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영상물의 녹음은 이것보다 더 뛰어나다.



어째 슈트라우스 오페라를 많이 보게 된다. 아무래도 신보 위주로 구매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블루레이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보고 싶어하는 작품을 찾아본다기 보다는 좋은 신보가 나오는 대로 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예전부터 보려고 생각했던 오페라들 중 여태 못본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쇼스타코비치의 레이디 맥베스. 사실 레이디 맥베스를 못 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개된 장소에서 보기 껄끄러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얀손스 영상이 워낙 잘 나왔다고 해서 블루레이로 사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한글 자막 달린 라이센스 dvd와 고민하는 바람에 미루고 있다.

잡설이 길었다. 엘렉트라는 영상물로 세 번째 보는 것이다. 처음 본것은 가티 지휘와 렌호프 연출의 잘츠부르크 공연이다. 아트하우스에서 블루레이 홍보 용으로 특가로 풀어서 냉큼 구입했다. 특가로 발매하면서 한글 자막도 추가됐다. 이레네 테오린, 베시트브룩(Westbroek, 네덜란드 어 발음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발트라우트 마이어, 파페, 갬빌 등 초호화 캐스팅이다. 렌호프의 연출은 역시나 난해하다. 처음 들었으니 가티의 지휘가 어떤지 평가할 수도 없었다. 

그 뒤로는 살로넨 지휘, 셰로 연출의 엑상프로방스 공연 영상을 보았다. 셰로의 유작이 된 공연으로 커튼콜 때 셰로를 클로즈업해주는게 참 인상 깊었던 영상이다. 살로넨은 음악을 상당히 명료하게 이끌어낸다. 가수들도 훌륭하다. 80년대 바이로이트에서 반지를 하던 두 가수가 은퇴했다가 셰로와 작업으로 30년만에 조우하는 것도 참 인상깊다. 연출은 정말 셰로답다. 항상 셰로와 함께 작업한 페두치의 무대도 정말로 페두치의 특성이 나타난다. 연출을 미장센이라고 부르는 프랑스 다운 연출이다. 


이번 영상물을 산 이유는 라 푸라 델스 바우스가 연출했기 때문이다. 발렌시아 반지는 어색한 부분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한 편이었고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충격적이었다. 프레스토 클래식에서 C메이저 세일을 할 때 고민없이 질렀다. 어디 오페라에서 한 건지도 안보고 샀다.


노를란드 오페라는 스웨덴의 우메아라는 도시에 있다고 한다. 야외 공연인데, 주차장을 개조해서 공연했다고 한다.


엘렉트라는 여전히 나에게 낯설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반주가 놀랍다는 건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이런 소도시의 오케스트라, 거기다 독일도 아니고 스웨덴의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기대를 접는 게 당연지사다. 거기다 좀 어려운 오페라도 아니고 알슈의 작품인데 망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 그런데 오케 수준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아니 진짜 내가 지금까지 들은 엘렉트라 연주 중에 최고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살로넨도 훌륭했는데 더 미친듯이 날뛰면서도 아티큘레이션을 정밀하게 통제한다. 현악기의 복잡한 음형이 굉장히 깔끔하게 처리되는 걸 보고 놀랐는데 금관의 빛나면서도 안정된 텅잉이 첨가되면 음향적인 쾌감을 준다. 잔향이 심하지 않아 전체적인 소리가 굉장히 명료하다. 일단 녹음이 매우 훌륭하게 돼있고, 밸런스를 가수 소리보다 훨씬 더 크게 잡아두었기 때문에 마치 알슈의 관현악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가수 소리 잡아먹을까봐 걱정하지 않고 마음 껏 내지르는 게 유효한 선택인 것 같다. 야외 공연임에도 오케 녹음이 잘된 건 오케는 아마 실내에서 연주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가수들은 상당히 빈약하다. 그나마 엘렉트라는 어느 정도 소화를 해내는데 나머지 가수들은 여러모로 부족하다. 표현력이 부족한 데다가 가수 소리가 작게 잡혀있어서 잘 들리지도 않는다. 사실 아마 잘 안들리는 걸 노린 것 같은데, 야외 공연이라 어차피 개인 마이크를 다 잡아논 상태에서 밸런스를 원하는 대로 맞추는 건 쉬웠을 거다. 그런데 오케가 이렇게 잘하는 반면 가수가 별로라면 오케 소리를 확 키우는 게 오히려 듣기 편하다. 그리고 사실 이게 실제 오페라 극장의 밸런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정작 기대했던 라 푸라의 연출은 난해했다. 얘들 연출이 난해한 건 당연하지만 기존에 보여주었던 기술적인 경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야외 오페라이니 만큼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할 수 있는데, 불쇼라든가 거대한 탈것 같은 건 좀 진부하다. 오페라 무대에서 기술을 활용한다는 건 그만큼 표현의 이점을 가져와야하는데, 엘렉트라와 크리소스테미스가 거대한 탈것에 타서 노래하는 게 도대체 어떤 이점이 있냐는 것이다. 오레스트가 저 멀리서 입장하는 장면은 나름 괜찮았다. 무대가 좌우로 긴 것이 아니라 앞뒤로 아주 긴데, 저 멀리서 오레스트와 그의 '군단'이 불을 내뿜으며 천천히 등장하는데 압도감 있었다. 그런데 이건 기술의 경이가 아니라 단지 규모가 큰 것 뿐이다. 브레겐츠도 이런 건 한다.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인상깊었다. 컨테이너에서 피를 나타내는 붉은 물이 폭발하듯 쏟아지며 음악의 폭력성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도 논리적인 납득이 되진 않는다. 엘렉트라는 자기 배에 핏줄을 꼽고 있는데, 이를 마지막에 자신이 클리탬네스트라를 죽이려고 갈아둔 도끼로 쳐서 자결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진짜 붉은 물이 흐르는 관으로 표현한 거인가 싶었는데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자결하는 건 아마도 자신의 목표를 이뤄 더 이상 바라는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할지. 아직도 엘렉트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엔딩 장면의 일부가 포함돼있다.



여튼 이 공연을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휘자 루몬 감바이다. 해리슨 패럿 소속의 영국 지휘자인데, 샨도스에서 뱅상 댕디와 로저 미클로시의 영화음악과 관현악 등을 녹음했다. 유튜브에는 멘델스존 교향곡 3번을 한 영상이 있는데 상당히 훌륭하다. 악기 간 밸런스가 훌륭한데도 박력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다. 오케스트라의 명료한 사운드를 뽑는 게 살짝 파보 예르비를 연상시킨다. 조용한 부분을 컨트롤하는 것도 아주 뛰어나다.





요약하자면 엘렉트라의 관현악 파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어볼만한 공연이다. 루몬 감바가 몇년 이내에 좀 더 큰 포스트를 잡는다에 이 블루레이를 걸겠다. 





블로그 이미지

Da.

,