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늦잠 더 잘까 고민했다. 메종 드 라디오 한번 가보기도 했고, 아는 곡도 콰르텟자츠밖에 없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단원들의 실내악 공연이다. 슈베르트 사중주악장, 쇼스타코비치 옥텟, 에네스쿠 옥텟을 공연했다. 무료 공연이라 예약한 사람은 미리 표 받아서 선착순 입장하는 방식이었다. 예약은 해뒀으니 일찍 가기만 하면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기가 참 어렵더라. 가는데도 걷는 시간 포함 4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할 때는 거의 10시 50분이었다. 자리는 1층 1열 가장 왼쪽. 다른 글에서 언급하다가 말았는데 이상하게 이번 공연 중에 왼쪽에 많이 앉았다. 로열 오페라 두번 다 왼쪽 사이드 자리였고 쿠렌치스도 중앙 왼쪽, 가르니에 코지도 중앙 왼쪽. 제가 이렇게 좌편향이 심합니다.


슈베르트에서부터 상당히 괜찮은 시작을 보여줬다. 유명한 현악사중주 팀이라고 소개해줬으면 오 역시 잘한다고 봤을 수준. 서로간의 음색도 잘맞고 곡 해석도 철저히 준비한게 보였다. 대비가 일어나는 지점에서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전반적으로 날카로운 음색 역시 통일돼있었다.


이 때 까지는 그냥 잘하는 실내악 공연 왔다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짜는 옥텟이었다. 사중주 팀에 네 명이 더 껴서 두 개의 옥텟을 연주했다.

둘 다 그 전날 잠깐 들어보고 간 것이었는데, 두 곡이 가지고 있는 격정적인 에너지를 제대로 뿜어낸 공연이었다. 통일된 음색, 통일된 아티큘레이션, 작품을 바라보는 같은 관점, 복잡한 성부 구성에서 좋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등 좋은 실내악 단체가 갖춰야할 것들을 다 갖춘 연주였다. 퍼스트 바이올린이 복잡한 솔로를 할 때 가끔 음정이 나가거나 퍼스트 비올라가 선율을 연주할 때 솔리스트 다운 안정감이 부족한 것은 있었지만 함께했을 때 그런 단점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나 에네스쿠나 앙상블을 맞추기 매우 까다로운 구조인데도 단원들이 모두 하나의 음악적인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에네스쿠의 경우 1악장의 선율이 다른 악장에도 계속 등장하는 순환 형식으로 돼있는데 그 때마다 극적인 뉘앙스가 살아있는 연주였다. 대체로 날이 서있는 음색은 쇼스타코비치 2악장에서 특히 작품에 잘 어울렸다.


연주의 퀄리티 만큼이나 인상 깊은 것이 있었다. 무료 공연이라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도 많이왔다. 미취학 아동 수준도 있었던 것 같고, 아기 울음소리도 종종 들렸다. 관객들이나 연주자들이나 그 분위기에 얼마나 불만을 느꼈을지 내가 섣불리 단언하긴 힘들다. 하지만 무료 공연이다 보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오고 어린 학생들도 와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장에 올 수 있다는 것에서 먼저 부럽고, 그 공연이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같은 게 아니라 쇼스타코비치와 에네스쿠라서 부러웠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조차 노키즈존을 외치는 우리나라에서는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애들을 데려가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공연은 어린이 공연 밖에 없다. 어린이 공연과 일반 구분은 상당히 뚜렷한 편이다. 일반 공연에 어린이를 데려가는 건 눈치보이는 일이고 (취학아동이라는 최소 제한도 있고) 어린이 공연에 가서 공연의 퀄리티를 따지는 것도 우습게 비쳐진다. 예당 마술피리 처럼 말이다. 장하나 의원이 엄마가 되고나서 갈 수 있는 곳은 어린이 공연 어린이 전시 키즈카페 등등 뿐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최소한 이 날 공연은 그런 게 없어보였다.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서울시향 실내악 프로그램으로 짰어도 도전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평가 받았을 테다. 반대로 애들 공연에 쇼스타코비치나 에네스쿠를 넣었다간 무슨 이야기를 들을 지 모른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로 봄의 제전 같은 걸 고르는 오케스트라는 단 한군데도 없을 테다.

클래식 공연장에 자주 왔을 것 같은 관객들도, 그리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온 것 같은 관객들도 참 많아보이는 공연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가 눈에 보였다. 메종 드 라디오 좌석에는 점자판 좌석번호가 붙어있다.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곳에선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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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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