왕 즉위식으로 본 레오폴트 2세가 이 작품을 보고 불쾌한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프로 입단하는 투수한테 옛날 최동원이나 김성근 시절 권혁 보여주면서 "역시 야구선수는 투지로 사는거지!" 라고 훈계하는 꼴이랄까. 황제가 됐으면 어? 사람들이 너 부인 맘에 안든다고 항의하면 이야기도 들어주고! 돈이 생기면 다 어디 좋은데 기부도 하고! 어? 친구한테 총 좀 맞아도 용서해주고! 다 알고도 용서하고 잊어야하는기라!


셀라스는 여기에 적당한 음악을 일관된 논리로 추가해넣었다. 처음 등장하는 음악은 티토가 자신에게 온 공물을 폼페이 피해자들에게 쓰겠다고 선언하자 사람들은 C단조 미사의 상투스를 부른다. Benedictus qui venit로 시작해 Hosanna in excelsis로 끝나는 노래를 들으며 티토는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티토가 세르빌리아의 본심을 듣고 포기하기로 결정하자 세르빌리아는 기쁜 마음으로 Laudamust te를 부른다. 이제부터 슬슬 티토는 찬양을 받지만 기분이 편하지 않다. Laudamus te 끝날 때 저음을 반복하다가 바로 티토의 아리아 Ah, se fosse intorno al trono로 이어질 때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돌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티토의 모습에서 무언가 잘 못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쿨한 척 해보지만 티토의 마음은 문드러져 간다. 


여기에 한가지 더 강조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세스토가 저지른 범죄의 참혹함이다. 세스토의 죄는 방화와 국가원수 살해 미수다. 당시 로마에서 방화라고 하면 가장 강도높은 테러였을 테다. 구트나 셀라스가 이를 폭탄 테러 처럼 연출한 것은 과장이라고 하기 어렵다. 셀라스는 구트와 달리 한술 더떠 2막이 시작할 때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면을 추가했다. 세스토의 행동은 단순히 베프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끔찍한 범죄라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세스토의 테러 전에 아다지오와 푸가를 넣어 테러 준비 과정을 훨씬 묵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효과적이었다. 2막 처음을 키리에로 시작한 것도 테러와 연관되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티토가 세스토를 용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처음 이 오페라를 볼 때도 생각한 것이지만, 수도 방화범을 황제가 마음대로 사면해도 괜찮은 것인가? 친구한테 죽을 뻔한 티토가 배신감을 이겨내고 자비를 베푸는 게 대단한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걸 순전히 티토의 마음대로 정할 권리는 없다. 이건 티토랑 세스토의 개인적인 다툼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테러의 직접적인 피해자 중 한명으로서 티토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그 용서가 얼마나 괴로운 건지 직접 보여준다.

셀라스는 확고한 대답을 주려고 하지 않는 듯 하다. 그는 이 일을 실제 있을 법한 일 처럼 잘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티토는 이 고난의 연속을 겪으며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가사에서나 연출에서나 티토의 마지막 용서는 티토에게서 삶의 의지를 앗아간다. 이 용서가 옳은 것인지, 모범적인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 같다. 결국 민중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지도자를 잃게 되는데, 이것이 다른 인물의 잘못인지, 아니면 "자비심 쩌는 계몽군주" 컴플렉스를 이기지 못한 티토 본인의 잘못인지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다. 분명한 건 티토가 신에게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외치는 마지막 울림이 매우 절실하게 전달 된다는 점이다. 화려한 피날레 때문에 작품 전체가 묻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프리메이슨 장송곡에 합창을 덧붙인 노래를 이어서 연주하며 끝맺는다.


셀라스가 추가한 또 다른 포인트는 인종 구성이다. 주역 여섯 명 중 세스토와 세르빌리아 남매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모두 흑인 가수다. 아마 잘츠부르크 역사 상 흑인 가수의 비중이 가장 높은 오페라 공연이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도 포기와 베스를 올리지 않는 이상 다시 찾아보기 힘든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합창단 역시 인종과 종별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히잡을 둘러 쓴 사람이 많다. 흑인이 지배하고 백인과 이슬람이 함께 사는 곳에서 백인이 테러를 저지르고, 흑인 군주가 용서하는 셈이다. 또 다른 모차르트 계몽 군주의 예시인 <후궁 탈출>의 파샤 젤림이 대놓고 유럽인으로 설정돼있는 걸 생각한다면 아주 흥미로운 패러디다. 서곡에서 무장 경찰이 이 민중들을 제어하는 걸 보면 아마 이들이 난민과 비슷한 위치가 아닐까 싶다. 

세르빌리아와 안니오 커플 역시 인종을 넘어선 사랑이 된다. 특히나 안니오의 복장이 <노예 12년> 시대의 복장을 연상케 하기에 더욱 부각되는 느낌이다.


