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대부분의 작품은 계속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친숙해지고 이해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체크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분명히 앉아서 다 봤는데 내가 뭘 본 건지 잘 모르겠다. 블로그 제목을 생각없이 듣기로 바꿔야하나... 

 

보체크는 룰루보다도 먼저 완성됐고 길이도 더 짧지만 룰루에 비해서 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룰루에 대해서 감을 조금 잡게 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룰루에 비하면 보체크는 이야기의 큰 줄기도 조금 명확하지 않고 인물의 묘사도 다소 파편적이다. 음악적으로도 마찬가지인데, 룰루에서는 낭만적인 순간들이 분명히 있는데 보체크는 그런 면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신기한 건, 들으면서 음악을 이해하거나 따라잡지 못하겠는데도 지루하진 않은 묘한 느낌이라는 점이다. 쉽게 이해할 수도 없고, 선율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에 밀접하게 붙어 극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보체크는 분명히 20세기 오페라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 처럼 보인다.

 

마침 메트 룰루에 이어서 또 다시 켄트리지의 연출이다. 룰루에 비해선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듯 보이는데 또 그렇지도 않다. 내겐 오히려 대놓고 기괴한 안드레아스 호모키의 취리히 프로덕션보다도 어딘가 어려웠다. 일단 켄트리지가 사용하는 시각적 디자인들은 매우 사실적이다. 무대에 있는 구조물이나 가구라던가, 의사와 보체크의 장면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의 디테일을 보면 이 연출에서 자연주의적인 면이 얼마나 많은지 느낄 수 있다. 나중에 보니 메트와 토론토와 호주 오페라단과 협력 제작이었다고 한다. 켄트리지가 보여주는 시각적 스타일은 분명 이런 (영국 제외) 영어권 국가들에게 어필할 만한 매력이 있다.

문제는 바로 개별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친숙한 비주얼들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더 모르겠다는 점이다. 뭔가 이해하기 쉬우라고 만들어놓은 연출인 것 같은데 나만 이해 못하고 있는 그런 억울함과 부끄러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예를들어 의사나 군인들이 (아마도) 1차 대전 정도의 시대에 입던 복장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 이 무대의 배경이 1차대전인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으니 더 혼란스럽다. 마리의 아기를 상징하는 인형에 방독면을 씌워놓고 간호사 복장을 한 인형사가 조종  또한 짧은 장면으로 연속되는 이 작품에서 특별한 무대전환 없이 계속 같은 구조를 가져가다 보니 이야기의 분리가 잘 안되기도 한다. 

 

가장 돋보이는 가수는 마리 역의 아스믹 그리고리안이다. 내가 왜 이런 가수를 처음 들어봤을까 싶을 정도로 그냥 압도적이다. 목소리의 안정감, 표현력, 연기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는 완성체다. 마리 역할을 어떻게 소화해내야 좋은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이 가수가 잘 부른다는 건 바로 알겠는, 그런 노래였다.

타이틀롤을 맡은 마티아스 괴르네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원래도 목소리가 좀 무겁고 먹히는 편인 것 같긴 하지만, 이건 뭐 소리를 제대로 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듣기 불편했다. 그래도 연기력은 괜찮은 것 같지만, 연기력 원툴로 먹고 살 가수는 아니지 않나. 비슷한 나이에 리트를 비롯해 레퍼토리가 겹치는 게어하허와 괴르네가 서로 자주 비교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게어하허도 취리히에서 보체크를 부른 것이 있다. 게어하허는 부드럽고 편안하게 이 역할을 소화해내는 반면 괴르네는 고구마 먹은 소리를 들려준다. 성량이 후달리는데 일부러 크게 부르려다보니 그런 걸까.

마찬가지로 같은 슈필테너라서 그런지 한 동안 게르하르트 지겔과 볼프강 아블링어슈페르하케를 혼동해서 기억하곤 했다. 내가 멍청했다. 둘은 급이 다른 가수다. 게르하르트 지겔은 아블링어슈페르하케가 보여주는 날카로움을 절반도 보여주지 못 한다. 

존 다스작John Daszak은 헬덴테너의 무거움도, 스핀토의 찌르는 듯한 강렬함도 없는 애매한 모습을 보여준다. 의사 역할을 한 옌스 라르센Jens Larsen은 그리고리안 다음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믿고 듣는 유롭스키의 반주인데, 사실 여전히 보체크의 음악을 잘 모르겠어서 어떻게 평가해야할 지 모르겠다.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발매했는데, 오디오 스펙이 PCM 스테레오만 있다고 돼있는데 블루레이 상에서는 반대로 스테레오는 없고 5.1채널만 있다. 실제로 5.1채널인지 2채널인지 확인은 못 해봤지만 최소한 아웃풋 게인 상으로는 다른 블루레이의 5.1채널과 비슷한 수준이라 이게 뭔가 싶었다. 만듦새가 뭔가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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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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