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추기의 어려움.


이 공연에 기대하는 것은 하나, 카를로스 알바레스의 돈 조반니였다. 흐보로스톱스키나 테지에 같은 월드 스타는 아니지만 묵직한 베르디 바리톤 역에서 만큼은 항상 탁월한 모습을 보인 가수다. 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빈에서 활동하는데, 이아고, 운명의 힘 카를로, 리골레토 공연이 모두 인상적이었다. 연기와 강렬하고 거친 노래를 갖췄다는 점에서 매끈하게 빠진 다른 바리톤들과 비교가 됐다.


그러나 베르디와 모차르트를 모두 잘 부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옛날 가수는 모르겠고, 현역 활동하는 (고음악 전문 제외) 가수 중에 돈 조반니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으로 킨리사이드, 스코부스, 마테이, 크비첸 등이 있을 텐데 한분은 베르디에 대단한 욕심이 있지만 선천적으로 알러지 반응이 있어 큰 사고를 치셨고 한 분은 이탈리아 오페라는 안 부른다고 불어 동카를로스나 겨우 부르는 분이고 한 분은 바그너 파느라 베르디는 안 부르는 사람이고 남은 한명은 뭐 쟤가 리골레토를 부르는 걸 듣느니 그냥....  묘하게 넷 다 돈 조보다 오네긴을 더 잘 하는 사람들이고, 그나마 부르는 베르디가 로드리고 라는 공통점이 있다.


알바레스의 돈 조반니는 좋은 이아고가 좋은 돈 조반니와 거리가 멀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가 됐다. 너무 거칠다. 세레나데를 이렇게 우악스럽게 부를 수 있다니. 이아고가 오텔로 꼬시는 노래인가? 목소리가 전반적으로 너무 무겁고 어둡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매력이 없다. 돈 조반니는 어떤 식으로든 매력을 한껏 뽐내기 마련이다. 그게 마초적이듯, 부드러운 마성이든, 팔 근육이든, 아니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찌질한 모습이든 말이다. 카를로스 알바레스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아고나 카를로를 부를 때는 참 잘하던 양반인데, 악마같은 모습은 잘 해내지만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는 듯 했다. 시종일관 진중하고 무거웠으며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혼자 세상의 모든 걱정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더 황당했던 건, 마지막 장면에서 씩 웃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다는 거다. 

아니 이렇게 멋진 미소를 가진 사람이 왜 오페라 내내 엄근진 노잼 모습만 보여주는 거죠ㅋㅋㅋㅋㅋㅋ


가수진 중 레포렐로 역의 로렌초 레가초Lorenzo Regazzo와 돈나 엘비라 역의 소니아 가나시Sonia Ganassi가 안정되고 잘 자리잡힌 발성을 보여준다. 돈나 엘비라 들으면서 잘 한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는데 비브라토를 절제하면서 둥글둥글하며 알맹이가 확실한 소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레포렐로가 2막에서 알바레스의 목소리와 스타일을 상당히 잘 따라했다는 점이 재밌었다. 마제토 역의 호세 안토니오 로페스José Antonio López는 가사를 강렬하며 찰지게 처리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반면 돈나 안나 역의 마리아 바요María Bayo는 목소리가 너무 가볍고 불안했다. 로지나를 부를 때야 고음 기교로 커버가 되겠지만, 돈나 안나를 부를 때는 콧소리 섞인 가벼운 목소리가 경박하게 들렸다. 돈 오타비오를 맡은 호세 브로스José Bros의 독특한 목소리도 듣고 있기 힘들었다. 둘이 함께 부르는 듀엣은 진지한 느낌은 전혀 안 들고 마치 오페라 세리아 사이의 가벼운 막간극을 듣는 것 같았다. 브로스의 노래 중 좋은 건 딕션이 아주 명확해서 귀에 쏙쏙 집어넣어준다는 점인데, 반대로 바요는 흐물거리는 딕션이라 상당해 대비됐다.

체를리나를 부른 가수는 로시니 역으로 익숙한 마리아 호세 모레노María José Moreno였다. 테크닉이 훌륭하지만 표현력이 조금 아쉽다라고 기억했는데, 체를리나에서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차분한 노래를 들려줬다. 끼를 부리지 않아도 차분하고 잘 정돈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이 캐스팅 사이에선 존재감을 발휘했다. 2막 아리아 Vedrai Carino에서 앞 소절을 자전거 타고 무대를 한바퀴 돌며 부르는데 차분하게 잘 해냈다.


돈나 안나와 돈 오타비오를 제치고 영광의 꼴등을 수상할 가수는 기사장 역의 알프레드 라이터Alfred Reiter였다. 도오온 조바아안니! 할 때 이렇게 위압감 없는 가수는 처음 봤다. 


지휘를 맡은 건 빅토르 파블로 페레스Víctor Pablo Pérez는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잘 다듬는 지휘자지만 상상력이 부족해보였다. 악보에 표현된 것들은 잘 만들어 내는데 악보에 똑같은 반복이 생기는 부분을 아무런 느낌없이 연주하기 때문에 지루한 부분들이 생겨났다. 서곡은 깔끔하고 무겁지 않게 시작하는 듯 하지만 중간중간 반복되는 패시지에서 노잼의 향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돈나 안나 아리아의 아콤파냐토에서 강렬하게 밀어붙이는 걸 보면 물 탄듯한 지휘자는 확실히 아닌데, 그냥 악보에 없는 걸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인 듯 했다. 샴페인 노래 반주 같은 건 빠른 템포와 깔끔한 앙상블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듯 했지만 가수가 오케 템포에 맞춰서 못 들어오면서 꼬였다. 하지만 앙상블 장면을 잘 조율해낸 점은 좋았다.


연출은 1940년대 스페인으로 배경을 옮겼다. 돈 조반니의 파티를 제외하곤 흑백 톤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이다. 근데 이제 뭐 돈조 연출에 뭘 해도 별 감흥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 설교 피날레를 2차대전 당시 스페인 정부의 프로파간다 촬영으로 바꿔놓은 점은 맘에 들었다.

캐스팅 구멍 없는 돈조를 보는 건 영상물이라 하더라도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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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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