바흐 수난곡 연출에서 보여줬 듯 셀라스는 음악에 맞춰 사람의 몸짓을 연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세스토와 비텔리아의 첫 듀엣의 스트레타 부분에서 두 사람의 동작은 음악에 맞아 떨어지면서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분명히 과장된 표현이고 연극적이지 않은 행동이지만 오페라의 음악과는 매우 잘 어울린다. 이런 연출이 극대화 되는 부분이 바로 세스토의 아리아 parto, ma tu ben mio에서 클라리넷과의 이중창을 대놓고 무대 위에 올렸다는 점이다. 가수와 클라리넷 주자가 "마치 이중창 하듯"이라는 것과 실제로 무대 위에서 몸을 맞대고 이중창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임을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클라리넷 주자도 누가 쿠렌치스가 뽑은 놈 아니랄까봐 보통이 아니다. 눈빛이 살아있어... 

마지막 스트레타에서 쏘울 넘치는 연주를 보여준다. 라디오로 들을 때도 대단하다 싶었는데, 박수가 왜 그렇게 크게 쏟아졌는지는 영상 중계를 보고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티토가 화려한 패시지를 부를 때 마치 고통에 몸부리치는 것 처럼 연출한 것 역시 탁월한 연출이었다. 어떤 연출가나 자기가 음악을 잘 알고 있고 음악이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라고 주장하지만, 셀라스 만큼 음악을 잘 활용하는 연출가는 흔치 않다. 음잘알 인정합니다.


 셀라스의 존재감이 워낙 강렬하지만 그렇다고 쿠렌치스가 묻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쿠렌치스는 셀라스의 천재성에 전혀 뒷쳐지지 않는 음악을 선 보인다. 첫 서곡에서부터 팡파레와 메인 파트 간의 템포를 다르게 분절시킴으로써 예상치 못한 급박한 전환을 보여준다. 원래 서곡은 처음부터 Allegro로 똑같은 템포다. 특이하게 오케스트라의 바소 콘티누오로 바로크 류트를 활용하여 독특한 음색으로 리듬감을 강조한다. 쿠렌치스의 다이나믹 폭은 아주 넓어 이보다 더 커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미묘한 크레셴도를 계속해서 끌고가 포르티시모 투티에서 거대한 흥분을 만들어낸다.


레치타티보 처리에서도 다른 연주와 크게 다르다. 반주 포르테피아노는 화음을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넓은 아르페지오로 표현한다. 레치타티보가 시작할 때는 그 전의 음악 선율을 몇번 쳐주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포르테피아노를 레치타티보 뿐만 아니라 아리아나 중창에서도 활용하니 전반적으로 음악이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세르빌리아가 티토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recurring motif 처럼 안니오와의 듀엣 선율을 연주하는 극적 장치를 추가했다. 셀라스의 연출은 무대 위에서 많은 줄거리를 이미 설명해 레치타티보를 대폭 줄였기에 많은 음악을 추가했음에도 플레이 타임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쿠렌치스의 모차르트 반주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악보에 없는 템포나 다이나믹 변화를 만들어내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류트를 집어넣은 것도 마찬가지일 테다. 실제로 초연 당시에 오케스트라에서 류트를 썼는지 안 썼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류트를 넣었을 때 쿠렌치스가 원하는 소리가 난다는 게 중요하다. 세르빌리아와 안니오의 듀엣 Ah, perdona al primo affetto에서 둘이 함께 2절을 부르는 장면에서 다이나믹이 한단계 발전할 때 나오는 포르테피아노의 글리산도 장식음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빠른 음악에서 찰진 액센트와 리듬감, 그리고 현을 물어뜯는 듯한 강렬함이 인상적이지만 서정적인 선율을 컨트롤 하는 능력 역시 발군이다. 피아니시모에서 아주 섬세한 다이나믹 변화와 템포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쿠렌치스와 비견될만한 지휘자를 꼽기 어렵다. 2막 세르빌리아의 아리아 S'altro che lagrime가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순간이다. 서정적인 부분이더라도 다이나믹 변화를 절제하고 기계적이고 평탄하게 가는 것은 너무 지루하다. 쿠렌치스의 다이나믹은 폭만 넓은 뿐 아니라 해상도 까지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월등히 좋다.

뛰어난 오페라 지휘자 답게 가수를 반주하는 재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부분에 긴 파우제가 들어가 정적을 만들어도 괜찮은지, 아리아의 전체적인 템포 흐름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가수가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에서 나아갈지를 제대로 꿰뚫고 있다. 쿠렌치스의 템포 선택에는 상상력의 한계가 없는 것 같다. 1막에서 비텔리아의 황후 간택을 알리는 삼중창에서는 말도 안되는 템포로 쏘아 붙이고 2막 마지막 장면 전환에서는 아주 느린 템포로 장중한 마무리를 준비한다.


