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크의 두 작품, 보체크와 룰루는 가장 대표적인 음렬주의 오페라다. 그리고 둘 다 음악만큼이나 난해한 줄거리를 자랑한다. 그래서 리뷰를 도대체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리뷰를 꾸역꾸역 쓰는 이유는 얼른 써 넘기고 새 오페라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룰루를 처음본 건 2010년 국립오페라단의 초연 때였다.  내 기억으로 룰루는 오케스트라 편성도 다 못 채워서 일렉톤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슷한 시절에 했던 살로메 초연 역시 일렉톤을 썼다. 룰루가 2010년에, 보체크는 2007년에 국오에서 초연했다니, 아직 엘렉트라랑 명가수 초연도 안된 나라에서 참 미스테리한 일이다. 베르크의 오페라가 알슈나 바그너에 비해서 빨리된 이유가 궁금하다. 높으신 분 중에 베르크 덕후가 있나? 

 

잘츠부르크의 첫 룰루 프로덕션으로 2010년에 초연됐고 이 영상은 2011년 재연 때 녹화한 것이다. 베라 네미로바가 연출을 맡았는데, 2019년 국립오페라단 윌리엄텔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다. 나는 프랑크푸르트 오퍼에서 공연한 반지 영상물을 통해 처음 이 사람의 연출을 봤었는데 거대한 원형 무대장치를 잘 활용했고 연기지도도 훌륭했던 걸로 기억한다. 크랜츨레가 맡은 군터가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 때 오열하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네미로바의 연출은 대체로 연극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해석하기 어려운 상징들도 종종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누구에게나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3막 1장의 사교 장면이다. 인터미션 때부터 가수들은 마치 잘츠부르크의 관객인것 마냥 1층 객석에 앉아 연기한다. 몇명은 아예 잘츠부르크 어셔 유니폼을 입은채로 이들을 자리로 안내한다. 잘츠부르크의 부르주아 관객들을 극의 배경으로 끌어들인 건데, 관객들의 옷을 보면 역시 잘츠부르크는 부르주아의 끝판왕이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

 

잘츠답게 출연진이 호화롭다. 타이틀 롤의 파트리샤 프티봉은 물론이고 파볼 브레슬릭이 화가역으로 나오며 미하엘 폴레가 쇤 박사로 나온다. 조련사 겸 운동선수로 토마스 요하네스 마이어가 나오며 쉬골흐역은 프란츠 그룬트헤버Franz Grundheber가 맡았다. 한 때 최고의 로게이자 미메였던 하인츠 제드닉이 단역인 공작/하인으로 나온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룰루는 연기적으로나 성악적으로나 소화해내기 어려운 역할이다. 노래의 양도 많고 난이도도 높은데 연기의 폭도 끔찍하게 높다. 프티봉은 양쪽으로 모두 탁월한 모습을 보이며 공연을 이끌어나간다. 프티봉의 룰루는 사실적인 인간이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4차원 적인 인상을 준다. 속을 읽을 수 없는 표정 연기와 많은 인간을 적극적으로 파멸시키는 듯한 악마적인 모습까지도 잘 표현했다.

남자 가수들 중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미하엘 폴레다. 미하엘 폴레가 연기 잘하고 노래 잘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냐만은 여기선 룰루의 상대역 중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쇤 박사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룰루를 가장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람, 룰루에게 빠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스스로 잘 알면서 결국 굴복하게 되는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쇤 박사가 죽은 뒤 부터 남은 캐릭터들이 어떤 감정이고 어떤 캐릭터인지 쉽게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걸 보면 폴레가 이 캐릭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는지 알 수 있다. 화가를 맡은 브레슬릭의 경우 목소리도 어울리고 노래도 좋지만 연기가 인상깊진 않았다.

알브레흐트의 지휘와 빈필의 연주는 물음표다. 몇군데 골라서 연주를 조금씩 비교해보면 알브레흐트의 연주가 조금 물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녹음 탓도 꽤 있을 것 같은데, 분명한 드라이브가 걸려있다기 보다는 투명하고 방어적이라고 해야하나, 들으면서 조금 답답하거나 의뭉스러운 순간이 꽤 있었는데 다시 비교하면서 들어보니 내가 받은 인상이 괜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빈필이 이 작품에 자신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알브레흐트에게 실망한 적이 없었기에 조금 예상 외였다. 

 

네번 연속으로 오푸스 아르테에서 발매한 것 내지만 읽다가 유니텔에서 발매한 걸 읽으려니까 글이 짧고 단순하다. 체감상 길이도 절반 밖에 안 되고 내용도 위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 나열 정도다. 여기에 오타도 있다. 분명 2011년 펠젠라이트슐레에서 녹화한건데 블루레이 커버 뒷면에 모차르트 하우스 2010년 라이브라고 잘못 표기돼있다. 한글 자막은 도저히 봐주기 힘든 수준이라 그냥 영어 자막으로 봤다. 영상 감독이 악명높은 브라이언 라지라고 타이틀에다가도 박아뒀다. 라지 아니랄까봐 클로즈업으로 도배돼있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