쿠렌치스의 영상물이 이것저것 나온 것이 많지만 무지카 에테르나와 함께한 것은 퍼셀 밖에 없었다. 퍼셀 영상에서도 충분히 실력을 발휘하지만 희귀 레퍼토리라 특별히 비교 대상이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모차르트 오페라를 다루면서 실력을 제대로 입증해냈다. C단조 미사를 집어넣은 것 역시 무지카 에테르나 합창단의 아름다운 음색과 컨트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효과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아다지오와 푸가에서는 두터운 현의 모습을 자랑했고 라우다무스 테 에선 수비토 포르테에 얼마나 재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호산나를 객석에 달려나가 부르는 장면은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연출까지 모두 어우러진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가수들은 푸블리오 역의 윌라드 화이트를 제외하곤 모두 처음 들어보았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캐스팅이었다. 가장 인상깊은 건 세스토 역의 마리안느 크레바사Marianne Crebassa 였다. 86년 생의 어린 메조 소프라노로,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연기와 노래 표현을 보여줬다. 수잔 그레이엄의 연기가 자신이 받는 고통을 그대로 쏟아내는 스타일이라면, 크레바사의 세스토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다. 목소리로 감정을 토해내는데 상당한 재능이 있다. 남장한 모습이 정말 잘 어울려서 케루비노 하면 딱이겠다 싶었는데, 이미 바지 역할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였다. 에라토에서 낸 첫 독창집 이름도 "Oh, Boy!"다.


이 클립을 보니까 딕션이 좀 아쉽고 비브라토나 프레이징이 내 취향가 좀 다른데, 쿠렌치스와 할 때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가수다.

그 다음으로는 티토 역의 러셀 토마스Russell Thomas가 무거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잘 해줬다. 오히려 셀라스의 의도에는 이렇게 오텔로 마냥 고통받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2막의 아리아 Se all'impero 에서 고음은 역시 깔끔하게 안 났지만 고통받는 티토의 심정을 충분히 잘 전달했다. 마지막 피날레 역시 다른 가수들이 대체로 노잼이 되는 것과 달리 대단한 분노로 중심을 이끌어나간다.

비텔리아 역의 골다 슐츠Golda Schultz는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져 강렬한 인상을 주진 않지만 쿠렌치스의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노래를 들려준다. 2막의 아리아 Non più di fiori를 끝내고 흘리는 눈물도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원래 아리아가 하나 뿐인 세르빌리아는 라우다무스 테가 추가되면서 비중이 늘었다. 크리스티나 간쉬Christina Gansch는 저음이 살짝 아쉽지만 비브라토와 발성을 잘 조절해내는 모범적인 모차르트 소프라노다. C단조 미사 키리에가 추가된 안니오 역시 지니 드비크Jeanie de Bique가 잘 소화해줬다. 트리니다드 출신의 소프라노로 벨벳 같이 부드러운 음성이 매력적이다. 푸블리오 역을 맡은 윌라드 화이트는 이제 70이 넘은 나이인데도 얼굴에서 티가 안난다. 목소리에서 노쇠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티토와 대비되는 강인한 장군을 연기하는 데에는 적임자다.


내가 보러가는 샹젤리제 공연에서는 푸블리오와 안니오를 제외하곤 캐스팅이 완전히 다르다. 찾아보니 셀라스 연출로 무대에 올리는 잘츠부르크나 암스테르담 공연과 콘체르탄테로 투어를 하는 공연에 아예 다른 캐스팅을 썼다. 아마 셀라스가 캐스팅할 때는 가수의 피부색과 나이를 고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인 가수 이름값은 콘체르탄테에 나오는 가수들 (카리나 고뱅, 막시밀리안 슈미트, 스테파니 두스트락)이 더 높지만 잘츠부르크의 가수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공연의 가수들이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샹젤리제 공연에서는 C단조 미사를 똑같이 사용할지 <티토> 원본만 가지고 공연할지 궁금하다. 


지휘, 연출, 가수, 오케스트라, 합창단 어느 것 하나 이렇게 빠지지 않는 공연을 보는 건 하나의 작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비교적 마이너한 오페라에 머물렀던 <티토>를 찢어지는 고통으로 가득찬 걸작의 반열에 올려놨다. 


덧: 메가박스 중계로 봤는데 음향이 구려도 너무 구렸다. 몇년 전에 코엑스에서 봤을 때도 오페라 듣기에 좋은 음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너무 심했다. 이런 음향으로 음악 듣겠다고 3만원을 다시 낼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지막 프리메이슨 장송곡의 합창 가사 자막이 안 나온 것도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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